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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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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5,352회 작성일 19-11-0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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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페터 한트케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이 소설은 주인공인 ‘나’가 뉴욕 근처의 한 호텔에 도착해 짧은 이별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그는 아내 ‘유디트’를 찾아 오스트리아에서 뉴욕으로 향해 온 참이다. 이 여정은 언젠가는 예견된 일이었을 것이다. 둘 사이가 증오심으로 가득해진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는 어쩐지 세상에 적응이 덜 되어있는 모습이었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모습에 굉장한 불안감을 보이고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도 감정의 높낮이가 심했다. 직업이 작가여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매우 개인적인 그의 성격 탓일까. 그는 아내는 물론 세상에 대해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 듯 보였다.

 

온종일 무심히 지나치기만 했던 주변 경관들이 나를 맞아들였다. 그 순간 줄지어 서 있던 집과 거리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다시 머무는가 싶더니 내 안에 자리 잡은 모든 것이 엉클어져 휘감긴 채로 서로 밀쳐대면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60 페이지

 

아내를 찾아 떠나온 이 여행에서 새로운 상황을 계속 마주하게 된다. 이를테면 군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대화 도중 갑자기 이런 상념에 잠긴다.

 

도대체 왜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어야 하는 것인가? 내가 처음부터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고려해줘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는 잠자코 들어주었다. 내가 그들의 공범자 입장이 아닌 다른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는 듯이. 전화할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혼자 자리를 끄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나 자신을 좀 더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단 말인가?”

-70 페이지

 

그는 소설의 거의 내내 이런 독백을 끊임없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개인의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상대방의 배려라든지, 또는 공존이라는 측면이 부족해보였다. 그런 그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 계기는 옛 연인 클레어를 만나고부터다. 미국에서 만난 옛 연인 클레어는 이제 딸린 애기도 있었다. 그는 예전의 감정과 현재의 감정을 탐구하며 더 이상 자신의 연인이 아닌 클레어를 조심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배려에 대한 내면을 성장시킨다. 점차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그는 영화감독 존 포드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존 포드를 찾아가 만나보고 싶어. (중략) 그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여줌으로써 역사의식을 일깨워주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내 기분을 밝게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하고 싶어.”

-160 페이지

 

결국 유디트를 만난 그는 같이 존 포드를 만나기로 하고, 자신을 위로해주고 좋은 영향을 끼쳤던 존 포드와 대화에서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 새로이 눈뜨게 된다. 그리고 대화 이후 둘의 평화적인 화해에 대한 암시를 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합니다.” 존 포드가 말했다. “그리고 그 모임에서 맨 마지막으로 자리를 뜨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것은 남아 있는 누군가가 나를 험담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다른 누군가가 비난받는 것도 막아주고 싶어서입니다. 나의 영화도 그런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225 페이지

 

“선생님은 왜 항상 ‘나’라는 말 대신에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세요?” 유디트가 물었다. “우리 미국인들은 사적인 일에 대해 말할 때도 ‘우리’라고 합니다. (중략) 당신네들은 항상 ‘나’라는 일인칭을 사용하면서도 누군가가 자신을 다른 사람과 혼동하면 외려 뿌듯해하더군요. 동시에 다시 자기만의 독특함을 가지려고 하고요. 어차피 누구나 다 특별한 존재들이지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무도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외로워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혼자 있으면 무시당하고 자기 자신만 염탐하게 되죠.”

-218 페이지

 

우리의 인생에는 고난과 역경이 놓여있다. 이 이야기도 역시 겉으로 보기엔 이별이라는 역경에 놓인 인간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물론 어쩌다가 두 젊은 남녀가 이런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들이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이 이야기의 내용이라면 내용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보여주는 것은 이 사건을 겪으며 주인공인 ‘나’가 어떠한 의식의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짧은 편지가 만들어준 긴 이별 여행에서 ‘나’는 개인에서 벗어나 공존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역경의 완벽한 해결과 더불어 자신의 내면을 성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 이야기는 사실 작가 ‘페터 한트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그가 작가로서 얻은 자신의 언어가 어떤 식으로 발전될 수 있었는지 그 계기가 된 역경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그는 근본적인 내면의 성장이 없는 한, 인생의 역경을 진정으로 겪어낸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이 소설이 다른 성장 소설 또는 드라마 소설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의 내면을 자세하게 비춰주는 매우 일인칭적인 소설이라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고난을 헤쳐 가며 성장했다고 느꼈는가? 아니면 단지 하나의 언덕을 넘은 것에 안도하는 정도였는가? 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역시 무엇이든 결과보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내 앞에 놓인 여러 고난이 많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에 혈안이 되기보다는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어갈 것이며, 어떤 내면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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