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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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 구효서
가을을 집어삼킨 성불사에 손님이 한 명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은 미와. 그녀는 “뭔가 달라지고 싶을 땐, 성불사에 가서 풍경소리를 들어!” 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짐만 대충 우겨넣고 성불사에 들린 참이다. “커피 같은 것도 되나요?” 좌자는 미와의 물음에 곧장 가스레인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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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는 좌자에게 물었다.
“왜 좌자에요?”
“이곳에서는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성불사에서는 누구도 왜라고 묻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성불사에 오는 사람들은 왜라는 말을 빼고도 모든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미와가 왜 미와냐면 대답할 수 있겠어요?”
“아름다운 기와...랬어요. 예, 성불사 기와 같은.”
“기와가 왜 아름답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겠어요?”
“궁금해하는걸 궁금해 하는건 이토록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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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낮에 좌자가 커피라면서 내어준 것은 사실 이상한 풀뿌리를 달인 물이었다. 그런데 좌자는 굳이 그것이 커피가 아니라고 하진 않았고, 곧장 내어온 차는 커피보다 맛있었다. 굳이 커피가 아니면 안되었던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것이 무엇이든 맛있었으면 되었다는 투의 느긋한 마음은 성불사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녀는 좌자에 대한 인상을 곱씹는다. 말과 행동 사이에 틈이 없는 사람. 보통은 그 사이에 여러 생각이나 번민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는 그런 것이 완벽히 걷어진 듯 했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는 좌자와는 정말 반대였던 사람이었다. 한없이 생각과 고민을 늘어놓다가 결국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린 엄마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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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서른이 넘는 나이에 아비 없는 아이를 몰래 낳아 24년을 장물인 듯 숨겨 키우고, 그 딸이 품을 떠난 뒤엔 아비시니안 고양이 '상철이'를 보듬다가, 상철이를 좋아하게 된 웬 연하의 미국 남자를 만나, 상철이를 위해서라며 그와 결혼을 감행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이제는 죽어 호숫가에 묻힌 여자를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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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양이 상철이의 울음소리가 더 커질 때마다, 또 엄마가 생각날때마다 풍경 소리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고는 성불사로 들어오는 여러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쓰르르르. 탁탁탁탁. 상철이에게서 벗어나려 하지않고, 들리라면 들리라지 하는 마음이었다. 풍경소리와 함께 들으니 울음소리가 훨씬 잦아들었다.
그리고 또 그녀는 깨닫는다. 풀뿌리 달인 물을 커피라 해도 말없이 잘 마셨던 자신이 어째서 엄마 앞에서는 한 번도 이래보지 못했는지. 왜 한번도 풍경소리처럼 느긋하게 생각해주지 못했는지. 방안에서 24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엄마가 항상 쥐여주었던 레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항상 퇴근하시고는 입가에 묻혀주었던 휘핑크림 때문이었을까? 비로소 그녀가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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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소리를 찾아 들으면 그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게로군요. 상철이 소리가.”
“말하자면... 네.”
“내버려두는것도 방법인데.”
“상철이 소리를요?”
“벗어나고 싶다는 맘이 못 벗어나게도 하니까요.”
“아.”
“초등학교 때 틀니를 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신기해서 애들이 자꾸 틀니를 빼 보라고 성화를 냈죠. 과자와 사탕을 주면서. 그런데도 죽어라 안 보여주는 거에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버려두니까 지가 빼서 보여주더라고요. 틀니를.”
“달라진거네요!”
“틀니가 보고싶다는 내 맘이 사라지니까 안 보여주고 싶다는 그쪽 맘도 사라진 게죠.
...풍경소리를 들으세요.”
말할 수 없이 달콤했던 휘핑크림이 사무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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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는 어디서 나고 있을까. 그녀에게 있어 휘핑크림은 과거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풍경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금, 그 아름다운 풍경은 가슴속에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겐 맑고 깨끗한 풍경들로 가득하다. 왜 우리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걸까? 오늘 나는 괜시리 여러군데에서 들리는 풍경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여본다.
미와가 캐리어를 끌고 은행나무 길을 내려온다. 그녀가 올 때와 다름없이, 떠나는 지금도 성불사에는 온통 가을의 색이었다. 그녀는 이 마지막 이별에서 비로소 풍경이 건네는 소리를 듣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마치 좌자가 뒤에서 물어보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답을 내리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함부로 물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는 자신에게 그 물음을 백 번이고 다시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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