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특별하게 새겨서 간직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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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손글씨 나혼자 조금씩
아주 강렬한 기억이 아닌 이상, 사람의 기억은 잊혀지거나 조금씩 왜곡되어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걸 다른 곳에다 옮겨서 간직하곤 한다. 그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사진이라는 수단이다. 그 순간을 포착해서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머릿속에서 파편화되어 떠돌던 그 때의 추억을 다시 맞추는 데에 사진만큼 좋은 촉매가 없다. 더군다나 현대인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이라는, 매우 간편하면서도 강력한 사진기를 하나씩 들고 다닌다. 매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좋은 술을 마실 때, 예쁜 곳에 방문했을 때 먼저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부터 찍는다. 음식을 앞에 두고 스마트폰을 드는 건 ‘한국인의 식사 예절’이라는 농담까지 생겨날 정도다.
학부 재학 시절, 나는 대학원생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취미 강좌에서 캘리그라피(Calligraphy : 손으로 글씨를 그리는 예술의 한 분야. 서예의 현대화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강사로 약 반 년간 활동했었다. 대부분 대학원생들이 대상이었고 취미 활동에 시간을 그리 많이 투자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강의 내용도 대부분 캘리그라피란 무엇이고 이것을 이용해 얼마나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매달 강의를 할 때마다 강의를 듣는 선배들이 가장 몰입해서 듣는 내용은 바로 ‘사진에 캘리그라피 합성하기’였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고급 유틸리티를 활용하지 않고도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쉽고 퀄리티도 좋은 글씨 합성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혹시라도 방법을 알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개인적으로 저를 찾아오시기를.)

(유럽에서 교환학생 생활 중인 후배가 보내준 사진이다.)
방법을 알려 드리자마자, 수강생들은 저마다 예전에 찍어둔 사진에 글씨를 합성하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결혼 사진에 사랑스러운 멘트를 넣고, 졸업 사진에 고생했다는 격려의 메시지를 넣는 등 저마다의 추억을 다시 한 번 새겨갔다. 그 순간 수강생들의 표정 하나 하나에는 은은한 웃음기가 가득했다.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캘리그라피를 독학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지인들의 특별한 사진에 예쁜 문구를 심어주는 작업을 해 줄 때였으니까.

(유럽 여행 중인 과 후배가 보내준 사진에 글씨를 넣어본 것이다.)
이 책은 얼마 전 있었던 내 생일날, 지금까지 연락을 유지하는 옛 제자(?) 한 명이 사준 것이다. 대학원 생활이 바쁘고 연구가 1순위인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학부 때 용남고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 교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만난 학생이다. 아직까지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준다) 가끔이라도 붓과 펜을 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연구실 생활에 적응하기 바쁜 지금은 예전처럼 붓을 자주 들지 못한다. 연구에 도움이 될 까 해서 장만한 아이패드 프로를 이용한 글씨 작업을 가끔 하는 정도다. 그래도 캘리그라피라는 취미를 아예 놓고 싶지는 않다. 추억을 특별하게 아로새길 수단이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

(얼마 전 갔었던 연구실 워크샵에서 찍은 단체 사진에 아이패드로 작업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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