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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 대전과 독일의 범죄 – 프랑스 조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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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297회 작성일 19-09-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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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 대전과 독일의 범죄 – 프랑스 조사 위원회

 

이규섭

 

어린 시절 일본의 학자가 역사를 왜곡하려고 시도하려다 발각되거나, 일본이 독도와 관련되어 왜곡된 역사 교육을 한다든가 하는 뉴스를 접하면 처음에는 분노하다가도 가끔 의구심이 들고는 했다. ‘역사에 있어 진실은 무엇일까?’라는 보편적인 의심 말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역사적 사실들은 사실 누군가들의 말처럼 주입된 것이다. 모든 지식은 주입되기 마련이며, 쉽게 주어지는 지식일수록 쉽게 주입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인지 하나하나 판별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정해진 방법론에 따라 판단이 가능한 과학적인 사실들조차 조금만 복잡해지면 그 진위를 쉬이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신뢰할 만한 출처의 데이터를 구분해두는 것이며, 유명 학술지의 데이터라 하더라도 무턱대고 신뢰할 수 없다. 하물며 복잡한 인간사의 크고 작은 사실들은 그것이 기록으로 남았다 한들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역사학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과거에는 정보의 양이 많지 않았기에,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정보를 신뢰할 수 있었다. 아니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정보에 모두가 쉬이 접근 할 수 있게 되어 마치 정보의 평등사회가 이루어진 듯했다. 그것도 초기에 불과할 뿐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정보를 만드는 것 역시 쉬워지면서 정보가 범람하기 시작했고, 그만큼 기록된 정보의 신뢰도는 끝없이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정보를 듣든지 그것을 무작정 신뢰하는 것이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적이지 않게 만들어진 수많은 거짓과 왜곡된 진실들 속에 ‘우리는 충분한 자료 속에서도 진실을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역사는 원래 그 자체로는 가치 중립적일 수 없는 만큼, 현대의 역사는 그 진실을 판단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따른 파급효과로 시끄러웠던 한 달이다. 초 저성장 시대에 각종 경제 정책의 부작용으로 시름 거리는 사이 경제 근간에 영향을 미칠만한 사건은 전국적인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그 진원지가 일본이기에 사안은 더 복잡해져 버렸다.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적이었던 산업구조였던 탓에 그 타격이 더 컸던 만큼,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대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안이 현재 진행형인 만큼 각각의 대응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시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나는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에서, 일각에선 정부의 그리고 시민들의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여기서 그치지 못하고 한국 사회가 일본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일부 극단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한일 갈등의 핵심에 자리한 과거사에 대해 모욕적이리만큼 편향적인 의견을 거리낌없이 내놓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정확히는 과거사에 대한 국민의 보편적인 국민 정서를 비아냥대며, 나름의 근거자료를 토대로 고통으로 얼룩진 지난 일제강점기를 잊고 넘어가려는 발언에 망설임이 없어 충격적이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외면되었던 진실을 올바르게 마주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료를 기반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인간이 판단을 내리는데 필수적인 당연한 과정이며, 그것을 행하는 것이 가치 중립적인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잊은 모양이다. 그들은 일제를 미화하지는 않는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양 극단의 사이에 있는 의견이라해서 객관적인 의견은 아니라는 걸 모르는 걸까. 그들은 위안부 문제와 각종 수탈, 강제노역의 문제들과 더불어 독도 문제까지도 거론하면서 기존의 모든 역사관을 부정하곤 했다. 그러면서 언제나 자신들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말한다. 마치 일본이 우리나라에 그렇게 요구하듯이. 나는 분한 마음에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증거를 쉬이 내밀 수 없었다. 그렇게 ‘배웠으니까’. 각종 책과 뉴스를 통해 과거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들었으니까’. 그것이 내가 배운 역사적 사실들의 증거였다. 그 증거를 내가 어떻게 보여줄 것이며, 그것이 그들의 요구대로 ‘진실’인지까지는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이것이 그들의 함정이란 것을 이내 깨달았다.

여러 문제 중 독도 문제만 살펴보아도 그렇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독도에 대한 기록이 여러 사료에 나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조금만 알아보면 왜 우리가 독도 문제로 몸살을 앓는지 알 수 있었다. 몇 가지 자료들을 훑어보면 독도는 우리의 영토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사료에 언급된 독도의 명칭이 달라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논쟁거리가 되고 만다는 것, 해당 지역의 통치를 위해 독도에 사람이 살지 않은 채로 둔 기간이 있었다는 점. 종합적으로 우리 영토였음을 정황적으로 알 수 있지만, 일제 강점기마저 거쳐버리면서 국제법상으로 우리 영토임을 주장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부족한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일본이 영유권을 다투는 지역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면 이러한 국제법상의 맹점이 단지 우리의 잘못이나 문제가 아님을 증명해준다. 일본이 근거라고 내세우는 주장들이 헛소리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분쟁 거리가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분쟁이 분쟁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역사가 거짓된 것이라는 근거는 아님을 기억하자.


우리가 믿는 역사적 사실들은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증거들과 그로부터 유추된 정황상 옳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것을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완벽한 증거란 존재하기 어렵고, 진실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당사자들이 사라지면 더더욱 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목소리 크면 이긴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간신히 붙잡은 진실의 잔여물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그 진실을 지키는 것이 누군가의 아픔을 달래는 것이라면,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기 위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과거의 영광이 오류였음을 인정하는 것에는 관대해도 좋지만, 과오가 오류였음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해도 좋다. 무엇을 위해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지를 돌이켜보면 명료하지 않은가.

모두가 동의하는 보편적 진실은 존재하기 어렵다.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피해자는 피해를 확대하여, 가해자는 사실을 축소하여 설명하려 들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면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실은 당사자들조차도 알 수 없다. 그 순간이 지날수록, 그 순간에 대한 정보가 옅어져 갈수록 진실은 더욱 모호해져만 간다. 과거사에 대한 분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번 일련의 사태를 통해 우리는 모든 순간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기회가 되는 그 순간에 결론을 명확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1차 세계 대전과 독일의 범죄’는 1차 대전 독일군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자료다. 책에 서두에서는 승리자인, 그리고 피해자인 연합군의 입장에서 독일의 행적이 과장된 경우도 존재한다고 명시하면서 본 자료의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각 도시의 시장들이 자료를 모아 편찬한 이 책은 신뢰할 만한 자료들을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여, 당시 정황을 고려한 독일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이 저지른 잔혹한 만행은 분명 존재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자 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잔혹한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정치적인, 현실적인 이유로, 실리를 추구한다는 등의 명분으로 사실관계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전략적 행동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 단기적으로/개인적으로 효과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리고 다수를 위해서는 결국 해악일 뿐이다. 역사의 의의는 많고 많지만 과거의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고자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지나간 과오를 분명히 하지 않는 것은 최악의 행동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은 흐려지고, 각자의 기분에 맞는, 이해에 맞는 정보들에 묻혀간다. 그러면 다시금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에 대해서는 어찌할 방도를 모르겠다. 벌써 반세기 이상이 지나버렸다. 이 끝없는 분쟁의 순환을 어디까지 이어가야 할지도 고민이 된다. 그러나 적어도 진실을 알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역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불확실한 것을 확신하며, 남아있는 진실마저 호도하려 드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논리를 펼치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다. 결론을 내면 끝나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는 영역에서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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