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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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김영하 저
핀란드의 탐페레공대로 교환학생을 갔던 시절, 나는 스케줄을 이리 밀고 저리 밀어 여행을 빌미로 잠깐씩 자리를 비웠었다. 학기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기말고사가 끝이 나자마자 내 성적확인조차도 뒤로 미루고 약 한달 간 유럽대장정을 떠났다. 물론 졸업이수요건을 이미 다 충족하고 신청한 교환프로그램이었기에 그랬겠지만 그 당시 나는 여행에 미쳐있었다. 오죽하면 휴대폰 카메라가 아쉬워 부모님께 부탁하여 물 건너온 DSLR까지 몇 주 전부터 챙겨서 엉덩이를 들썩였었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는 헤어짐과 돌아옴을 전제로 하는 여행을 왜 떠나는 것일까?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처럼 여행은 힘든 여정을 내포하는 것인데도 연휴 때마다 사람들은 악착같이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 무슨 이유나 효과가 있기 때문일 텐데. 낯선 환경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일상에서 결핍된 모종의 것을 찾기 위해서? 성지순례나 비즈니스와 같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그냥 모든 일상을 잊어버리고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 아니면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에 단순히 신물이 난 것일까. 여행은 모든 것이 낯설다. 마주치는 모든 이가 초면이고 모든 건축물들은 새로우며 맛보는 모든 음식들은 혀 뿐 아니라 뇌 구석구석까지도 자극한다. 마치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우리가 취할 행동은 단지 문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 그 뿐이면 된다. 그곳에는 날 옥죄는 사람도, 일도 없다.
김영하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에서는 우리가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와 여행지에서 얻게 되는 것들에 대해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설가라는 특수한 직업인으로서 말이다. 집필을 목적으로 떠났던 중국 여행에서 입국 자체가 거부된 채 추방당했던 경험에서 시작되는 이 책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목적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애초 품었던 목적이 여행 도중에 발생하는 사건들로 인해 번번이 틀어지고 예상치 않았던 무언가를 목적 대신 얻게 되는 경험을 말한다. 여행기가 지닌 이와 같은 기본 구조는 인생의 여정과 흡사하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여행에 대한 사유를 넓혀간다.
쾌락은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지만,
여행은 스스로에게 자기 자신을 다시 끌고 가는 고행이다.
- 알베르 카뮈
우리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 살아가고 역시 마무리할 것이다. 마치 여행처럼. 경험으로, 이미지로, 글로, 사진으로 남기면서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여행을 마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할 세계로 또 여행으로 떠날 테고, 조금 달라진 우리는 재차 살아갈 힘을 얻거나 다음 여행을 계획할 것이다. 우리는 여행에서의 경험이 아무리 사소해도 특별하고, 기대에 어긋난 것조차 여행의 요소이며, 일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친절과 좋은 사람도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온갖 기억과 고통과 할 일로 가득한 집을 떠나 환경을 바꾸고 다른 이와 신뢰를 나누며 기쁨을 얻는 상황에 나를 둔다는 것은 아이의 유희 같기도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근사한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의 절실함이 우리를 꿈꾸게 하고 우리를 영영 바꾼다. 생활 속에서 멀찍이 동경할 때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겪고 생각을 넓혀갈 때 여행에 제대로 도착한 셈이다.
베니스에서 아무데나 걸터앉아 바로 앞 노상에서 산 오징어 튀김을 먹고 있을 때였다. 회색 정장에 검은 구두를 신은 멋진 아저씨가 마찬가지로 튀김을 들고 내 옆에 멀찍이, 그러나 나에게는 조금은 가깝게 느껴질 거리에 앉았다. 챙이 넓은 모자를 덮었지만 그의 긴 백발 머리카락이 무성히 보였다. 그는 웃으며 내게, 자신은 퇴근길에 이 오징어 튀김에 맥주를 곁들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기다려진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나는 오늘 베니스가 처음이고 이 오징어 튀김과 맥주, 그리고 흐르는 강물, 지나가는 사람들의 조합이 처음이지만 너무 익숙한 듯 행복하고 앞으로 많이 그리울 것이라 말했다. 여행이란 단순히 가보는 것이 아닌 살아보는 것 그 이상의 가치가 내게는 있었다. 언젠간 헤어지고 돌아옴을 알고서도 출발하지만 매번 행복하고 설레는 여행처럼, 언젠간 끝이 올 걸 알면서도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는 인생을 사는 것. 이 또한 여행을 즐기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지녀야할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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