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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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전쟁_그레이엄 앨리슨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두고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라고 평가한다. 현 시대 국제정치적 용어로 정리하자면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한국대사를 역임했던 아시아 전문가인 스티븐 보스워스는 2009년에 특사로 아시아에 파견됐었다. 당시 그는 아시아 방문 과정에서 각국 정상들을 만났고, 이들의 반응을 보고 믿을 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이들이 예전에는 각국의 위기나 문제에 대해 워싱턴의 생각을 물었다면,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생각은 무엇인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역시 말년 중국 방문 시, 연설문 작성 과정에서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것일 수도 있다’라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는 것인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의 부상은 미국과의 전쟁을 예정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지정학자 할포드 매킨더 역시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전 세계를 지휘한다는 선언을 남겼다. 그렇다면 정말 전쟁은 필연적인 것인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은 ‘더 길게 되돌아볼수록 더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가 안보 및 국방 정책 분석가였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지 역사적 선례를 통해 탐구했다. 주요 신흥세력이 지배세력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위협한 열여섯 가지의 경우 중, 비극적인 결과를 피할 수 있었던 경우는 네 차례 밖에 없었다. 네 경우 모두 양측이 똑같이 상황을 조정하기 위해 태도와 행동에서 고통스러운 노력을 기울였다.
본 책에서의 결론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수십 년 안에 미국과 중국의 전쟁 가능성이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전쟁은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중 미 중간의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경로는 총 다섯 가지로 그 중 두 가지는 한반도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언급한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GSOMIA)
이 맥락에서 저자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현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의 종료 결정을 우려했다. 이 종료 결정에 대해 국내 수구 보수 진영 역시 안보를 무시한 백해무익한 자해행위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지소미아 종료가 안보에 문제를 끼치고, 미-중 간의 관계를 악화시킬까?
2016년에 졸속으로 체결됐던 지소미아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미일동맹에 의한,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를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을 향한다.’ 우리나라는 미일동맹이 암시적인 적으로 삼아온 북한과는 물론이고 중국 및 러시아와 가장 가까이 있다. 그래서 미일은 오래전부터 한국을 3자 동맹의 전초기지로 삼기를 원했다. 유사시 이들 나라로부터의 거동을 가장 먼저 탐지-추적할 수 있으며, 그 정보를 신속하게 전해주면 대응이 신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소미아는 한미일 3국이 사실상의 집단적 자위권을 공유하며 삼각 동맹으로 향하는 시발점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소미아 종료는 태동기에 있었던 삼각동맹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일 각국의 보수진영들도 이 점을 부각하고 있다.
삼각동맹은 정말 도움이 될까?
지소미아 종료에 따른 안보적 득실은 이 질문으로부터 따져볼 수 있다. 군사동맹은 ‘공동의 적’이 있을 때 존재한다. 한미일이 군사 동맹을 추구할수록 명시적인 적인 북중러와의 관계는 나빠진다. 그리고 이들 세 나라의 결속을 야기한다. 신냉전이다. 우리는 냉전 시대의 가장 큰 피해국가 중 하나였다. 즉 우리나라에게는 한반도에서의 탈냉전을 도모하면서 동북아에서의 새로운 신냉전 출현을 예방하는 것이 사활적인 과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신냉전을 재촉할만한 지소미아에서 발을 뺀 것은 안보적 자해행위가 될 수는 없다.
국제정치학자들 중 몇몇은 냉전을 긴 평화(long peace)라 한다. 3차 세계대전이 아직 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강대국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냉전 시대 세계 곳곳에선 열전이 벌어졌고, 1~2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수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에는 한국 전쟁도 있다.
신냉전이 도래했을 때 우리에게 다가올 위험도 같은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미일 입장에서는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대비를 강화할수록 북한과의 전쟁은 해볼만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과의 사이에 동해와 태평양을 둔 그들과 휴전선을 둔 우리와는 입장이 완전히 다르고 또한 달라야 한다.
아울러 한미일이 삼각동맹을 추구할수록 미일동맹과 중국의 무력 충돌 발생 시 한반도가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가 동북아 신냉전의 출현을 막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중립적인 위치를 확보해야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일찍이 윈스턴 처칠은 취약성이 안보에 기여한다고 했다. 적대 관계에 있는 쌍방 가운데 어느 한쪽이 완전한 방비에 도달할수록 다른 한쪽은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감을 가진 쪽도 이내 맞대응을 할 것이다. 군비경쟁과 안보 딜레마는 격화되기 마련이다.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하고 이에 따라 유사시 정보를 일본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취약성은 커질 것이다. 이것이 일본뿐만 아니라 일본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미국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취약하기로 따지면 북한이 더하다. 정도의 차이가 크더라도 중국도 마찬가지다. 취약성이 안보에 기여한다는 것은 상호간에 억제가 작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것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 간 외교가 수반된다. 외교를 통해 적대관계를 평화관계로 전환하고 무력을 줄여나갈 때 더 튼튼한 안보를 기약할 수 있다. 이는 책에서 언급된 ‘필연적인 전쟁을 피한 4가지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지소미아 종료 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도 여기에 있다. 한미일이 추구해야 할 것은 군사협력이 아닌 평화협력이다. 북일정상회담이라도 열리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동참하지 못한 일본의 소외감을 씻어줄지도 모르겠다. 이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일관계 역시 근본적으로 바꿀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한국의 부상과 남북의 관계, 더 나아간다면 궁극적으로 통일된 한국의 모습은 일본 내에서 ‘일본을 향해 뻗친 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최근 경제 도발도 이를 견제하고자하는 성격이 짙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이러한 방향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고도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평화경제론이 극일보다는 일본과도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자 하는 취지임을 알려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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