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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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매달 A4용지 2~3장의 독후감을 쓴지 어느덧 5년이 가까워져 오지만 매번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서 끊임없이 많은 것을 보고 들어야 하고, 이렇게 경험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을 움직이는 주제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주제로 글을 써 내려가야만 남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다. 머릿속에 잉크를 채우는 것은 힘들고, 한 번 사용한 잉크는 다시 사용하기가 힘들다.
글을 쓰는 행위(주제를 정하여 써 내려가는 것)와는 별개로 글을 쓴다는 행위에는 또 다른 힘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내 생각을 정리한 후 글을 쓰고 나면, 내가 쓴 그 글에 적힌 대로 생각하게 되고, 또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글을 쓴 대로 행동하면 가치관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냐고 좋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은 항상 내가 닮고 싶은 이상을 노래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가치관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매번 든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그렇게 훌륭한 성품을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가치관을 지키며 사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글을 쓸 때 사회의 잘못된 점이나 정직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을 쓸 때가 많은데, 이러한 종류의 글을 쓸 때마다 나는 그렇게 살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사회의 잘못된 점이나 몇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는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떳떳한지, 내가 그들을 비판해도 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내가 지키지 못하면 글로 적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부담감이 점점 커지게 될수록 새로운 영역의 글을 쓰는 것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글을 쓰는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내가 지켜야 하는 가치관의 범위가 더 넓어지기 때문이리라. 내가 뱉은 말은 나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내가 누군가를 비판할 경우 나는 적어도 그보다는 깨끗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년 카이스트에 stipend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내 월급이 크게 깎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제도를 반대하지 못했던 이유도 이와 같다. 아무리 훌륭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내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가치관을 가지지 않은 사람보다 못난 사람이 되어버린다. 무지한 사람보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 더욱 나쁜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현재 법무부 장관의 후보자인 조국 교수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이 달라졌을 때, 존경받던 사람이 얼마나 신뢰를 잃고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들이 터지기 이전에 조국 교수가 집필한 몇 권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또한, 그의 SNS에서 그가 했던 몇몇 얘기들을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독재 시대에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 세대답게 그의 언행은 진보적이며,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말이 그의 발목을 잡아버렸다. ‘우리들은 ‘개천에서 용났다’ 류의 일화를 좋아한다. (중략)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와 같은 발언이나 ‘장학금 지급 기준을 성적 중심에서 경제상태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와 같은 발언은 지금 본인과 본인의 딸에 관련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들에 정확하게 반대되는 견해들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장관들의 청문회와 비교했을 때, 그는 비교적 깨끗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투기 없음/세금 탈루 없음/재산 축소 신고 없음/지위 남용 없음/증여세 탈루 없음 등 대부분의 그의 행적은 그를 공격하는 야당의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조족지혈(鳥足之血)의 흠이다. 황교안이 법무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가 될 때 진행했던 청문회에서 언급되었던 문제들과 비교한다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하지만 황교안보다 조국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그가 지금까지 얘기해왔었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특목고에 대한 비판, 그리고 기회의 평등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도(大盜)의 바늘 하나의 도둑질은 매우 작은 것이지만, 성인(聖人)의 작은 흠은 매우 크게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를 두둔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의혹들은 잘못 알려진 것이거나 불법적인 게 없으니 괜찮다고. 하지만 후보자나 그의 딸의 행동이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불법이라고 하면 당연히 그의 위신은 크게 떨어지고 비난을 받을 것임이 틀림없고, 합법이라고 할지라도 법의 교묘한 망을 피해서 본인이 했던 행동을 했으니 이 또한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보 지식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 것이다. 80년대 당시 독재타도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보수의 가치를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한편 한국 정치계에는 ‘대권’과 ‘소권’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듯한 사람들이 알량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당 외부의 비판을 외면하고, 정치인 자신의 자리와 관련 있는 사안에는 대의, 명분, 원칙을 다 던져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새삼 옛 선비의 ‘난진이퇴’의 정신, 즉 벼슬에 나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을 쉽게 여겼던 정신을 떠올린다.” 조국의 저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하다> 中
치열하게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감히 그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진보 지식인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면 자신이 했던 말과 일치되는 삶을 살라고. 말한 대로 행동할 수 없으면 차라리 말이라도 하지 말아 달라고. 본인이 썼던 저서들과 SNS를 다시 읽으면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삶을 제발 살아달라고. 본인이 이야기했던 ‘난진이퇴’의 정신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모순이 일상이 된 인간들은 그게 부끄러운지 모르는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조금의 오점도 견디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의 조그마한 흠결도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으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전 의원이 생각나는 요즈음의 일상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하였던가. 그의 삶에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행동이 내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길과 일치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에 잠기게 된다. 글을 쓰는 것이 그동안 쉽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더욱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지킬 수 있는 말과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장관 후보자와 그를 두둔하는 사람들, 그리고 현재의 정권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려고 한다. 부디 언행일치를 이루지 못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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