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그리고 도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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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에게는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라는 신조를 가지고 직장에서 눈치를 보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닥치는 대로 일을 받아서 하고 야근까지 불사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퇴근 후 그 날의 고됨을 보상받고 싶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위해 힘쓰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에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렇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치렀던 시험에서 짝꿍의 점수보다 내 점수가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묘한 쾌감 때문이었다. 그 쾌감은 공부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만들었다. 공부를 잘하면 묘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칭찬까지 들을 수 있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커졌다. 어느새 나는 죽는 것보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경쟁을 이기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꼈던 우월감과 성취감은 지금껏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캠퍼스의 낭만과 청춘의 연애는 20대의 젊은 대학생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지만, 공부를 해서 좋은 학점을 받는 성취감과는 다른 영역의 것이었다. 더군다나 고등학생 때의 절반 이하의 노력으로도 꽤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노력해서 성취감을 얻을 때의 기쁨은 뇌에 각인이 되어 무슨 일을 하던지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성취감을 자양분 삼아 대학원까지 오게 되었다.
대학원에서의 연구는 이전까지 경험했던 것들과는 달랐다. 노력에 비례해서 결과가 나왔던 이전과는 달랐다. 다른 것들을 제쳐두고 거의 모든 시간을 연구에 투자했음에도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성취감이 삶의 원동력인 사람에게 계속적인 실패는 살아가는 이유를 잊게 만들 만큼 치명적인 것이었다. 똑똑한 학생들이 몇 번의 실패로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삶에 대한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느낄 때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성공에의 욕구를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것들로 채워 넣어 버틴 시절이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이면서 카이스트의 바이오 및 뇌공학 박사인 이재원 박사의 저서 <중독 그리고 도파민>은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우리의 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책이다. 호르몬은 우리의 신체 밸런스를 조절해주는 물질이며 마이크로그램 단위만 달라져도 상당히 크게 작용하는 민감한 물질이다. 그래서 약간의 체내 호르몬 균형이 깨져도 상당히 심각한 영향이 나타난다. 또한, 호르몬은 신진대사의 조절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의지까지 조절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인간의 의욕과 성욕,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하니, 실제로 인간을 지배한다는 표현이 이상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도 호르몬의 작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호르몬은 우리의 몸에서부터 정신까지 컨트롤하는데, 그 중에서 ‘도파민’은 인간의 기쁨과 쾌락을 주는 호르몬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매력적인 이성을 만날 때, 새로운 자극을 받을 때 도파민이 작용하여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성취를 달성했을 때 매우 많은 양의 도파민이 나와 계속적으로 새로운 성취를 하도록 북돋아준다.
문제는 꾸준한 성취감을 느꼈던 사람이 더 이상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때 발생한다. 성취감으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도파민에 대한 역치가 높아져 더 많은 성취를 달성해야 기쁨을 느끼는데, 성취는커녕 실패와 좌절을 하니 도파민이 생성될 리 만무하다. 한 때 도파민에 취했던 사람들, 예를 들어 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연예인이나 이전에 성공을 크게 경험했던 사람들이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도파민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 쾌락에 이미 중독되어 버렸다. 그들이 더 이상 예전의 인기를 갖지 못하거나 혹은 더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할 때에 일시적으로라도 도파민을 찾으려고 하고, 결국 손쉽게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술과 유흥, 그리고 도박과 마약과 같은 것에 손을 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상 결핍 증후군(Reward deficient syndrome)’이라고 한다.
보상 결핍 증후군은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일반인에게도 널리 퍼진 질병이다. 이러한 증후군에 빠진 사람은 성취감을 통해 충분한 도파민을 얻지 못하니 손쉽게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것에 손을 댄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을 것을 찾게 되고, 온종일 일해 피곤한 몸뚱아리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밤새 게임을 하기도 한다. 자야할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침대에 누워 잠들지 못하고 스마트폰만 보는 사람도 있다. 그 날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인스턴트식 쾌락이라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술과 담배에 중독이 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결국 나도 도파민의 중독으로 인한 보상 결핍 증후군으로 고통받고 있던 것이었고, 계속적인 실패를 경험했을 때 왜 그렇게 우울감과 좌절감을 느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도파민이 나쁘다고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도파민을 잘 관리하면 미래의 성공을 위한 충분한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도파민이 주는 기쁨에 빠져버리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성취욕에 중독된 사람은 오직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에만 매달릴 뿐 절대로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 극도의 욕망으로 인한 원동력이 그들에게 부와 명예를 쥐어주지만 그들은 현재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얼마나 이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늘 부족하고 목마르다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미래의 성공과 성취감만을 바라보고 사는 삶은 절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성공만을 꿈꾸는 것을 멈추고 현재를 즐길 수 있으려면 미래지향적 물질인 도파민이 쥐는 주도권을 현재지향적인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이나 옥시토신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이것은 연애와 결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커플들이 도파민의 영향으로 사귀는 초반에 열정적으로 불타오른다. 하지만 도파민의 유효기간은 고작 길어야 3년이라고 한다. 도파민에 중독된 사람은 상대방에게 금방 권태로움을 느끼게 되어 결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3년 이상의 연애와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현재지향적 호르몬인 옥시토신 때문이다. 옥시토신은 정열적인 사랑보다 친밀감과 정서적 유대감을 주는 호르몬이다. 도파민의 유효기간이 끝나더라도 옥시토신이 있기에 계속해서 관계를 지속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와 현재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사람의 관심이 미래나 현재로만 치우치게 되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도파민의 과잉 상태는 불행한 능력자를 만들지만 현재지향적 화학물질의 과잉은 행복한 게으름뱅이를 낳기 때문이다. 머리와 몸을 모두 쓰면서 심신을 만족시키는 취미 활동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현재지향적 경험과 도파민의 추진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러한 활동들은 두 종류의 호르몬이 잘 조화를 이루어 현재에 만족하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리고 성취감의 쾌감에 빠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도파민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도파민의 유혹을 극복하고 적정선에서 외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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