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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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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주
댓글 0건 조회 5,486회 작성일 19-11-0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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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 – 금태섭

 

“신들의 왕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 세자매가 탄생하였다. 첫 번째, 정의의 여신 디케(Dike; 라틴어 Justitia), 두 번째, 질서의 여신 에우노미아(Eunomia), 세 번째,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Eirene). 이 세자매를 계절의 여신 호라이(Horae)라고 불렀다.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세상을 지배하던 황금시대는 신과 인간이 어울려 살면서 모두 행복했다. 크로노스가 물러가고 은의 시대가 오면서 인간들은 다투었고 신들은 천상으로 올라가 살았다. 인간들은 서로 살인은 하지 않았고, 제우스는 정의의 여신 디케와 자비의 여신 아이도스를 지상으로 내려 보내 인간 세계에서 정의를 담당하게 했다. 디케는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가 싸움이 일어나면 당사자들을 저울에 올려놓고 심판하였다. 하지만 금-은의 시대를 지나 청동의 시대가 되면서 인간들은 전쟁과 탐욕에 물들었고, 영웅의 시대를 지나고 철의 시대가 되면서 인간들이 집단으로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병들어가다가 지상을 포기하고 결국 하늘로 올라가 아스트라이아 (Astraea; 처녀자리 별자리)가 되어 인간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헤시오도스 신통기(神統記), 오비디우스 변신

 

눈을 가리던 가리지 않던, 한손에는 칼 또는 책을, 한손에는 저울을 들고 앉아있거나 서 있는 여인상. 법원에 가면 누구나 한번쯤 봤을 것이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이며, 그리스 신화에서 디케와 동격이다. 한 손에 저울은 다툼을 가리는데 있어서 편견을 버리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하겠다는 의미이고, 한 손의 칼이나 책은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겠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기 시작할 때부터 공정한 정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신화시대에는 ‘정의’라는 관념에 인격을 부여하여 사람들에게 정의를 설파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의와 질서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질서와 정의를 실행하는데 있어서 종교와 신의 힘이 아닌, 법이라는 규칙을 정하여 인간 사회에 실현하고자 하며, 이를 법에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다.

 

아직까지도 가장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바로 사형제를 필두로 하는 엄벌주의와 재교육을 통하여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는 교화주의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엄벌을 통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국가로는 미국, 중국, 싱가포르를 들 수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근대 이전에나 범죄자들에게 내리던 태형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가장 관심을 받은 사건은 마이클 페이라는 미국 소년이 싱가포르에서 자동차를 파손하고 다니는 말썽을 피우다가 붙잡혀서 싱가포르 법원에서 태형 6대를 선고 받은 것이다. 미국 언론은 싱가포르의 태형이 야만적이고 전근대적이라고 비난하면서 인권을 존중하라고 기사를 썼다. 그리고 당시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탄원서 까지 써서 집행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지만, 당시 싱가포르 총리인 리콴유는 서양의 윤리 의식을 비웃으면서 횟수만 감형 한 채로 태형을 집행하고 미국으로 추방해버렸다. 이 때 싱가포르 정부의 대답은 태형을 지지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매우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 싱가포르에서 법을 어기는 자는 합당한 형벌로 죄를 갚아야 한다. 미국인이라고 예외는 없다. 미국 정부는 18세 소년의 특별할 것 없는 범죄행위를 신경쓰지 말고 다른 지구적인 업무에나 충실해달라. 다만, 미국 대통령이 직접 친서를 보내 선처를 호소한 것을 참작하여 볼기를 6대에서 2대 깎아주겠다.”

 

재밌게도 미국인들의 60 % 이상은 마이클 페이의 태형에 대하여 찬성했고, 클린턴이 이를 간섭하는 것을 쓸 데 없는 오지랖이라고 비판하였다. 당시 부모들은 말썽피우는 자식들을 엄벌하지 못하는 미국 사회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겼고, 이를 예방하고 교훈을 주는 차원에서 저극적으로 싱가포르 법원의 결정에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물론 본인은 무조건 적인 엄벌이 범죄자의 교화와 사회 범죄 예방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정의롭고 공정하지 못한 미국의 법 집행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을 그대로 담았다고 본다. 살인 강간 등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집행 유예나 가벼운 형량을 받았던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 재력을 통해서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언론플레이를 통하여 자신의 범죄 행위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동정을 끌어내서 가벼운 처벌을 받으려고 한다. 그리고 고작(?) 물건을 훔친 죄목으로 무거운 형량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지극히 상식을 요구하는 대중들의 정의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고, 마침 싱가포르 정부의 태형 선고를 이런 미국 사회의 법집행의 모순에 정면으로 돌직구를 날리는 사이다 같은 판결이었다. 물론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고, 범죄자의 교화와 사회 구성원으로의 회복도 중요하다. 하지만, 죄를 짓고도 합당한 법적 제제가 없다면, 국가는 대중들에게 법치주의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범죄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 함께 교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법이다. 엄벌을 하는 것과 교화를 하는 것은 양립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같이 추구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범죄에 대한 공정한 처벌과 교화는 어느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개인이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동일 범죄는 동일하게 처벌해야 하는가? 개인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합당한 벌을 내려야 하는가? 대표적인 예시가 ‘레 미제라블’이라고 볼 수 있다. 물건을 훔친 도둑을 잡았다. 절도는 범죄행위이므로 징역 5년이나 훔친 물건 값의 5배를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도둑은 가난하고 배고프다 못해서 빵집에서 빵 하나를 훔쳤는데, 갚을 능력이 없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배고파서 그런 것이니 정상참작을 해주자. 이런식으로 한 두번 봐주면 가난한 사람은 배가 고프면 빵을 훔칠텐데 그때마다 봐줘야 하는가?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이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면서 법의 자비를 구할 것이다. 본인도 마찬가지 생각인데, 법이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에,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빵을 훔친 그의 행위를 동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절도 행위에 대하여 합당한 법의 처분이 없으면 법의 존재 의미가 흐릿해진다. 아마 본인이 담당 판사라면 다음과 같은 판단을 내렸을 지도 모른다.

 

“피고인은 누이와 조카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다 못해 빵을 훔쳤고, 이전에도 가난 때문에 여러 작은 범죄들을 저질렀다. 절도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행위이며, 법의 공정성을 볼 때 이는 죗값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피고인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해야하지만, 매우 가난하여 빵조차 살 수 없었던 상황을 고려하여 집행유예에 처하고, 그 기간동안 국가에서 실시하는 직업교육을 받고 다시는 절도를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해야 한다. 추후 다시 절도를 저질렀을 경우 이전의 범죄들과 합쳐서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하고 사회 복귀에 최선을 다하라.”

 

고작 몇줄 작성하기 까지 쉽지가 않았다.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은 법이고, 그 판단은 인간의 몫인데 이를 공정하게 판결하는 것이 참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정의의 여신 디케는 저울에 죄인을 올리기 전에 자신의 눈을 가리고 편견 없이 인간의 죄를 판단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최소한 눈을 가리면 그 사람이 누구던지 간에 같은 죄를 저지르면 똑같이 처분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직도 남아있는 철의 시대에 디케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의 죄를 판단한다면 그녀는 과연 눈을 가리고 죄를 판단할까? 아니면 장 발장처럼 상황을 참작을 해서 판단을 할까? 사법 불신이 여전히 남아있는 사회에서 법정 앞에 서있는 정의의 여신상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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