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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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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365회 작성일 19-08-12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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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10년도 훨씬 더 전인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한 쪽 다리를 완전히 잘라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 쪽 다리가 땡겨서 병원을 자주 찾았었지만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고, 결국 전신엑스레이를 찍어본 후 오른쪽 허벅다리쪽 뼈에 정상적인 뼈보다 뿌연 무언가를 발견한 후에, 뼈에 생기는 종양일 수 있다며 큰 병원을 소개시켜 주었다.
대학병원에서 MRI 를 찍고 난 후에 의사선생님은 MRI 사진을 보시면서 "추가적인 검사를 더 해 보아야 겠지만, 최악의 경우 악성 골종양일 수 있고, 그 경우에는 최대한 빨리 다리 전체를 잘라내야 합니다" 라는 말을 부모님 앞에서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어려서인지 별 느낌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조금 멍했던 기억과 옆에서 흐느끼며 울고있었던 엄마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기억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라는 추가 검사 결과가 나왔고, 4개월이 넘는 입원기간과 회복기간이 있었지만 인공뼈 몇 조각과 허벅지 뼈를 감싸는 철판, 그리고 어지럽게 박혀있는 십 수 개의 못으로 다리를 지탱하면서 몇 년 뒤에는 정상인과 다를바 없는 상태로 회복되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또 그런 일들을 오랬동안 되짚어 생각해오면서 스스로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었었다.
다리가 없어지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다리가 정말 없는 채로 살아갔다면 내 인생을 비관하여 희망이 없는 인생으로 생각하고 살았을 것인가. 다리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은 골형성부전증 -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에 어려서부터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병이다 - 을 가지고 태어난 한 변호사가 자신의 경험과 여러 책들, 사례들을 토대로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장애인들의 존엄성을 다룬 책이다.
책의 앞부분에서 사람들은 장애인을 자신의 품위를 높이는 데 이용하는 일화를 소개시켜 준다. 한 장애인 요양원을 방문해 장애인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국회위원은 자신보다 덜 존귀한 장애인에게 자비를 배풀면서 자신의 '품위'를 높인다. 그 국회위원이 편하게 이동하기 위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평소 이용하는 엘레베이터를 경호원들이 막아서는 모순적인 행태는 품위를 높이는 데 아무런 지장이 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 말고도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보다 불쌍하고 힘들어보이는 사람을 보고, 도와줌으로써 자신 스스로의 품위가 높아졌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품격을 위한 퍼포먼스는 장애인들을 자신들과 같은 존엄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조금 혹은 한참 낮은 존재로 여기는 생각 속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또한 책속에서 '잘못된 삶' 소송이라는 사례를 제시한다.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실제 사례가 있던 소송인데, 산부인과 의사가 곧 태어날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진단하지 못하여서,
태어난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대리하여 산부인과 의사에게 '잘못된 삶'을 살게한 것에 대해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부모의 심정이 납득이 가면서도, 태어난 아이를 대리하여 부모가 '잘못된 삶'을 살게 했다고 의사에게 소송을 제시한 사례가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의사가 제대로 진단하여 장애인이 아닌 아이가 태어났다면, 지금 소송의 원고가 되는 그 아이는 이미 세상에 없을 터인데, 그렇다면 그 아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는 부모가 그런 소송을 했을때 어떤 상실감을 느낄 것인가.

이처럼 장애인들은 어쩌면 자신을 위한다는 품위있는 사람들의 모순적인 태도 앞에 좌절하며 조금이라도 장애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강요받는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 역시 장애인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잘못된 존재라는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그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다행히도 자신의 품위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들과 장애인들 스스로가 존엄성을 가지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 끝에
2000년대 후반부터 장애인들을 위한 법안들이 세워지고, 사회 곳곳에 장애인들을 위한 (예를 들어 지하철에 엘레베이터를 설치하는 등) 시설들이 만들어 지고 있다.
하지만, 작년 이맘 때 몇몇 뉴스에서 보도했듯이 지자체에서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노란색 점자 보도블럭을 없앤 다는 등의 왜곡된 품위를 내세우는 성숙하지 못한 행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혹은 남들이 볼 때 정신적/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되는 것도 그렇게 된 데에는 원인이 되는 상황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가진 사람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내가 17년전 다리가 잘렸다고 할 지라도 지금의 나는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무도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자들을, 실격시킬 자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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