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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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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지희
댓글 0건 조회 5,520회 작성일 19-07-0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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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김영하-

 


 

얼마전 아주 재미있게 봤던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입에도 잘 안 붙는 이 프로그램명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줄임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 패널들이 한 도시를 여행가서 하루 종일 본인이 다니고 싶은 곳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만나서 자기가 다녀왔던 곳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방송 패널들은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고 각자의 눈으로 그 장소를 본다. 덕분에 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건축가로서 보았고, 작곡가로서 여행했고, 물리학자로서 생각할 수 있었다. 특히 소설가 김영하씨가 말할 때는 무릎을 탁 칠 때가 많았는데, 여행 중 떠올랐다가 흩어지는 생각들을 하나에 꿰는 통찰력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여행을 좋아한다. 왜 좋은가? 그 이유는 다양하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누구나 각자의 일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일상에 지친 사람에게는 가끔 일상의 부재가 필요하고 그 시간이 바로 여행이라는 것이다.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 이유는 여행을 통해서 ‘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마음의 여유가 생각보다 없다. 항상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생각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직장동료나 친구, 혹은 가족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여행을 가면(특히 혼자 가면) 모든 것은 온전히 나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지금 호텔방에서 나가고 싶은지, 아니면 호텔에 오늘 하루 머물고 싶은지, 몇 시에 나가고 싶은지. 점심은 간단히 먹을지, 이것저것 시켜 놓고 풍요롭게 먹을지. 저기 오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볼지, 아니면 구글맵을 좀 더 유심히 볼지. 매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그대로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내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여행의 시간이 즐겁고 신기하다.

 

나의 여행은 계속 변화해왔다. 그것은 그 여행의 주체자인 ‘나 자신’이 계속 변했기 때문이다.

 첫 해외여행을 했을 때는 여행을 통해 뭔가를 배우고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행 내내 뭔가를 계속 수첩에 적었고 안내판이란 안내판은 모조리 다 사진을 찍어왔다. 그리고 나는 여행 이후에 그 메모도, 안내판 사진도 한 번을 안 봤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효율’을 추구했다. 길게 여행을 가기가 어려우므로 일단 가면 가능한 많은 곳을 다녔다. 가기 전 엑셀로 1일차, 2일차, 3일차… 여행 경로를 세우고 시간 단위로 계획했다. 아침 7시에 나와서 밤11시에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하루에 3만보를 걸었다. 여행이 끝나고 나는 4박 5일동안 체중이 5kg 빠져 있었고 다시는 이렇게 여행을 하지 않는다.

 요즈음 나는 느긋하게 여행을 한다. 얼마 전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혼자 온 여행객들만 묵을 수 있는 독특한 컨셉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 입실할 때 게스트하우스 직원분이 나에게 물었다. “제주도에 여행 오신 이유가 뭔가요?” 나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하려고요.” 실제로 거창하게 뭘 하지 않았다. 하루는 저녁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별 보러 가는 투어에 참석했고 하루는 다도 수업에 참가했다.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워진 하루를 보냈다.

 여행의 스타일도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인생의 시기마다 이렇게 다채롭다.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에 이런 말이 있다.

‘역사상 유명한 스파이는 모두 실패한 스파이다. 최고의 스파이는 절대 발각되지 않고, 그래서 조용히 은퇴해 노후를 즐기다 죽는다. 부주의 때문에 자신을 노출시켰다 거나 인간적인 약점 때문에 돈이나 여자 같은 유형에 넘어간 자들이 바로 실패한 스파이이고, 이들은 실패했기 때문에 유명해졌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했던 여행들이 생각났다. 아무 실수 없이 계획대로 진행된 여행은 잘 생각이 안 났다. 오히려 실수가 많았던 여행들. 가령 예를 들면 6주간 여행의 마지막 주에 실수로 누른 버튼에 카메라 메모리가 포맷됐거나, 13시 비행기를 오후 3시로 착각해서 공항에 도착했거나, 공항 라운지에 휴대폰을 두고 입국심사를 했던 이런 실수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황당하고 짜증났지만 지금은 기억에 남아 여행이 끝나고도 추억을 만들게 된다.

 


  ‘모든 사람은 가끔씩 맛보지 않으면 안되는 반복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만나 안부를 묻거나, 좋아하는 공연을 보거나, 진탕 술을 마셔야 된다거나 하는 것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생각했다. 나에게 그것은 여행이다. 어느 날 욱해서 비행기표를 결제할 때부터 지친 몸으로 공항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순간이 즐겁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나 후기를 읽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가본 장소는 내가 아는 곳을 방문한 것처럼 즐겁고 아닌 장소는 가보고 싶은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이 책도 즐거웠다. 여행 중 떠올랐다 흩어졌던 생각들을 하나로 꿰어 이야기해주는 시원한 통찰력이 있었다.


  이번 여름엔 파리에 갈 것이다. 이 책처럼 많은 생각을 하고 매 순간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상을 견디며 지냈던 나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다.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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