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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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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5,284회 작성일 19-11-0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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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페터 한트케 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내부의 변화다. 겉을 바꾸는 일도 쉬운 건 아니지만 내부의 변화는 더 어렵다. 어제와 같은 일상에 안도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모종의 자극을 원한다. 외모를 가꾸기도, 여행을 떠나기도,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도 한다. 새로운 행동을 습관화하기 어렵듯 수백 번 되뇌어도 마음은 철옹성처럼 문을 걸어 잠근다.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내부를 움직이는 건 아주 커다란 사건이나 상처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성장’ 혹은 ‘성숙’이라 부르기도 한다.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속 ‘나’에게 내부의 변화를 강제하게 만든 것은 아내 ‘유디트’의 갑작스런 이별 통보였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나’는 아내를 찾기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당장 미국으로 떠난다. 심장이 멎고 더 이상 피가 혈관을 따라 흐르지 않는 기분이었다. ‘나’도 그랬지만 사실 나도 그랬다. 매일 우리가 진부하게 떠드는 있을 때 잘하란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우정, 혈연, 지연 모두에 적용되지만 ‘없을 때’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도 못지않다. 슬프면 울기라도 하지 이것은 슬프지 않다. 아니 슬픔을 넘어섰다. 그 보다 몸 속 모든 액체가 메말라 버린 느낌이 더 맞을 거다. 떠나는 이는 떠날 때 제일 힘들다. 하지만 이윽고 해방감과 자유로움에 취해 나를 억압하던 사슬을 서서히 그러나 빠르게 풀어나간다. 떠나게 만든 이는, 다시 말해 나이거나 ‘나’는, 그녀가 떠날 때 조금도 슬프지 않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그제야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며 현실을 인지하고 눈물이 난다. 의지할 것이 급격하게 필요해지며 광적으로 이미 떠나간 그녀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일종의 벌이라면 벌인 것이다.

 

     ‘나’는 아내가 묵었던 호텔을 찾았지만 아내는 떠났고 그에게 남겨진 건 사진기 하나 뿐 이었다. 어디서 아내를 찾아야 할까. 아내의 흔적을 뒤쫓고 있지만 항상 한 발 느린 상황이다. 아내를 향한 감정도 이제는 모호하다. 호텔 로비에서 혼잣말을 하면서 아내에게 욕을 내뱉고 만나면 당장이라도 죽일 듯 화를 낸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건 ‘나’의 모습이다. 미국의 술집에서,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만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자신을 들여다보다가도 감정에 못 이겨 화를 내고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한다. 아내와 ‘나’ 사이의 거리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이제 아내를 찾기 위한 여행이 아닌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 더 필요해 보이는 ‘나’다.

 

     그런 여행에 변화가 온 건 과거 하룻밤의 연인 ‘클레어’를 만나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와 그녀의 어린 딸 ‘베네딕틴’과 함께 다시 여행을 나선다. ‘클레어’와 새롭게 관계를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저 친구로서의 만남과 대화가 전부였다. 그러나 ‘클레어’와 ‘나’의 대화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듣기도 한다. ‘베네딕틴’이 질문을 하면서 둘 사이의 대화를 끊어놓지만 그 역시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다. 단순한 남녀 사이를 넘어선 아이란 존재가 주는 특별함이라고 할까.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모든 사물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의 순수함에 놀라고 슬퍼하고 또 과거의 내 자신을 초월할 준비를 한다.

 

이곳에서는 왜 내게 유독 불안 상태에 대한 기억력만 살아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돼. 

내가 매일같이 보아왔던 것과 비교해볼 대상을 아직 가져본 적이 없었던 거지.

내가 받는 인상들이라는 게 모두 이미 익히 알려져 있는 인상들의 반복일 뿐이라는 거야. 

그 말은 내가 아직 세상을 많이 돌아다녀 보지 못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조건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음을 의미해.

-나-

 

당신은 장소를 바꾼다기보다는 미래 속으로 달려가려고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이 이곳으로 왔어. 

하지만 이곳에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알 수 없어.

우리가 무언가를 비교한다면 그 대상은 과거가 되겠지. 우리는 기껏해야 다시 아이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클레어-

 

     ‘클레어’가 ‘베네딕틴’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나’가 아내 유디트와의 이별로 인해 많은 것들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처럼 ‘클레어’는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성장했다. ‘클레어’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화와 분노로 가득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을 거다. 현재라는 작은 조각만 보고 인생의 전체를 상상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했을 거다. 그 와중에 ‘나’는 서른 살 생일을 맞는다. 하나의 세대가 끝나고 다른 세대로의 진입이다. 이러한 여행의 시간들을 통해 ‘나’는 여행의 처음에 느꼈던 감정에 대해 정리를 한다. 그러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이 시간은 무척 더디고 섬세하면서 황홀하기까지 하다. 혼자만의 시간, 고요한 자아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내 존재조차도 잊어버린 채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실측백나무가 잔잔하게 흔들리면서 내게로 점점 다가와 마침내 내 가슴속까지 파고 들어왔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머릿속의 혈관은 박동을 멈췄고 심장도 멎었다. 나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고 피부는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몰려드는 쾌감과 함께 나무의 움직임이 호흡 중추 기관의 기능을 넘겨받는 것을 감지했다. 

실측백나무가 나를 자신의 품 안에서 흔들리게 했다. 내가 저항하기를 그만두고 마침내 잉여의 존재가 되어 

실측백나무의 부드러운 놀이에서 벗어나자 실측백나무가 내게서 다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달라졌다. 누군가 그것을 감지하지 못해도 그의 내부는 그렇게 변화했다. 이제 ‘나’는 자신에게 권총을 들이댄 아내 유디트를 물끄러미 지켜보고는 그녀에게서 권총을 빼앗아 바다 속으로 던져버릴 수 있었다. 소설의 말미에서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데다 주름진 얼굴에 수염 자국이 하얗게 남아 있는’ 영화감독 존 포드를 만난다. 감독과 만나 함께 걷는다. 그들은 ‘우리’에 대해 오래토록 이야기한다.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결국 성장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고 제대로 이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이다. ‘나’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이제껏 몰랐던 자아를 발견했고 유디트 역시 그 시간을 통해 남편과 자신에게 남았던 감정의 실체를 찾았다.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이별을 배우고 성장한다고 할까. 그들에서 이별은 과거와의 이별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장소를 변경하는 건 단순히 육체를 이동한다는 단순한 일이면서 지금껏 나의 모습을 다른 마음으로 객관적으로 살펴본다는 일일까. ‘장소’란 말 대신 넣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일’과 ‘한 권의 책을 읽는 일’ 혹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으로 바꿔본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역시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 예를 들면 이별, 죽음 등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성장한다는 걸 알려주며 깊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긴다. 진정한 내부의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밀려오는 감동과 함께 말이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한 이유는 저급하게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다 뿐이었지만 내가 최근 겪은, 경험해 온 것들과 놀랄 만큼 흡사한 것들을 경험 중인 ‘나’가 나를 반겨주는 작품이었다. 마치 같은 아픔을 겪는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고 할까. 책을 읽고 깨달은 것들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최근 이별이라는 문의 손잡이를 거의 다 돌렸다 가까스로 다시 꼭 잠갔다. 새로운 것을 막연히 원하는 것은 올바른 내부 쇄신의 방법이 아니다. ‘나’가 아닌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하는 것,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것. 이 작고 사소한 것들은 우리가 굳이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 만나며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사랑을 지속하고 우정을 견고히 하며 새로운 결실을 서서히, 하지만 확실히 맺게 해주는 완벽한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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