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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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존 번연 지음
어떤 집단에 가든 내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이 그 집단 내부에서 알려지게 되면, 종종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거의 시비의 형태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늘 있어왔다. 그들 중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사람들은, 교회를 ‘조금’ 다녀 봤다던가 성경을 ‘조금’ 읽어 보아서 그들의 나름대로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 정의를 내려버린 사람들이었고, 가장 최악은 교회를 다니거나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고 신문기사나 여러 잡다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커뮤니티에서 교회에 대한 단편적인 그리고 왜곡된 진실을 접하고 사실로 받아들여버린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과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장난을 살짝 얹어서 유쾌하게 말을 섞을 때 가장 많이 접했던 말은 이런 종류의 문장이었다. ‘어차피 예수 믿는다고 죽기 전에 말로 고백하면 천국 가니까 난 그때 그렇게 하고 천국 갈래’
이렇게 말해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 바로 이 ‘천로역정’이라는 책이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천로역정’ 이라는 말을 들어 왔고, 어린 시절 수련회에서 ‘천로 역정’이라며 여러 가지 코스를 만들어 놓고 게임이나 극기훈련 등을 매번 해왔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책을 구매해서 읽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이 책이 수많은 깊이 있는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에게 추천되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고 있는 짐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짐을 지고 있어야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뜻이다. 짐을 진다는 것을 무엇인가? 세상의 것들이 나 자신에게 버겁게 느껴진다는 뜻이며, 이는 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 더 나아가서는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일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이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은혜를 체험할 때, 비로소 홀가분해 질 수 있다. 즉, 극단적인 자아 신뢰와 교만함을 가지고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짐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을 때 천국이 바로 앞에 있고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천로역정’의 본 루트가 시작된다. 주인공인 ‘크리스찬’은 천국으로 걸어가는 곧게 뻗은 ‘좁은 길’ 에서 길 바깥으로 끌어내려고 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사심’과 ‘무지’와 ‘무신론자’ 등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여러 그럴듯한 논지들을 펼치며 크리스찬을 좁은 길에서 좀 더 쉬워 보이는 길로, 좀 더 편안해 보이는 길로, 좀 더 풍요롭게 보이는 길로 끌고 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 길들의 끝은 결국 멸망이었으며 죽음이었다. ‘크리스찬’이 가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고 험한 길이었지만, 한 방향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천로역정’은 항상 행복과 빛이 함께하는 길이 아니다. 그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순례의 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길은 절대 아니며, 철저한 자기 부인과 통제로 이루어진 길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빌미로 욕심을 채우려고 하거나 혹은 구원으로 이루는 길을 그저 지식적으로만 알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걸을 수 있는 길을 더더욱 아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만, 크리스천의 삶을 통해 그 믿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행위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을 받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행위로써 드러나게 된다. 죄를 두려워하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단지 지옥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삶을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첫 문단 마지막의 문장으로 돌아가자. 기독교에서의 구원을 받는 사람의 삶은 그리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도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 말하기 부끄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한 없이 괴로워 보이지만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온전히 붙들리게 되면,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이 나를 감싸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매번 다시 죄로 가득하고 통제되지 않으며 다시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할 때 괴로운 상태로 돌아오지만, 다시 힘들어하며 내려놓고 하나님을 부를 때 다시 인자하게 사랑한다며 감싸주시는 그 기분을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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