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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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마키아벨리
이규섭
인간은 혼자일 때보다 여럿일 때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그 생산성이 증대된다. 다만 개개인의 인간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게 되면, 각자의 주체들이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여야 이러한 집단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증가한다. 그러므로 집단의 리더는 그 역할이 막중하다. 군주는 원시적인 형태의 리더다. 고대 중국의 국가들부터, 근세 왕정의 나라들까지 역사책을 돌이켜보면 나라 흥망성쇠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 통치자가 있었고, 그의 정책과 역량이 그가 대표하는 집단 전체의 운명을 좌우했다.
군주론은 그러한 군주로서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장마다 마키아벨리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와 그에 관한 사례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토대로 통치권자가 이탈리아를 부흥시키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군주론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저술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굉장히 복잡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이 그 힘을 잃고 추방된 뒤, 피렌체의 종신 시정 장관으로 부임 된 소데리니 아래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메디치가 복권한 뒤, 소데리니가 망명하면서 그의 측근들이 모조리 체포되었고, 마키아벨리 역시 이를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는 메디치가의 조반니가 교황 레오 10세로 선출되며 특별사면 되었고, 이후 [군주정에 관하여]를 집필한다. 마키아벨리는 복잡한 이탈리아 정세를 안정화하고 샤를 8세와 같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운 건실한 국가로 성장시키기를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군주론의 시작은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되는데, 그 안에 조금을 구차할 만큼 자신의 경력을 소개하는 부분을 보면 정계 복귀를 기대하는 마키아벨리의 나약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군주론은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마키아벨리 사후에 발간되었으며, 루소에 의해 언급되면서 재조명 되었다.
사람들이 군주론을 보고 불쾌감이 드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군주론이 제시하는 행동 원리가 성공적으로 권력을 독점했던 독재자들의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선한 태도를 취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역설하거나, 공동체를 다루는 일을 우민을 다루듯 표현하는 아래의 구절들을 보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용서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익히 아는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오해에서 시작되어 굳어지게 되었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도 안 되고, 악인이 되는 법도 알아야 하며, 또한 그 태도를 때에 따라 행사도 하고 중지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군주는 자기네 백성을 단결시키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잔인하다는 악평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그것은 자애심이 너무 깊어서 혼란 상태를 초래하여 급기야 시민들을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에 비하면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하여 질서를 바로잡는 잔인한 군주가 훨씬 인자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마키아벨리를 옹호할 수 있다.
하나, 군주는 다수의 운명을 결정짓는 결정권자이다. 사람이 여럿 모이면, 의견도 그만큼 늘어난다.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결정은 존재하기 어렵고, 따라서 결정권자의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선택을 하는 것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군주가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오기 위해 어떤 불합리한 수단을 취해야 함이 불가피하다면 그것을 선택하는데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지, 군주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주를 유혹하는 갖가지 쉬운 수단을 취하는데 고민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둘,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행위가 나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식이 비판받는 이유는 대체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수단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추구하는 군주의 목표는 결국 이탈리아의 성장과 안정이다. 즉, 국가의 성장과 백성의 안녕을 위해서 군주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 논하고 있으며, 따라서 비록 그 수단의 가리지 않음에도 그 목적만큼은 항상 국가 전체를 위하는 명분이 뚜렷해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군주론의 내용을 받아들임에 있어, 마키아벨리는 기존 정치에 얽혀 있던 복잡한 요소들을 배제하고 합리주의적 통치 관념을 제안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결정권자가 택하는 수단은 대체로 누군가의 희생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따라서 수단을 선택할 때에 이를 최소화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마키아벨리는 오히려 냉정하게 목표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에 집중하기를 간언한 것이다. 수단을 잘 골라 희생을 최소화하더라도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면, 오히려 헛된 희생을 만드는 꼴이다. 따라서 목적을 이룬다면 그 수단이 다른 관점에서 정당하지 못하다 여겨지더라도 이후에 그것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정당화는 사회 전반에 물의 없이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의미이지 그것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을 고려하더라도, 군주론의 내용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사회계약론의 출판은 약 200년 뒤인 1762년이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그 후에 이루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책 속의 제안들이 얼마나 많은 중요한 관념들을 가벼이 여기고 저술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이 다양한 집단에 속하며, 각 집단마다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된다. 또, 리더의 개념도 더욱 확장되어 단순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권력자가 아닌 집단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결국 다수를 대변하는 결정권자의 입장에 서게 되고, 그 가운데 훌륭한 개인으로써 살아가기 위한 이상적인 행동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모순적이고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한정하여, 윤리적 모순을 감수하고 합리성에 기반해 움직일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시도를 처음으로 제시한 책이 어떤 통찰을 기반으로 하는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야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불필요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군주론을 씁쓸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필요악과 같은 행동 지침서로 취급한다면, 역사 속의 수많은 독선적인 사람들처럼 합리성의 함정에 빠지게 되리라 생각한다. 군주론의 가장 큰 맹점은 오히려 그 본질인 합리성에 있다. 사람의 행동은 겉으로 드러나는 명분 이외에도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개인이 지향하는 목적의 방향은 그것이 금전적인 것이던,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던, 명예에 대한 것이던, 조금씩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편향되기 시작한다. 보통 합리적이라는 것은 손실을 피할 수 없을 때, 이익과 손실을 따져 가장 최적화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완벽히 합리적인 행동은 없으며, 그 이해와 득실을 따지는 과정에서 개인의 득은 작게, 타인의 득은 크게 여기는 반면, 개인의 실은 크게, 타인의 실은 무덤덤하게 여기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즉 완전히 객관적인 이해의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이 군주가 혹은 리더가 합리성에만 의존하는 행동 원리가 처음의 순수한 의도에서 벗어나 왜곡될 여지가 있는 큰 약점이다.
마키아벨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그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을 뿐, 불필요하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수단을 쉬이 선택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유혹에 약하니, 보다 쉬운 선택지를 두고서 어려운 선택지를 고르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다. 이러한 성향 자체를 인간의 본성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상을 가진 자가 이러한 유혹에서는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치를 윤리와 구분하여 합리적인 선택을 과감히 내릴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쉬운 선택지를 두고 비슷한 결과를 불러올 뿐인 어려운 선택지를 고르는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합리적인 선택을 위한 수단의 정당화가 오히려 합리적인 사람에게 그 취약점을 더 쉬이 드러내는 모순이 드러난다.
그러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마키아벨리는 기존의 이념적인 정치 이론 제시에서 벗어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의미의 행동 원리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목적에 편향된, 좀 더 상세하게는 개인의 판단에 의지한 선택적 목적에 대해, 그것을 성취하는 데 있어 다른 가치들은 쉬이 배제할 여지를 남겨놓는 불완전한 합리성을 제시함으로써 자체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이상적인 리더는 단순히 합리성에 기반한 냉철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에게도 냉정하고 엄격한 태도를 가지는 것으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집단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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