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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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서 겪은 일이다. 대전은 광역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지 않아 택시를 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날도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애매한 곳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야 했다. 도로에 지나가는 택시가 없어 카카오택시를 불렀고, 택시기사는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의 위치를 설명해주는 여자친구의 목소리 너머로 택시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렴풋이 들리는 택시기사는 여자친구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이번 택시기사는 상당히 무례한 사람이구나라’고 속으로 생각을 했고, 얼마 뒤 택시에 탑승했다. 택시에 타고 나서 내가 정확한 목적지를 얘기하자 그는 나에게 존댓말로 대답을 했다. 전화로 반말을 하는 택시기사를 보았을 때 상당히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서 자연스럽게 반말을 한 것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고 난 뒤 여자친구에게 이런 일을 자주 겪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나이든 사람이 자기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는 꽤 자주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자친구 직업의 특성상 작은 업체의 사장들과 자주 대면해야 하는데, ‘미스김’이라든지 ‘아가씨’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2019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진보적인 사회 분위기와는 다르게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있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고 말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에피소드일 수도 있겠지만, 젊은 여자의 입장으로 세상을 살아보지 않은 나에게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사건이었다.
요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화제다. 이 책은 2016년에 출간된 뒤 지금까지도 베스트 셀러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화제인 소설이다. <82년생 김지영>은 82년생에 여자로 태어난 사람이 여자로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사건들을 보여주면서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으며 유명해졌다. 내가 보았던 택시기사 에피소드와 여자친구가 실제로 겪은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차별들은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출간 이후 지금까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러한 차별들을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겪었고, 이에 대해서 공감하기 때문이리라.
여성에 대한 차별을 줄이자는 사회의 흐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야하는 차별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맞추어 남자와 여자의 차별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점점 개선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극단적 페미니스트(radical feminist)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은 양성평등보다는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집단으로 남성에 대한 혐오를 원동력으로 존재한다. '한남충', ‘소추', '재기해’ 등 들으면 낯 부끄러울 만한 단어들을 서스럼없이 사용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회적 약자 중에 하나인 여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존재하지만, 실제 사회적 약자인 '아동', '노약자’,'장애인', ‘성소수자’들을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여성의 권리 향상이라는 미명 하에 그들은 또다시 가해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사람들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주목하기에 이들의 행동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하였고,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유로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단적 페미니즘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러한 극단적 페미니즘이 각종 여성 커뮤니티부터 시작해 현실에도 퍼지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학교에서 몇몇의 청소년들도 위와 같은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남자들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82년생 김지영>이 많은 남자들 사이에서 혹평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이 말하길, 한 여성이 평생 한 두 번 겪을까 하는 모든 불행들을 ‘김지영’이라는 캐릭터가 모두 겪게 만들어놓았는데, 대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이 겪은 경험인 듯이 공감하며 사회를 비판하는게 우습다고 말한다. ‘82년생 김철수’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어 대한민국의 남자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일련의 불행들을 겪게 만들어 <82년생 김지영>을 비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소설은 모든 한국 남성이 겪는 사건이다. 어릴 때부터 숙제를 안 해왔을 때 여자라서 가벼운 체벌을 받는 반면에 남자라서 당구 큐대로 엉덩이에 피멍이 들 정도로 체벌받고, 여자들이 2년 동안 스펙 쌓고 취업할 때 군대에 가서 고생하고, 군대에 가서도 고참들의 괴롭힘으로 인해 정신병에 걸려 끊임없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지하철에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성범죄자로 낙인찍혀 빨간줄이 그이고 모든 취업 길이 막히는 불쌍한 82년생 남자의 이야기다.’와 같이 말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앞에서 말한 ‘82년생 김철수’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주장한다. 이러한 남녀 대립으로 인해 남자와 여자는 각자 자신들이 보고싶은 방향으로만 사실을 보게 되었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은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양날의 검과 같은 소설이 되어버렸다. 소설 자체가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니 차별을 경험한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남녀 갈등을 심화시켰다. 몇몇의 남자들은 ‘82년생 김지영’이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수준이 되어버렸고, 젠더 문제는 정치, 종교와 함께 쉽사리 꺼내서는 안되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개봉한 같은 제목의 영화인 <82년생 김지영>을 보느냐 마느냐로 커플들이 싸우고 헤어지기도 한다고 하니 젠더 문제는 가장 예민한 이슈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남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남녀 갈등은 여성정책으로 인해 심화되었다. 여성전용주차장부터 시작하여 여성전용주택, 그리고 직업여성에게 주는 지원금 등 남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비판과 비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뉴스에서 말하길 군대에서 목함지뢰를 밟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병사에게는 30일 분의 병원비만 지급해주고, 나머지 금액은 본인이 자비로 부담을 하게 된다는데 성매매 여성을 위해 수 천 만원의 지원금을 준다니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러한 비상식적인 여성 정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남성와 여성 사이의 골은 깊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양성평등을 위해 시행하는 정책들이 오히려 둘 사이의 갈등만 더 크게 만들고 있으니 탁상공론만을 일삼고 표를 위해 보여주기식 정책을 펼치는 고위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욕을 먹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허황된 정책으로는 절대 양성평등은커녕 오히려 갈등만 조장할 뿐이다. 우리가 비난해야 할 사람은 ‘20대에 군대를 가서 2년을 허비하고 돌아온 대다수의 남자’도 아니고 ‘남자들보다 빠르게 취업을 했지만,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되어 집에서 가정주부를 하는 대다수의 여자’도 아니다.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출산휴가를 쓰고 돌아온 사람에게 눈치를 주는 일부의 꼰대’들과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여자라고 반말을 일삼거나 ‘미스김’ 혹은 ‘아가씨’라고 부르는,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조차 없는 일부 사람들', 그리고 ‘남혐과 여혐의 언행을 서스럼 없이 일삼으며 갈등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여자와 남자가 편을 갈라서 싸울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이러한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해야 한다. 또한, 본인의 진영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서로의 의견을 수렴하여 문제를 개선해 나아가야 한다. 인터넷에서 하루 종일 여혐과 남혐을 외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가 본인들의 피해와 차별만 주장한다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을 비판하는 젊은 남자들이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본인들이 하지 않았음에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것이 싫을 뿐이고, 그들이 남자로 겪었던 일련의 차별들을 이해받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군복을 입은 사람에게 대부분의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정반대의 취급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여자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대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기는 하느냐’고 생각없이 말하지 말라.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별이 만연해 있지 않은가. 이것은 어느 특정인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님을 생각하자.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남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면 다른 성을 가지고 있다고 방관하지 말자. 그 차별은 곧 내 아내가, 내 남편이, 혹은 내 아들과 딸이 고스란히 받아야 될 서글픈 십자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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