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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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사람의 오감 중에서 가장 예민한 것은 후각이라고 한다. 작가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루누이는 보통 사람들이 가진 것보다 더 예민한 후각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런 그의 능력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시장의 풍경을 공간에 남겨진 잔향만으로도 복기하는 장면이다. 야채나 계란이 가득 담긴 바구니들과 포도주와 식초가 들어 있는 통들, 양념 재료나 감자, 혹은 밀가루가 가득 든 자루들, 공기 속에 남아있는 냄새들을 통해 그는 시장을 전부 다 본 것과 다름없이 묘사한다. 그렇게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향들을 어느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몸에 체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본인이 아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체취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루누이에게 이 사실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큰 충격이었다. 그는 체취가 없기 때문에 길을 지나다녀도 사람들이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매력적인 체취를 가진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처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매력적인 여성의 체취를 훔쳐 모든 사람들을 유혹시킬 수 있는 향수를 만들고 그 향수를 이용해서 모든 사람을 자신의 발 앞에 무릎 꿇게 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이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를 각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향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신뢰를 얻었지만, 그 사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루누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향에 이끌려 유혹된 것임을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그루누이에게서 나는 향을 사랑하는 것이지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그루누이는 그 향수를 몸에 부어 자결하는 길을 택한다.
단순한 결말이지만 책을 덮은 후 내 머리 속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자신만의 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루누이가 모든 사람을 유혹할 수 있는 향수를 가지고도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지 못하고 삶을 포기했던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향을 뺏어서 입은 그는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옷을 입은 광대에 불과했고 이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만족으로 이어질수는 없었다. 소설 속의 그루누이 선척적으로 체취가 없는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이는 소설일 뿐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미 자신만의 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향을 이루는 성분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두 개의 향수를 함께 뿌려서 독특하고 새로운 향을 내도록 하는 것을 레이어링이라고 한다. 향수를 레이어링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레이어링하는 두 향수의 조화이다. 두 개의 향수를 함께 뿌렸을 때 어떤 경우는 하나의 향수가 다른 향수의 향을 덮어 버리기도 하고 향수가 섞여서 오히려 하나의 향수를 뿌리는 것만 못한 향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내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편하고 행복한지,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 내가 참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등 여러가지 방면에서 나를 잘 알아야만 자신의 향에 어울리는 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 조화를 이루고 함께 시너지를 내는 관계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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