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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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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수
댓글 0건 조회 5,472회 작성일 19-12-0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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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씨 이야기 -파트리므 쥐스킨트지음


 가을의 계절은 언제나 천천히 다가와서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엘니뇨의 영향인 지 라니뇨의 영향인 지는 모르지만 내가 느끼는 가을의 계절은 매년 짧아지고 있고, 그만큼 매년 가을에 대한 아쉬움도 커져만 간다. 올 해의 가을도 더움의 끝자락에서 온 듯 안 옷 듯 천천히 다가와서는 가을이 왔나 싶을 때, 순식간에 찬바람과 함께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줬다. 이미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겨울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지만 여전히 생명이 스러져가며 마지막 화사함을 불사르는 가을에 대한 그리움이 한껏 남아 있을 때, 책장에 오롯이 꼳혀 있던 <좀머씨 이야기>가 내 눈을 사로 잡았다. 간결한 삽화가 표지에 그려져 있는, 호수옆을 지팡이를 짚은 한 남자가 큰 보폭으로 걸어가고 있는 하얀색의 겉표지의 <좀머씨 이야기>는 지쳐가는 일상에서 이성을 밀어내고 감성이 지배하는 가을의 끝자락에 내게 위안을 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의 책이었다.


 좀머씨 이야기의 작가는 파트리크 쥐스킨트로 우리에게는 '향수'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물론 이 <좀머씨 이야기>도 매우 유명한 책이나, 나는 향수를 책이 아닌 영화로 먼저 접하고 나서 책을 읽었으며, 가을의 끝자락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책장에 있는 <좀머씨 이야기>도 그곳에 언제부터, 언제까지 있을 지 영원히 몰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잠시 샛길로 빠져서 향수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면, 줄거리도 꽤나 흥미로웠지만, 비단 줄거리의 서사가 주는 감명보다는 향기에 편집증적 사랑을 보이는 주인공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서 봤던 기억이 남는다. 이 작가가 쓴 작품의 매력은 이러한 캐릭터의 매력일까, <좀머씨 이야기>도 간결한 내용에서 오는 캐릭터의 매력이 크게 다가오는 책이다.


 책의 화자는 책 제목과는 다르게 좀머씨가 아닌, 책에 이름도 한번 나오지 않는, 좀머씨와 같은 마을에 살았던 한 남성이다. 책의 이 화자를 통해 자신은 하늘을 날 수 있으나, 내려오는 방법을 몰라 하늘을 날 수 없었던 동심의 세계부터, 가슴아픈 동급생에 대한 첫사랑(동급생'과'가 아닌 동급생'에 대한'은 그 첫사랑은 짝사랑이기 때문이다.), 엄격하고 히스테릭한 피아노선생님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혼난 이야기등을 풀어내며 성장의 과정을 부드러운 느낌으로, 빠르지 않은 속도로 풀어가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성장과정을 돌아보게 한다. 물론 각자의 성장과정속의 일화가 책과 똑같을 수는 없으나, 통과의례처럼 겪었을 만한 일들을 통해 어렸을 적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책과 함께 조금씩 커가는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점이 이 책이 주는 큰 경험 중 하나이다. 어렸을 적에는 불가능한 일들이 모두 가능하게 느껴졌고, 자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었을 것 같았으며, 그러한 상상(혹은 망상)속에서 몇 시간이고 모험을 떠나는 신비로운 시간을 가졌었다. 나는 어렸을 적 집이 조그마한 단독 주택이었는데, 그 주택의 큰 창의 창틀에 앉아서 명작동화집을 보는 시간들을 너무나 사랑했으며, 봄이면 화단에 피었던 천리향의 향기와 흐드러진 싸리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몸은 마루에 누워 햇빛을 받고 있으나, 생각은 저 멀리 바다를 건너, 우주까지 여행하는 (시간까지도) 수 많았던 시간이 너무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좀머씨 이야기>는 이러한 어릴 적의 추억을 머리속에 하나하나 재연시켜주며 과거의 기억에 취하게 해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좀머씨는 이러한 화자의 성장과정에서 마치 배경처럼, 언제나 그곳에 있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좀머씨는 아내와 함께 살아가지만 마을 사람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으며, 그들의 과거를 아는 사람도 없는 마을과는 다소 경계가 지어지는 인물이다. 특히 좀머씨는 언제나 끊임없이 마을 주면의 호수와 들판을 걸어다니는 모습만 보였으며, 언제 쉬는 지,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존재였다. 아침이면 빵 한조각과 물 한병을 들고 집을 나서서 하루종일 걷고 또 걸었으며, 식사시간이 되면 잠시 들판에 앉아 빠른 속도로 빵과 물을 마시고는 어느새 또 다시 걸어다니는, 누구의 인식속에서도 특별하지 않은, 신기하지만 그리 큰 관심이 가지 않는 배경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소설속에서 좀머씨가 배경속에서 현실로 나오는 부분은 딱 한 부분인데, 폭우와 우박이 쏟아지는 어느 날, 화자와 화자의 아버지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는 좀머씨를 발견하고 '그러다 죽겠어요'라는 말과 함께 차를 타기를 권유하지만 '그러니 나를 제발 내버려 두시오!' 라는 말고 함께 권유를 뿌리치고 다시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좀머씨를 보여준다. 이후에 확실치 하는 풍문을 통해 화자는 좀머씨가 '폐쇄공포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고, 약이 없던 그 시절에서는 폐쇄된 공간에 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걸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화자가 성장해 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좀머씨는 마을과 마을 주변을 끊임없이 걸었으며, 화자는 좀머씨가 걸어가는 것을 멀리서 보기는 했으나, 그것에 큰 관심을 두거나 다가가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았다. (마치 배경처럼!) 그런 와중에 좀머씨의 부인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좀머씨가 다락방으로 집을 옮겼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내가 있을 때는 저녁에는 집에 돌아갔던 좀머씨가 이제는 먹을 것을 가지러 오는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이틀, 사흘씩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문도 듣게 된다. 화자는 더 더 성장하여, 처음엔 익숙하게 타지 못했던 자전거를 누구보다 잘 타게 되었으며, 라디오 수신기도 조립할 수 있게 되었고, 3차방정식도 풀 수 있게 되었던 그 어느날, 이웃집에서 TV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 숲속을, 들판을 걸어다녔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호수를 향해 걸어들어가는 좀머씨를 발견하게 된다. 화자에게 그것은 마치 그림속의 장면같이 이어졌으며, 그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수영을 하려한다거나, 목욕을 하려하는 것이 아닌 것을 깨달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좀머씨가 호수속으로 한발 한발 사라져 가는 모습속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다. 가슴이 물속으로 사라지고, 어깨가, 머리가 사라지고 마침내 두어번 호수위로 머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다가 물방울이 부글부글 끓어오는 순간과 좀머씨의 밀짚모자만 남아 호수를 떠내려가는 순간이 올때까지 좀머씨를 향해 소리치지도, 그를 구하지도 사람을 불러오지 못한채 점으로 사라져가는 좀머씨를 마지막으로 화자는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한참후에 마을사람들이 좀머씨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좀머씨에 대한 실종신고와 수색작업을 할때도 화자는 마지막 좀머씨의 모습을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다.

 

 <좀머씨 이야기> 속의 좀머씨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책의 배경이 되는 2차세계대전이후 급속도로 발달되어가는 사회속에 소외되고, 사람간의 결속력이 약해지는 근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를 빗대어 표현하는 것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맹목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하나, 정작 우리의 머리속에는 존재감이 없는 사회의 일반적인 구성원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어떤 의미였던 간에 좀머씨의 존재는 책에 많이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인상깊게 각인된다. '그러니 제발 나를 내려 두시오'라고 외치며 살기위해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끊임없이 걸어야만 했으며, 아내가 죽고 자신을 보살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와중에도 며칠동안에도 끊임없이 걷고 걸어야만 했던 삶을 살아야 했던... 책을 보면서 문득 궁금했던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 걸으며 좀머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라는 것과 그는 행복했을까? 라는 부분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걸어야만 하는 그 행동이 어떤 사유의 시간이 되었다면 그나마 행복했을 것이고, 정말 살기위해서 맹목적으로 걸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면... 행복했을 지 불행햇을 지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국 홀로 호수속으로 걸어가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좀머씨의 모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살아야만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사라가는 사회에서 아무와도 접점이 없는 그 삶의 시작과 끝이라는 것은 개인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를 떠나서, 사람간의 사회에서는 그가 존재했던 것인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에 대한 생각 또한 깊게 돌아보게 되었다.


 생명이 사그러져가며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불태우는 가을의 끝자락을 부여잡던 시간속에서 <좀머씨 이야기>는 길지 않은 내용속에 마법과 같은 과거로의 내면으로의 여행을 선사해준 책이었다. 좀머씨의 삶의 의미는 조금 더 오랜 시간동안 곱씹어 생각해 보아야 내 삶의 끝자락에 조금 걸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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