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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기욤 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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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881회 작성일 20-01-0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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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기욤 뮈소



  구약성경에는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는 이야기가 있다.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 도시에서 유일하게 선한 사람이었던 롯에게 천사들은 곧 도시가 멸망할 것임을 알려준다. 유황과 불에 타 멸망해 가는 도시를 뒤로한 채 도망치던 롯의 가족. 롯의 아내는 도망가는 도중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던 천사들의 충고를 잊고 결국 뒤를 돌아보아 그 자리에서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은 롯의 아내가 놓고 간 재물에 대한 미련으로 뒤를 돌아보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는 조금 유치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하룻밤 전만 해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동고동락하며 살아오던 이웃들이 모두 재가 되어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룻의 아내가 챙기지 못한 재물들에 퍽 미련을 가졌을까 싶다. 나는 오히려 룻의 아내 마음속에 죽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이 그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후회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녀가 뒤로 돌아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결국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람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물질에 대한 후회는 단기적이지만, 사람에 대한 후회는 장기적이다. 우리는 하루가 끝나면 침대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보고, 연말이 다가오면 한해를 돌아보고, 인생의 황혼이 접어들 무렵이면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본다. 지난주에 못 먹은 핫도그를 일주일 내내 기억하는 사람은 세상없을 것이다. 어제 주식으로 잃은 돈은 그 금액에 따라 몇 개월까지도 후회할 수 있지만, 결국 시간이 가면 다 잊고 잘만 살아간다. 그러나 사랑한 사람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몇십 년이 가도 그 사람과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돈독할수록, 그 사람이 젊고 앞길이 창창할수록, 그리고 그 사람과 헤어짐을 내 손으로 막을 수 있던 여지가 많을수록 우리는 그 헤어짐을 후회하고 스스로를 원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평해전으로 아들들을 잃은 사람들과 세월호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이 경험하고 있는 기나긴 슬픔도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헤어짐의 슬픔은 남겨진 자들에게 후회라는 이름의 저주로 다가온다. 자신이 그 헤어짐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음에도 그 헤어짐을 막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 모든사고를 자신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후회한다. 이러한 후회라는 덫은 종종 사람의 인생을 과거에 영영 머물게 만들기도 한다.

 

  청년의 나이에 후회의 덫에 걸려 노인이 될 때까지 평생을 싱글로 살아온 외과 의사 엘리엇. 그는 30년 전에 일어난 사랑하는 연인 일리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고 평생을 연애하지 못한 채 60세 생일을 맞이한다. 그는 비록 싱글이지만, 하룻밤의 실수 가진 딸 앤지를 엄마 없이 건강하게 키웠고, 평생의 친구 매트와 포도원을 같이 경영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잘살고 있는 듯 했지만, 그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일리나에 대한 그리움과 그녀를 살리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을 품고 살아왔다.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얻은 과거로 잠시 돌아가는 약을 얻고, 흡연으로 인한 폐암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된 엘리엇은 죽기 전 과거의 일리나를 보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약을 먹는다. 과거의 젊은 자신을 만난 엘리엇. 노인 엘리엇은 일리나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만, 일리나의 죽음을 알게 된 젊은 엘리엇은 결국 일리나의 운명에 관여하게 된다. 일리나를 살리는 과정에서 젊은 엘리엇은 과거의 매트와 관계가 틀어지고, 이로 인해 노인 엘리엇은 30년의 세월을 함께한 친구를 잃어버린다. 과거에 더욱 깊이 관여하면 사랑하는 딸 앤지 마저 잃어버릴까 두려운 노인 엘리엇은 일리나와 매트, 앤지를 모두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간다.

 

  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타임슬립과 연애에 관한 소설이다.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 잃어버린 연인을 살리기 위한 엘리엇의 사투, 그리고 과거에서의 변화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미래가 크게 바뀌는 장면 등 여타 읽어왔던 시간여행 관련 소설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나마 다른 소설들과 달리 특별하게 여겨진 점은 주인공이 노인인 점, 현재의 주인공과 과거의 주인공 간의 의사소통이 잦은 점, 그리고 이 소설의 배경이 샌프란시스코라는 점이다. 때마침 소설을 다 읽은 직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IEDM 학회를 가게 돼서, 나는 소설에 나온 장소들을 둘러보며 소설 속 주인공들의 감정과 경험에 대한 묘사를 간접적으로 느낄 기회를 얻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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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과 매트가 살았던 롬바르드 거리. 언덕 위에서부터 가파른 경사로 바다까지 이어지는 거리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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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나에게 안타까운 사고가 났던 샌프란시스코의 경물 골든 게이트 브릿지. 안개가 짖게 껴 더욱 우울한 분위기를 만든다>


  시간 여행이라는 거대한 힘을 얻으면 이를 십분 활용하여 과감한 도전과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려 하는 여타 시간 여행자들과는 달리 엘리엇은 모험적인 시도나 창의적인 결정을 내리기에는 의지도 기력도 부족한 노인이다. 사랑했던 일리나의 살아있는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그의 소소한 꿈은 소설을 박진감 넘치는 SF물 보다는 서정적인 로맨스물로 만들어 준다. 소설에서 주인공을 노인으로 차용했다는 점, 엘리엇이 과거를 아름다웠던 일리나를 보는 것만으로 후회의 감정이 누그러졌다는 점, 그리고 젊은 엘리엇이 일리나를 살려도 운명처럼 둘의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보면서 소설의 시간 여행들이 마치 늙은 엘리엇의 과거 회상과 상상의 나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모든 시간 여행이 끝나고 바뀐 미래에서 일리나를 제회하는 장면은 짙은 안개와 몽환적인 배경 표현을 통해 마치 폐암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엘리엇이 죽음을 통해 일리나와 제회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고 또 후회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과거의 일들을 후회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지나간 일을 바꿀 수 없다. 2019년 한해를 돌이켜보면 나에게 개인적으로 행복한 일도 참 많았고, 또 한편으로는 후회스러운 일도 정말 많았다. 여러 가지 후회스러운 일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고, 또 어떤 이들과는 어색해지거나 멀어진 일들이 참 후회가 된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 일들에 더는 얽매이고 싶지 않다. 과거의 후회에 붙잡혀 새로운 사랑에 대한 걸음 하나 내딛지 못한 엘리엇처럼, 지나간 일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그르치는 것은 절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내가 실수한 것이 있으면 사과하면 되고, 어색해진 관계가 있으면 다시 세워가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시간이 또 지나고 다시 돌이켜 볼 때 결국 모든 일이 감사함으로 변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한다. 2020년의 막은 이제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앞으로 나에게 몰려올 수많은 일이 미래의 나에게 후회가 되지 않도록, 현재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내가 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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