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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지 - 개리 마커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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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5,509회 작성일 19-10-0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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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해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애인에게 거짓말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잘 생겼어)’와 같이 사소한 거짓말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거짓말이 도가 지나쳤을 때다.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자신의 학력과 연봉을 속이는 한 남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별볼일 없는 대학을 나온 그가 상대방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자신이 서울대 출신이라고 속였다. 그 당시에는 큰 문제없이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연애 기간이 길어지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상견례까지 한다면 그 거짓말은 상당히 심각해질 수 있다. 여자친구뿐만 아니라 여자친구의 부모님과 친척 모두를 속여야 한다. 자식을 낳는다면 본인의 아이에게도 거짓된 사실을 말해야 한다. 이쯤되면 진실을 말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은 망가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찍 사실을 고백했으면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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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화도 위 사례와 비슷하다. 인간은 10억 년에 걸쳐서 진화를 하여 현재의 상태까지 왔다.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서 네 발로 기어다니던 짐승에서 두 발로 직립보행하는 개체로 바뀌었다. 네 발로 걸어다닐 때 가장 적합한 구조인 일자 척추는 인간이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일자 척추는 직립보행에 적합한 구조가 아니다. 지금의 인간은 하나의 척추로 온 몸을 지탱하고 있다. 하나의 척추로 모든 무게를 지탱하고 있으니 척추에 무리가 가고, 이것은 현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디스크를 앓게 만들었다. 만약 척추가 직립보행에 최적화된 X자의 형태로 되어 있거나 의자처럼 네 개의 기둥이 각각의 무게를 분산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면 디스크 같은 질병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몸에 편한 모든 자세가 허리에 좋지 않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일자 척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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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에 MIT에서 뇌와 인지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30살의 나이에 종신 교수(tenure)가 된 스타 학자 개리 마커스는 이것이 ‘클루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클루지’는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즉, 진화를 하면서 그 당시에는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바뀌었으나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봤을 때에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한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인간이 직립보행에 매우 적합하지 않은 일자 척추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자 척추가 직립보행하는 인간에게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 구조가 네 발 짐승에서 진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생에서는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보다, 불완전한 척추를 가지고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이렇게 닥치는 대로 체계가 구성된 이유는 이전에 있는 것을 기초로 다음 진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골치 아픈 사랑니와 맹장, 온 몸의 곳곳에 나 있는 쓸데없는 털은 최적화되지 않은 진화를 보여주는 클루지들이다. 마치 처음에 학력을 거짓말했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고 그 거짓말을 번복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진화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덧댄’ 진화를 이루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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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간의 불완전함이 신체구조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수많은 ‘클루지’들을 토대로 한다. 아마도 열쇠나 자동차 열쇠, 핸드폰, 지갑과 같은 것을 어딘가에 두었지만 찾지 못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을 것이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가 놓아둔 물건을 찾지 못해 걸리는 시간이 매일 평균 55분이라고 한다. 컴퓨터의 저장소처럼 뇌의 곳곳마다 인덱스(주소)가 붙어 있어 찾고 싶은 내용을 쉽게 기억해 낸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시험을 위해 열심히 암기했다가 갑자기 잊어버린 내용을 기억해내려고 머리를 쥐어 뜯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컴퓨터처럼 인덱스를 가지고 기억을 하는 것이 아닌 어떤 맥락이나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의 행동을 하나씩 돌이켜가며 기억을 더듬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 또한 마찬가지로 진화와 관련이 되어 있다. 야생에서는 순간적인 위험이나 판단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컴퓨터와 같은 정확성보다는 신속성을 중시하는 기억체계가 발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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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소수의 인간만이 도전을 해서 성취를 이루는 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돌도끼를 가지고 생활하던 시대에 호랑이를 사냥하기 위해 기꺼이 도전하는 것은 결국 후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는 상황을 발생시킬 것이다. 안정을 강조하는 유전자가 과거에는 생존에 유리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현시대의 많은의 도전은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인간이 도전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것을 택하는 이유는 과거에 존재했던 클루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앞에서 제시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클루지’들은 인간의 사고 체계 곳곳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깊숙한 DNA에 숨어 사람들이 올바른 결정과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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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결정을 한다. 현재 본인의 모습은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결정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기에 올바른 결정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클루지의 속삭임에 유혹되어 많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깊게 내재된 유전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전을 하지 않는다. 반면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들은 정확한 판단과 결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안정성을 추구하는 과거의 클루지를 무시한 채 도전해 이루어 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클루지들이 지금까지의 내 의사 결정과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는지를. DNA 내에 숨어있는 클루지들이 나에게 어떤 속삭임을 했는지를. 새로운 도전을 꺼려하는 것은 나에게 쓸데없는 유전자가 있는 것이 아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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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클루지 때문에 그릇된 판단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클루지를 안다고 해서 우리가 매번 맞는 선택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안에 기재되어 있는 그 것을 인지하고 있을 때 우리의 결정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남들이 클루지에 빠져 있을 때, 정신을 차리고 옳은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매 순간 객관적인 판단을 하려고 하는 당신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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