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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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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291회 작성일 19-09-0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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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도서관 3층 한쪽에 놓여진 시집 코너. 그곳은 도서관이 새로이 단장한 이후로 내가 처음으로 본 코너였다. 시집이라는 이름이 주는 낭만과 책들의 형형색색의 자태는 마치 나의 이름을 부르는듯 하였고, 나는 홀리듯이 코너로 달려가 책장에 꽂혀있는 시집들을 펼쳐볼 수 밖에 없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고등 국어 교육과정을 밟지 못한 나에게 시집은 신선함과 설레임으로 다가왔지만, 시집들을 읽어볼 수록 그 감정은 점차 실망감으로 변모하였다. 수채화풍의 서정적인 그림으로 장식된 시집들의 아름다운 표지와 달리 그 안에 담겨진 내용들은 왜 이리 공감도, 몰입도 되지 않는 것일까? 나도 감성은 죽고 시집이 버려지는 이 시대의 흐름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시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며 시집 탐방을 포기하려는 찰나, 샛노랗고 별볼일 없어보였던 작은 시집의 짧은 시 하나에서 나는 시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다.


흔적

                        박이도


지나온 길 뒤돌아본다

아무 흔적이 없다 안심이다

서산에 지는 해를 따라

내 생의 헌 구두 한 켤레 묻어 두고

홀연히,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아, 발자국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내 영혼이 영원 속으로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은 남긴다는 전통적인 지혜를 비튼 이 시에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는 한 노인의 평안함이 담겨져있다. 인간에게는 보편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후대에게 기억되어지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음에도 시의 화자는 그러한 욕심에서 해방된 어투이다. 어쩌면 화자는 이생에서 경험할 수 없는 영원한 삶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지나간 세월에 대한 미련도 욕심도 남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뻗었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박이도 시인이 죽음 뒤의 영생에 대한 소망이 있는 종교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어쩌면 나와 같은 기류의 철학을 지닌 시인이 쓴 시이기에, 짧은 글 몇줄 만으로 나의 마음 속에 감동 남길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박이도 시인의 열한번째 시집 '빛과 그늘'에는 '흔적' 외에도 다양한 시들이 담겨져있고, 여러 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 속에 작가가 담겨놓은 몇가지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소리와 침묵'이다. 박이도 시인은 '소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진정한 진리를 탐고하고자 하며, 궁극적인 소리는 '침묵의 소리', 즉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닌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임을 발견하게 된다. 시인은 먼저 '침묵의 언어'를 통해 사람의 말에서는 진리를 찾을 수 없음을 깨닿고 더욱 원초적인 소리를 찾아 나선다. 그 후 '산행'과 '마음의 창', '대나무 숲에서'를 통해 산과 바람, 숲과 같은 자연의 소리를 찾는다. 그리고 결국 '귀로 듣는 가을'과 '허물 벗는 소리'를 통해 신이 자신의 모습을 고요하게 들려주는 '침묵의 소리', 즉 사물과 자연에 담겨져있는 신성의 흔적을 들음으로써 시인이 가지고 있던 이데아를 향한 열망이 충족되게 된다.


  시집에 담긴 두번째 키워드는 '평화'이다. 시집에 담긴 시들 중 특히 3부에 수록되어있는 시들은 유독 제목에 '평화'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다. 이러한 평화에 관련된 시들에는 평화를 위협하는 두가지 세력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전쟁'이며 다른 하나는 '그늘'이다. 박이도 시인은 평안북도 출신이었으나 6.25 전쟁 통에 남쪽으로 피신을 온 사람이다. 6.25의 잔혹한 역사를 경험했던 시인은 '평화를 생각함'과 '평화'를 통해 전쟁 없는 사회를 노래하였고, '평화는'과 '자유와 평화'를 통해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모두가 누리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박이도 시인은 '그늘처럼 다시 채워지는'을 통해 삶이 잔잔하고 안전할 때에도 그의 마음의 평화를 위협하는 '그늘'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시인이 '그늘'을 '마음 속의 어둠', '인생의 그림자', '육신의 허물'로 표현하는 것을 통해 그 궁극적인 의미는 인간의 원초적인 죄성과 비윤리적인 본능이라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은 책과 동일한 제목의 '빛과 그늘'이라는 시를 네편의 독립적인 시로 나누어 작성함을 통해 그가 어떻게 죄의 그림자를 지닌 상태로 교회당을 들어가, 그 속에서 '침묵의 소리'를 듣고 빛을 만나고, 결국 그늘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는지를 단계적으로 묘사한다. 결국 '평화'의 키워드 속의 시들에서도 박이도 시인은 평화를 얻기 위한 궁극적인 해법은 '침묵의 소리', 즉 신적인 진리라고 재차 주장한다.


  나는 시를 단순히 순간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짧은 글귀 정도로 생각했다. 생각의 깊이나 철학 없이 찰나의 낭만과 감성만을 담은 책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훑듯이 읽어도 그만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박이도의 '빛과 그늘'은 짧은 감상의 모음 그 이상의 메시지를 담은 짜임새 있는 외침이었다. 한번 읽어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시에 담겨진 메시지와 의미를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깨닿게 되고, 서로 독립적으로 보였던 시들이 서로에게 질문과 대답을 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시집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달달하고 때로는 씁쓸한 박이도의 '빛과 그늘'와 같이 나도 나의 사상과 가치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나의 생각이 다채로운 색깔로 꾸며지게 될까? 박이도의 '내 시의 첫 줄은'을 생각하며 나의 오늘 하루를 시로 적어보려 한다.


내 시의 첫 줄은

                                    박이도


내 시의 첫 줄은

항상 낯선 길에 나서는 어린 아이와 같아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무엇이 나타날 것인지 궁금해


어둠이 순두부처럼 흩어지며

우유빛 새벽 동이 트여 오는 그 길로

엄마 찾아 허둥대며 나서던 겁보


호기심이 커져 두려움으로 치달리면

가슴의 맥박은 큰 붕알시계 소리처럼

기우뚱 기우뚱 숨이 차다


내 시의 첫 줄은

따듯한 마음 속 박동치는 음악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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