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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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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850회 작성일 19-12-0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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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한 오두막집의 거실 탁자에 두 노인이 의자를 가까이 붙이고 앉아있다. 흰머리가 지긋이 들었지만, 여전히 남성미가 남아있는 아버지 제임스 티론은 최근에 붙은 살이 안 보이게 드레스를 입은 어머니 메리의 목을 감싸고 안아 그녀의 이마에 키스한다. 부모가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을 무렵 부부의 아들 제이미와 에드먼드 형제는 식탁에 앉아 엊저녁 그들이 목격한 아버지 친구와 한 소작농의 실랑이를 주제로 즐겁게 이야기한다. 아들들은 웃음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거실로 나와 탁자 옆 의자에 앉고, 제임스와 메리와 함께 담소를 나눈다. 여기까지 보이는 아일랜드계 미국 이민자 가족의 모습을 멀리서만 바라본다면 이처럼 따뜻하고 정다운 가족은 또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귀 기울일 때 이 가족에 대한 관점은 뒤집어진다. 마약 중독에 대한 금단증상으로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메리, 그녀를 안정시키기 위해 제임스는 자신이 15년간 걸어온 연극배우의 연기력을 담아 메리를 위로하고 품어준다. 제이미와 에드먼드는 아버지의 땅 거래인 이 우스꽝스레 당했던 이야기를 통해 돈을 버는 족족 가족에게는 무신경한 채 땅만 사는 수전노와 같은 아버지에 대한 냉소를 풍자한다. 늘 메리를 의식하며 미소를 짓던 제이미는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그녀가 모르핀 중독에 걸리게 하고 동생 에드먼드가 폐렴이 걸리도록 방치했던 싸구려 의사 하디를 신뢰하는 아버지를 비난한다. 아버지는 그에 지지 않고, 제이미의 방탕한 생활과 그가 에드먼드에게 준 부정적인 영향을 이야기하며 제이미를 무시한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티론 가(家)의 남자들은 하디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가 에드먼드가 폐결핵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사이 메리는 하녀 캐슬린과 시내에 나왔을 때 몰라 약국에 가 자기가 사용할 모르핀을 사 온다. 이처럼 참담하고 안타까운 가족이 또 어디 있겠는가?


 '밤으로의 긴 여로'는 노벨문학상 수상 및 퓰리처상 4회 수상 등 미국 최고의 극작가 유진 오닐 (1888~1953)의 대표적인 희극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아일랜드 이민자에서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파멸해가는 아버지와 마약 중독자 어머니, 알코올과 여자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는 형, 결핵을 앓는 시인 동생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가족 4명이 애정과 증오의 교착 속에서 서로 공격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어느 하루 동안의 허무한 심리적 갈등을 묘사한다.

  

 대본에 적힌 티론 가의 말다툼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읊는 긴 대사는 대부분 상대에 대한 조롱이나 비난(겉 표현)과 걱정이나 지지(속마음)가 반복적으로 교차 돼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제이미가 에드먼드가 기자 생활을 하던 당시를 이야기할 때를 보면 이러한 패턴이 보인다.


"신문사에서 걔에 대해 아주 무능한 기자라고 하더군요. (조롱)...

신문사에선 걔가 쓴 시하고 패러디 몇 편은 아주 훌륭하대요. (지지)...

그걸로 최고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조롱)...

그렇지만 멋진 출발을 한 건 사실이죠 (지지)"

- 1막  中 -


 이러한 패턴의 대화가 잦은 모습을 보면 티론 가는 서로를 향한 진실한 염려와 사랑을 마음에 담은 상태로 말로는 비난과 농담, 조롱을 던지는 왜곡된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티론 가는 그릇된 표현이 낳은 오해가 상처를 남기고, 상처받은 마음이 던지는 비난이 더 큰 상처로 돌아오는 악순환에 빠져있었다. 에드먼드의 병 소식과 메리가 약 사용은 가족의 갈등을 최고조에 달하게 한다. 모든 갈등이 폭발한 티론 가는 결국 제이미는 매춘굴로, 에드먼드는 술집으로, 메리는 자신이 약을 하는 다락방으로, 그리고 제임스는 홀로 부엌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바닥이 없는 구덩이와 같은 깊은 갈등 가운데 있는 티론 가는 모든 갈등의 원인이었던 대화를 통해 갈등을 차츰 해소해간다. 제임스를 향한 분노와 메리를 향한 안타까움에 술에 잔뜩 취해 돌아온 에드먼드는 식탁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던 제임스 옆에 앉고, 매춘굴에 갔다 뒤늦게 돌아온 제이미까지 합세하여 세 부자는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본인들의 진심을 술기운을 빌려 이야기한다. 제임스는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낯선 땅 미국에 와 가난과 차별 속에서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으며, 이때의 경험이 제임스를 재능있는 배우에서 25년간 수익이 나는 배역 하나만 연기한 멍청한 수전노로 만들었음을 밝힌다. 에드먼드는 그가 해군으로 입대한 것이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연극을 하듯 살아온 짙은 안개가 드리운 듯한 티론 가의 생활에서 도피하기 위함이었음을 밝히며 그가 사실은 제임스를 사랑하며 아버지로 존경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제이미는 자신이 여자와 술에 빠져 사는 이유는 그가 제임스와 메리를 믿은 만큼 배신감이 컸기 때문이며, 부모의 사랑에 대한 갈증이 있었음을 밝힌다. 그렇게 왜곡된 대화가 갈라놓은 세 부자의 관계는 취중 진담을 통해 회복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메리는 약에 취해 정상적인 대화에 참여하지 못한다... 어쩌면 자신의 어머니가 약에 취해있었던 기억이 유진에게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웠고, 그녀를 용서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극작가 유진 오닐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성이 티론이 아닌 오닐로, 어머니를 메리가 아닌 엘라로, 둘째를 에드먼드(홍역으로 어린 나이에 죽은 유진의 형)에서 유진으로 바꾸면 모든 이야기는 유진 오닐 본인이 직접 겪은 실화가 된다. 가족을 돌보지 못한 채 돈을 모으기에만 집착했던 아버지, 마약에 빠져 살던 어머니, 알코올과 여자에 빠져 방탕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죽은 형까지, 유진 오닐에게 자신의 가족사는 세상에 드러내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오닐은 이 작품을 노년에 썼는데, 소뇌 퇴행성 질환으로 마비에 걸린 상태임에도 고통을 무릅쓰고 기어코 작품을 완성해 놓고서는, 막상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추측건대 오닐은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본인이 죽기 전 본인의 가족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들을 향하고 있던 마음속 깊은 증오에서부터 자유로움을 얻기 위한 철저히 개인적인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유진 오닐의 바람과는 달리 '밤으로의 긴 여로'는 결국 유진 사후에 세간에 공개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첫 공연에서부터 큰 찬사와 함께 죽은 오닐에게 그의 네 번째 퓰리처상을 수여 하였다. 어쩌면 유진의 비극적인 가족사에 담긴 애환과 슬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용서하려 했던 유진의 땀과 눈물이 한 사람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인간의 보편적인 진실로 승화시킨 예술작품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용서하는 것은 가장 고결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형태다"

- 로버트 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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