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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화의 ‘사기’ – 사마천 원작/ 장자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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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591회 작성일 20-01-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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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화의 ‘사기’ – 사마천 원작/ 장자화 저

 

이규섭

 

  능력과 인품은 별개라고들 한다. 능력만능주의, 성과만능주의의 기조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인품이란 하나의 차선책에 불과하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났을 때나, 운이 따르지 않아 최악의 상황이 닥칠 때가 되어서야 빛을 발하는 비상용 안전벨트, 딱 그 정도인 것으로 말이다.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어른들이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인품의 필요성이다. 그러면 호기로운 젊은이들은 생각한다.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능력을 갈고 닦으면, 다시 만회할 필요 없을 만큼 성과를 거두고나면, 평생 놀고 먹어도 될 만큼 돈을 벌어 놓으면, 그런 업적을 쌓으면 어차피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하지 않느냐고. 그럼 되는 것 아니냐고. 그리고 나면 인애와 존중과 사랑과 관용과 자비와 용서를 비롯한 수 많은 아름다운 가치들은 모두 다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경쟁에 뛰어들 자신이 없는 자들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절하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야심가들은 당장 아무런 보상도 없는 인품을 갈고 닦느니 압도적인 능력으로 주위의 의심을 억누르는 것을 더 갈망하는 것 같다.

 

춘추전국에서 전한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를 다룬 만큼 사기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만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한 고조의 삼걸 중 하나, 한신의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열세에 몰린 유방에게 천하를 가져다 준 명장을 모르는 이는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를 통틀어 뛰어난 인물을 장량과 소하에 비견할지언정 한신에 빗대지는 않는다는 점을 돌이켜보자.

 한신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데다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여 별볼일 없는 한량으로 근근히 살아갈 뿐이었다. 그의 젊은 날은 아녀자들에게 밥을 얻어먹어 주린 배를 겨우 채우고, 양아치들에게 수모를 겪는 걸식표모(乞食漂母)와 과하지욕(胯下之辱)으로 대변된다. 마음속에 큰 뜻을 품고 있었다지만, 항우 아래에서도 크게 나서지 못하고, 유방의 아래에 들어가서도 한동안 영향력이 없는 자리에 머무르며 오랜 시간 그 뜻을 펴지 못했다. 그러나 소하의 추천으로 단번에 대장군의 자리를 받아낸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뛰어난 용병술로 제후국을 쓰러뜨려나가고, 끝내 해하전투에서 항우를 무찌르며 초한 전쟁의 막을 내린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그가 아주 유능한 시정잡배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신은 입신한 뒤 걸식표모의 은혜를 갚고, 과하지욕의 치욕을 용서하고 오히려 은혜를 베풀었다. 자칫 인의가 있고 너그러워 보일 수 있는 모습 이면에는 또 다른 모습이 있다. 그는 한끼 밥을 얻어 먹은 아낙에게는 천금을 선사하지만, 오랜 기간 신세졌음에도 마지막엔 눈칫밥에 쫒겨나듯 했던 정장에게는 백전만을 돌려주며 치졸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공은 소인이다. 덕을 베풀면서 끝까지 하지 않고 중도에서 그만두었다."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과거의 원한을 담아두는 것은 소인의 짓이다. 그리고 그것을 되갚아 주어야만 속이 후련하다면 두말 할 것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은혜를 과하게 돌려 준 것도 인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기 보다, 보잘 것 없던 자신이 이렇게나 성공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과시하기 위한 자기만족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안에 감사의 마음이 조금은 있었을까? 사람이라면 서운함을 쉬이 잊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신은 이와 같은 소인배적인 모습을 수 없이 보여준다. 따라서 이 일화는 그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보일 뿐이다. 과거 한신은 공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역이기가 이미 항복시킨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이에 유능한 인재인 역이기를 차도살인(借刀殺人)하고 제나라를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제나라는 어찌어찌 무찔러 냈지만, 공이 커질수록 한신은 점차 교만해져 갔고, 항우를 무찌르기도 전에 제(齊)의 왕 자리를 요구하여 유방의 의심을 샀다. 마지막 해하 전투에서 까지 한신은 대가 없이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는 완전히 유방의 신임을 잃었다. 무엇보다, 그는 항우의 부하였던 종리말을 보호해주다가 그것이 자신의 입지에 위험이 되자 그를 내쳤고, 종리말은 자결했다. 이는 자신이 그토록 비난했던 정장보다도 더 잔혹한 행위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의 교만함은 회음후로 강등된 이후에 노골적으로 나타나는데, 유방의 측근인 번쾌가 힘을 잃은 한신에게 조언하자, "살다 보니 번쾌 따위와 같은 항렬이 되었구나!”하며 비통해 했다.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신은 반란 혐의로 숙청된다.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저마다 다른 법이고, 같은 선택에도 다른 결과가 따르기도 하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의 말마따나 어떻게 살던지 운이 좋으면 잘되는거고, 운이 나쁘면 잘 안되는게 인생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인생을 잘 살았는지는 운에 좌지우지 되지 않을 것이다. 한신은 분명 뛰어난 장군이고, 그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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