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각자의 유토피아(Utopia)를 현실에 관철하려는 욕망이 낳은 비극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5,296회 작성일 19-09-05 16:41

본문


[영화감상문 –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각자의 유토피아(Utopia)를 현실에 관철하려는 욕망이 낳은 비극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기에 ‘유토피아’다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의 ‘ou(없다)’, ‘topos(장소)’가 합쳐진 단어이다. 직역하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된다. 이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매우 이상적인 사회’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상적인 사회’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단언하건대, 그 대답은 합일(合一)을 이뤄낼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이상을 안고 살아가고, 이상은 곧 그 사람의 ‘절대로 틀릴 수 없는 것’, 즉 신념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유토피아에서 그것과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아니, 그 전에 그 안에서 살아갈 수조차 없다. 그렇다면 모두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 그 사회를 과연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아이러니하지만 답은 ‘그렇다’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그 사회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각자의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현실로 끌어오면 저런 모순이 생기고, 그렇기에 단어의 의미 그대로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지옥을 만든다

 

철학자 칼 포퍼(1902~1994)는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세상에 천국을 만들려는 시도가 지옥을 만든다’라고 말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이어진 ‘스페인 내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화 <판의 미로>는 바로 이 스페인 내전이 끝난 뒤인 1944년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다. 1939년, 내전이 끝나고 프랑코 정권이 들어서면서 스페인에서는 기나긴 독재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독재에 맞서 1944년 프랑코에 대항하기 위해 ‘스페인 마퀴스’라는 게릴라가 결성되었다. 결성된 게릴라는 프랑코에 대항하여 1950년까지 무장 투쟁을 이어나간다.


저녁 만찬 장면에서 비달 대위는 굳게 선언한다. 


“몇몇 사람들은 만인이 평등하다는 등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혔습니다. … 새 질서를 세우기 위해 남김없이 죽여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당연히!” 


비달 대위에게 프랑코 정권이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절대로 틀릴 수 없는 가치이다. 이러한 ‘유토피아’에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인 시민군들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의 곳곳에는 판타지적 요소가 녹아있다. 영화의 처음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동화 속 이야기를 따라가는 주인공 ‘오필리아’, 그리고 이를 돕는 ‘판’과 요정들까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동화적 요소들의 연출은 실로 ‘아름답지’ 못하다. 오필리아가 두 번째 임무에서 진수성찬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해 눈이 손바닥에 달린 괴물이 깨어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엄청난 기괴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괴물이 소녀를 따라온 요정의 목을 그대로 씹어 삼키는 장면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다. 어쩌면 감독은 이러한 연출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영화 속 인물들이 ‘자신만의 유토피아’라는 동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실로, 이렇게 잔인한 것이라고. 심지어 본래 살던 곳인 유토피아로 돌아가려는 소녀 역시, 이러한 잔인한 과정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KakaoTalk_20190903_222059269.png

(주인공 오필리아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판'. 영화 곳곳에는 이렇게 동화적, 혹은 판타지적 요소가 녹아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볼 수록 관객들은 그 연출이 실로 '동화스럽지' 않다는 것에 충격을 받게 된다. 잔인한 연출이 담긴 씬은 굳이 담지 않겠다.)






인간 세상에서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공주, ‘오필리아’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한 소녀(오필리아)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소녀의 눈동자를 확대하면서 장면이 전환되고, 한 지하 왕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녀의 상황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동화가 들려지기 시작한다. 동화의 내용은 이렇다. 아주 먼 옛날, 거짓도 고통도 없는 어느 지하 왕국에 인간 세상을 동경하여 자신의 왕국을 탈출한 공주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공주는 바깥에서 곧 눈이 멀고 모든 기억을 잃고 만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잊어버린 채 추위와 질병의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슬프게도 그녀의 아버지인 국왕은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왕국의 모습이 소녀의 눈동자를 통해 클로즈업되는 것이나, 소녀가 흘린 코피가 사라지는(즉, 고통이 없어지는) 연출은 동화의 주인공과 소녀는 뭔가 관계가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암시하고 있다. 단서는 또 있다. 동화 속에서 묘사되는 지하 왕국 같은 공간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다. 그런 곳에서 살던 공주가 인간 세상에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오필리아 또한 자신의 세상에서 그리 적응을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자신의 새아버지인 비달 대위에게 왼손으로 악수하려는 모습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KakaoTalk_20190903_222058430.png

(자신의 양아버지인 비달 대위와 왼손으로 악수를 하려 하는 오필리아와 이를 부드럽지만 냉정하게 타이르는 비달 대위.)



동화 속에서만 존재하던 요정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서 오필리아는 현실과는 끝내 벽을 쌓아버린다. 그리고 요정의 인도로 오필리아는 ‘판’을 만나고, 자신이 사실은 그 동화 속에 등장하는 공주였다는 말을 들으면서 현실과 오필리아 사이의 벽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는 정부군 속에 숨어있던 시민군의 일원 ‘메르세데스’와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정부군 진영 내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던 메르세데스마저도 요정을 믿냐는 오필리아의 질문에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두 번째 임무에서 실패한 오필리아는 이후 극적으로 다시 판과 재회한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를 얻게 되는데, 그것은 그녀의 동생을 미로로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오필리아는 비달 대위의 방에 눕혀져 있는 동생을 가까스로 데리고 탈출하지만, 비달은 오필리아를 끈질기게 추격한다. 무사히 미로에 도착한 오필리아에게 판은 데려온 동생의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리라고 주문하나, 오필리아는 이를 끝내 거절한다.


여기서의 연출 또한 굉장히 흥미롭다. 오필리아를 뒤쫓아온 비달 대위에게는 판이 보이지 않는다. 비달이 보는 오필리아는 그저 혼자서 중얼대고 있을 뿐이다. 소녀의 고집을 꺾지 못한 판은 결국 소녀의 눈에서도 사라지고, 소녀는 비달에게 동생을 빼앗긴 채 살해당하고 만다. 결국, 소녀는 죽은 뒤에야 현실을 벗어나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오필리아는 남이 아닌 자신의 피를 뿌리는 마지막 관문을 무사히 마쳤다면서 국왕과 왕비, 그리고 왕국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한편 그러한 오필리아를 보는 ‘메르세데스’는 그녀의 죽음에 오열하고 있다. 비달 대위도, 심지어 오필리아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었던 메르세데스마저 그녀가 보는 세상을 공유할 수 없었다. 전쟁을 치르면서 그들 모두가 바라고 있었을 ‘유토피아’는 본래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었던 오필리아만이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죽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고서야.



KakaoTalk_20190903_222059720.png


KakaoTalk_20190903_222102351.png


(비달 대위의 친아들을 빼돌리다가 비달 대위에게 총을 맞고 죽어가는 오필리아. 오필리아는 죽어가면서 동시에 자신이 본래 공주로서 있어야 하는 곳에 돌아가는 중이다. 그녀의 세상은 비달 대위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물론, 가장 가까이 지내던 메르세데스와도 공유할 수 없었다. 한 편으로는, 이것이 단순히 오필리아의 망상에 불과한지 아니면 정말로 공주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인지 일부러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으려는 연출 또한 굉장히 흥미롭다.) 


 

그녀는 정말로 동화 속의 공주였나, 아니면 그저 가엾은 소녀일 뿐이었나

 

재미있는 점은, 영화를 끝까지 보아도 소녀가 겪는 일이 진짜인지, 아니면 그저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녀의 욕망이 빚어낸 망상일 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관객은 그 단서조차도 찾을 수 없다. 오필리아는 죽고 나서라도 자신의 왕국을 온화하게 다스리는 공주로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그녀도 그저 유토피아를 관철하려는 시도에 희생된, 이름 그대로 비극의 ‘오필리아’였을 뿐일까. 그 대답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