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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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TK라고 불리는 대구-경북 지방은 과거부터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에도 과반수가 보수 정당을 투표한 지역이다. 가끔 친구들끼리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에도 저 친구는 TK이기 때문에 보수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TK 지역에서 태어났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식처럼 내 고향인 TK 지방에 내려가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친척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 있다 보면 이러한 사실들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어디서 생겼는지 알 수도 없는 가짜뉴스들이 많이 들린다. 굳이 어른들에게 언성을 높이기 싫어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말 어떤 때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정말 많다. 이분들은 옛날부터 시골에 살았던 어르신들이기에 재산도 그리 많지 않으며, 몇몇 분들은 나라에서 어느 정도의 지원을 받는 분들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일반적으로 평등과 분배의 가치를 중심에 두는 진보 정당에 대해서는 비난을 하고, 성장과 자유의 가치를 중심에 두는 보수 정당을 두둔한다. 실제로 그들이 받는 대부분의 지원은 평등과 분배의 가치에 의해 생긴 정책임에도 말이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이러한 모순적인 사실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선거권을 가지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상위 1% 미만의 사람이 99% 이상의 부를 가지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서 아직도 절반 가까이 되는 국회의원 의석을 부자를 대변하는 보수 정당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많은 부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투표하는가.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는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자발적으로 나가 목소리를 높이는가. 정말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토마스 프랭크의 저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는 미국의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캔자스 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위해 투표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우파의 전략적 성공이라고 이야기한다. 우파들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어 지지층을 결집한다. 낙태와 동성애 찬성과 같은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는 사회 문제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경제적인 정책은 뒤로 숨기면서 전통적인 가치를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방법들을 이용해서 우파들은 미국의 가난한 주들에서 승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전략은 더욱더 쉽게 먹힌다. 굳이 가상의 적을 만들지 않아도 ‘북한’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6.25의 트라우마가 깊게 박혀 있는 어르신들에게 친일파보다 무서운 것이 ‘빨갱이’이다. 보수 정당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선거를 진행했고, 많은 선거에서 승리했다. 전반적으로 팽배해있는 많은 인식은 사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전통적 가치를 교묘히 자신들의 정치색에 섞어 무엇이 진실인지를 파악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보수적 가치와 전통적 가치는 구분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전통적 가치를 지지하는 어르신들은 자연스럽게 보수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를 지지하는 이유가 단순히 우파의 전략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보수적이다. 그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안전보건관리공단에 근무하는 내 친구가 실제로 겪고 있는 이야기이다. 친구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친구는 매일 일용직 근로자들을 만난다. 친구는 그들을 상대하는 일이 어떤 일보다 힘들다고 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거칠고 막무가내라고 했다. 본인의 마음이 들지 않으면 불쾌함을 겉으로 내비치는 것은 물론이고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특히, 본인이 여자이기에 더 무시한다고 하며, 지금의 시대에 걸맞지 않은 ‘아가씨’라는 표현을 거의 매일 듣는다고 한다. 그들은 변하는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분이 계셨는데, 어떤 독지가가 김치를 수천만 원어치 기부를 하고 갔다. 동사무소에서는 대상자를 선별해서 기부받은 김치를 사람들에게 가져가라며 문자를 보냈는데, 사람들이 왜 배달을 안 해 주냐며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사무소에서는 인력도 시간도 없어서 직원이 자발적으로 몸이 좋지 않으신 몇몇 분들에게 배달해 주었는데, 배달을 못 받는 집에서 자신의 집에는 왜 배달해주지 않느냐며 항의 전화가 더 많이 왔다고 한다. 그분이 이야기하길, 가난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착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을 비난하려고 이러한 일화를 소개한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착하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나쁘다는 인식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약자라고 무조건 선(善)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억세고 거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하지 않는, 희망이 없는 삶을 살아야하는 동시에 당장에 먹고 살 여유마저 없으니 삶이 각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도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현재의 제도와 생활 양식 속에서 고통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변화를 원하는 진보주의 성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기존의 방식에 적응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함으로써 기존의 방식에 순응하게 되는 보수주의 성향을 띄게 된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각박한 삶 속에서 그들은 변화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삶을 영위하는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변화에 쏟을 에너지가 없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고집하며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6월에 부자일수록 민주당을 지지하고, 가난할수록 한국당을 지지한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일반적으로 '부자(富者)의 정당'은 한국당, '빈자(貧者)의 정당'은 민주당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을 살필 수 있는 삶의 여유와 사회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사람을 진보적으로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것은 현재 20대가 정치 관심도가 낮고 보수화가 되는 이유와 같다. 좋지 않은 일자리들과 낮은 취업률은 청년들을 미래가 아닌 현실에 집중하게 했다. 많은 사람이 한정된 일자리를 가져야 하니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기저 속에서 경쟁은 매우 치열해졌고, 같은 또래는 이겨야 할 경쟁자로 전락해버렸다. ‘거지들은 자기보다 많은 수입을 올린 다른 거지를 시기할 망정, 백만장자를 시기하지 않는다.’라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처럼 우리 속에 응축된 화는 도리어 같은 또래나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가 버렸고, 사회는 더더욱 각박해지고 보수적으로 변해버렸다.
우리가 복지 정책을 널리 시행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기존의 절망적인 생활 방식을 변화할 여유도 없는 사람들에게 복지 정책을 통해서 최소한의 여유를 주어야 한다. 현재가 풍족하나 미래가 없으면 절망, 현재가 빈곤하나 미래가 있으면 희망이라고 했다. 여유가 있고 앞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은 쪽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온종일 일에 매달리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살아감이 보장된다면 본인이 아니라 주위에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가 ‘보수’의 가치를 따를지 ‘진보’의 가치를 따를지 제대로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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