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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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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성원
댓글 0건 조회 5,212회 작성일 19-09-0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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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사람의 오감 중에서 가장 예민한 것은 후각이라고 한다. 작가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루누이는 보통 사람들이 가진 것보다 더 예민한 후각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런 그의 능력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시장의 풍경을 공간에 남겨진 잔향만으로도 복기하는 장면이다. 야채나 계란이 가득 담긴 바구니들과 포도주와 식초가 들어 있는 통들, 양념 재료나 감자, 혹은 밀가루가 가득 든 자루들, 공기 속에 남아있는 냄새들을 통해 그는 시장을 전부 다 본 것과 다름없이 묘사한다. 그렇게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향들을 어느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몸에 체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본인이 아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체취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루누이에게 이 사실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큰 충격이었다. 그는 체취가 없기 때문에 길을 지나다녀도 사람들이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매력적인 체취를 가진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처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매력적인 여성의 체취를 훔쳐 모든 사람들을 유혹시킬 수 있는 향수를 만들고 그 향수를 이용해서 모든 사람을 자신의 발 앞에 무릎 꿇게 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이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를 각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향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신뢰를 얻었지만, 그 사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루누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향에 이끌려 유혹된 것임을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그루누이에게서 나는 향을 사랑하는 것이지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그루누이는 그 향수를 몸에 부어 자결하는 길을 택한다.

 

  단순한 결말이지만 책을 덮은 후 내 머리 속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자신만의 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루누이가 모든 사람을 유혹할 수 있는 향수를 가지고도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지 못하고 삶을 포기했던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향을 뺏어서 입은 그는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옷을 입은 광대에 불과했고 이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만족으로 이어질수는 없었다. 소설 속의 그루누이 선척적으로 체취가 없는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이는 소설일 뿐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미 자신만의 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향을 이루는 성분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향수는 기본적으로 탑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로 이루어져 있다. 향수를 처음 뿌렸을 때 나는 향기가 탑 노트이며, 탑 노트가 사라지면서 향수의 중심이 되는 미들 노트의 향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흔히들 잔향이라고 표현하는 베이스 노트의 은은한 향만이 남아 공간이나 사람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향수의 발향은 앞서 설명한 대로 탑에서 미들, 미들에서 베이스 노트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지만, 사실 향수 자체는 의도한 분위기를 형성시킬 수 있는 베이스 노트를 기초로 하여 미들 노트로 구체화된 향 위에 탑 노트로 장식된 건축물과 같다. 나는 이런 향수의 특징들이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의 집합체가 각각 저마다의 향기를 가지며 베이스 노트를 이루고 그 위에 미들 노트를 형성하며 외적인 요소들을 통해 탑 노트를 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의 분위기를 향수로 이야기하는데 동의한다면, 자신의 향을 잘 알기 위해서는 베이스 노트를 이루고 있는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사실에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향수의 경우는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의 의도에 따라서 미들 노트와 베이스 노트에 쓰인 향을 의도적으로 대비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자신의 향을 이루는 베이스 노트는 미들 노트에 발현되는 향과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 사람이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들이 각각 저마다의 향기를 가지고 그 사람의 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외국인들에게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른 특이한 향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이에 따라 쌓여온 것들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향수를 함께 뿌려서 독특하고 새로운 향을 내도록 하는 것을 레이어링이라고 한다. 향수를 레이어링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레이어링하는 두 향수의 조화이다. 두 개의 향수를 함께 뿌렸을 때 어떤 경우는 하나의 향수가 다른 향수의 향을 덮어 버리기도 하고 향수가 섞여서 오히려 하나의 향수를 뿌리는 것만 못한 향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내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편하고 행복한지,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 내가 참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등 여러가지 방면에서 나를 잘 알아야만 자신의 향에 어울리는 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 조화를 이루고 함께 시너지를 내는 관계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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