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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 윌리엄 포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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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222회 작성일 19-11-0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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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윌리엄 포크너-

  굽이치는 강줄기를 따라 광활한 대지와 드넓은 숲이 펼쳐있던 아메리카 대륙. 대륙의 주인이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자연은 마치 위대하고 신성한 존재였다. 그들은 자연을 사랑했고 아꼈으며, 자연의 모든 생명과 사물을 영혼이 깃들어있는 존재로 여겼다. 모든 동식물이 영혼을 지녔기에 원주민들에게 사람과 자연 속 모든 존재는 철저히 동등한 위치를 지켰다. 그렇게 원주민들은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기를 자처했고 자연과 동화되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갔다. 이러한 원주민에게 예고 없이 찾아왔던 유럽인들.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원주민이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거대한 함선을 만들고 대양들을 넘어 수많은 대륙과 섬들을 정복해오던 이들에게 아메리카는 그들이 점령하고 정복해야 하는 새로운 땅덩어리에 불과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여기며 동식물과 자연을 인간 아래에서 다스려야 할 존재로 여긴 이들에게 자연은 그들이 쟁취하고 이용하고 통치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과 동화되어왔던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던 자연과 함께 유럽인들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소설 '곰'은 표면적으로는 전설적인 곰 '올드 벤'과 그를 추격하는 소년 아이작의 모험과 성장을 담은 소설이다. 1장에서 아이작은 10살부터 6년간 어른 사냥꾼들을 따라 매년 늦가을 사냥 여행을 떠난다. 아이작은 흑인계 아메리카 원주민 혼혈 '샘 파더스'를 통해 한 명의 사냥꾼으로 성장해나가고, 숲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연이 주는 겸허한 긍지를 체득하며 자신을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에 속한 일원으로 여기게 된다. 2장에서 아이작은 무적의 곰 올드 벤을 숲속에서 홀로 마주하면서 올드 벤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보다는 신성한 존재를 보는듯한 경외감을 느낀다. 3장에서 16살이 된 아이작은 사냥꾼 일행과 함께 처음으로 올드 벤을 궁지에 몰게 되고, 리처드 소령과 샘 파더스의 희생을 딛고 백인계 아메리카 원주민 혼혈 '호겐 벡'의 칼로 올드 벤을 사냥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4장에서 21살이 된 아이작은 노예노동을 통해 불로소득을 취하던 자신의 가문을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5장에서 어린 시절 사냥 여행을 떠났던 숲으로 돌아간 아이작은 그곳에서그 곳에서 자연과 깊은 교감을 하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미치광이와 같은 행색과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다람쥐를 사냥하는 호겐 벡을 마주하면서 소설을 끝마치게 된다.

 '곰'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기둥 줄기로 이루어져 있다. 소년 아이작이 스승이자 동료인 샘 파더스와 함께 전설적인 곰 올드 벤의 뒤를 쫓다가 마침내 그 최후를 목격하는 이야기가 하나이고, 아이작의 할아버지 캐러더스 매캐슬린으로부터 내려오는 한 가문의 어두운 과거와 이를 감당하는 자손들의 개인사가 노예제도와 남북전쟁이라는 사회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다른 하나이다. 혹자는 두 다른 이야기가 섞여 있는 소설의 짜임새가 가독성을 떨어트리고, 그 때문에 4장의 매캐슬린 가문 이야기를 빼야 한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4장의 가문 이야기가 작가가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곰'은 겉으로는 한 소년의 성장 드라마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사실 아메리카 대륙의 자연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원주민들과 백인 이주민들의 사상 충돌을 묘사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자연을 소속의 개념으로 여기고 자연과의 공존과 동화를 추구하는 아이작과 샘 파더스와 같은 무리가 있고, 자연을 소유의 개념으로 여기고 자연의 정복과 지배를 추구하는 아이작의 사촌 매캐슬린과 호겐 벡과 같은 무리가 있다. 이 두 무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들이 전설적인 곰 올드 벤을 바라보는 관점과 유사하다. 샘 파더스에게 올드 벤은 투사의 대상이었다. 그가 노예였던 시절 간절히 염원하였던 야생의 순수한 자유를 샘은 올드 벤에게 투영하였고, 사냥 여행을 통해 그를 '사냥'하기보다는 매년 그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며 자유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다지려고 했다. 샘에게 올드 벤은 자신의 결의 그 자체였기에, 올드 벤이 죽음을 목격한 그 날 이후 샘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고, 곧 벤을 따라 죽음을 맞이했다. 아이작은 샘보다 더 나아가 올드 벤을 신성하고 존귀하게 여기며 그가 가진 숲에 대한 지배력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아이작에게 올드 벤은 자연의 힘 그 자체였고, 그렇기에 올드 벤이 죽은 후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던 사냥 모임도 해체되고 무자비한 개발로 숲이 파괴되기 시작했듯이 아이작에게 올드 벤의 죽음은 숲의 죽음, 곧 자연의 해체를 의미했다.

 매캐슬린과 호겐 벡은 아이작과 샘과는 판이한 태도로 올드 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올드 벤은 제거의 대상, 혹은 정복의 대상이었다. 매캐슬린은 올드 벤을 숲을 향한 인간의 확장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여기며 올드 벤에 의해 마을이 입은 피해에 대해 복수를 하기 위해 올드 벤을 기필코 사냥하고자 하였다. 올드 벤이 죽임을 당하면서 매캐슬린은 그의 염원대로 숲을 파괴해 농지를 넓히고 가문의 부를 더욱 축적할 수 있었다. 호겐 벡은 매캐슬린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올드 벤을 죽이고자 하였다. 호겐 벡은 총조차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무식자였지만, 그가 가진 야만성과 폭력성은 그를 올드 벤을 칼로 죽이는 위험한 사냥꾼으로 만들었다. 호겐 벡에게 올드 벤은 그에게 주어진 목표에 불과했단. 특별한 계기나 목적성 없이 자신의 성취감만을 위해 올드 벤을 사냥했던 호갠은 사냥 모임이 해체된 이후에도 숲에 남아 동물들을 사냥하며 자신의 욕구를 채워나갔다.

 윌리엄 포크너는 소설 '곰'을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 강제 이주와 흑인 노예제도라는 미국인들이 부끄러워하는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하면서, 당시 미국인들의 팽창에 대한 욕망과 그들로 인해 이뤄졌던 무분별한 자연 파괴를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성을 가지고 집필된 소설이기에 포크너가 백인들을 대표하기 위해 만든 매캐슬린이나 호겐 벡 같은 인물들의 폭력성과 비윤리성이 다소 과장되게 표현되고, 아이작과 샘의 모습이 지극히 숭고하고 순수하게 표현된 점도 없지 않아 있다. 사실 인류 전체 역사 가운데서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강자의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시기는 근 백몇 년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만큼 자연은 인류에게 거대하고 위험한 존재로 여겨져 왔고, 인간은 철저히 약자의 자세로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생존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약자의 위치에서 생존을 위해 힘을 다해 자연을 일부를 파괴하는 것은 극히 합당하고 윤리적인 모습이었지만, 자연 앞에 강자의 모습으로 설 정도로 과학과 기술이 개발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진 힘을 다해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자연과의 공존 안에서 기술이 발전하고 인류가 진일보하는 길을 일반 사람들을 알기가 어렵기에 이러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을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우리 연구자들에게 주어진 하난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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