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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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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5,267회 작성일 19-09-0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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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헤르만 헤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릴 적 듣는 “일단 공부를 하라” 라는 말은 매우 옳은 말인 것과 동시에 굳이 알에 가두겠다는 말이다. 알은 좁은 세계를 만들지 언정 우리가 성체가 되기 이전에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아직 어린 우리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젓가락질을 배우는 유치원생이 어떻게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가장 획일화된 교육의 세계로 사람들을 집어넣는다.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비슷하게 자라왔을 것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성적이라는 객관적인 지표를 접하게 되고,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오를 수 있다는 성취감을 알게 되고, 지금 당장 놀고 싶은 마음보다는 공부를 해야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봉급이 높은 직장에 다니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역시 살아간다는 건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러야 한다. 목적지가 자기 자신 이어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알을 깨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렇게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세상에 대해 배운다. 소위 말하는 “공부가 다가 아니다.” 라는 말은 점점 알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오는 상징적인 구절이다. 이제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이야기들에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등의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 고등학교때까지는 획일화된 교육이었다면 대학은 어딘가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자유로운 생활이 주어지고, 그 덕에 우리는 성적과 같은 객관적인 지표에서 벗어나 ‘가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학업에서의 성취” 라는 가치를 말할 때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따진다. 정말로 진리를 깨우치는 것에 성취감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부를 통해 성적을 잘 받는 것에 기쁜 사람도 있으며, 더 심하게는 성적을 통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에 기쁜 사람도 있다. 아무튼, 세상을 이해하는 첫번째 스텝은 사소한 가치관 하나에도 다양한 방향성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 이후엔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다. 지금은 너무 많은 방향들이 있다. 이런 고민은 자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자유롭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수록 정해진 틀이 없게 되며,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올바를 지에 대한 고민이 늘어간다.

 

“데미안”을 보고 다시금 자각한다. 이런 끊이지 않는 고민을 안고 있는 개인의 삶은 지극히도 정상적이라는 것을.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역시나 내면의 고뇌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것 말이다. 어디선가 이런 문구를 본적이 있었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은 만큼 세계를 더 넓힐 수 있다." 헤르만 헤세는 세계의 개선까지도 인간이 내면의 길을 충실히 가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바 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자유롭고 넓은 세상 덕에 이런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고민을 통해 우리가 행하는 가치 있는 행동은 세상을 더욱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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