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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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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주
댓글 0건 조회 5,446회 작성일 19-06-0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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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미래 - 조영태

 

이 책이 출판 된지 3년이 되어 가고 있다. 90년도 이후로 지속된 저출산 기조가 2022년에는 성인의 인구 절벽으로 다가올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예상되는 성인 인구의 감소와 평균 수명 증가 때문에 생기는 고령화 현상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은 노동 인구의 감소로 노동력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경제 활동이 위축되지 않고 현재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는, 지금까지 인구 과잉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환영한다. 물론 정부에서는 저출산을 부정적인 상황으로 바라보고 지난 10년간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출산율을 높이는데는 사실상 실패했다. 결혼을 꺼리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청년층의 부정적인 시각이 시대의 흐름이 되었기 때문에 실패 할 수 밖에 없는 계획이었다. 어쨌건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저출산 현상과 맞물린 노동 가능한 성인 인구의 감소는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라는 것이다. 예고된 2022년은 앞으로 3년이 남지 않은 상황이다.

 

인구 감소가 파멸적인 미래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사회상을 만들어 낼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이다. 하지만 최소한 어떤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는 예상이 가능하다. 이민으로부터 발생하는 인구 유입이 사회 인구 구조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고 가정해보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태어나는 아이들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사, 학교, 유아 복지 시설의 숫자는 현재보다 감소하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수요는 감소하는데, 공급된 교사, 학교의 숫자는 매년 일정하다는 것이다. 각지에 있는 교육대학들은 상황을 뒤늦게 인지하고 정원을 감축하기 시작했지만, 교육 현장에 공급된 교사의 숫자는 수요보다 많아졌기 때문에 임용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문제는 은퇴하는 교사보다 교육 현상에 공급되는 교사의 수가 아직도 많다는 점과, 수도권 및 대도시에서 근무를 원하는 교원들의 성향이 맞물려서 임용 경쟁은 더더욱 치열해 진다는 점이다. 초중등교육의 현실이고 악화될 수밖에 없는 미래이다. 10년 전만 해도 교사는 안정적인 직업이었지만, 인구학 및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30년 동안은 과열되는 경쟁으로 기피되는 직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교라고 해서 이런 현실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이미 2022년 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의 숫자는 50만명을 향해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고 2030년에는 40만명으로 확실해지는 추세이다. 그런데 여전히 전국에 있는 대학교의 정원은 이보다 더 많은 55만명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교육부와 대학교라고 해서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꾸준히 대학교 정원을 감축하고 있고, 대학 평가를 실시해서 수준 미달이 되는 대학교는 폐교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파른 학령 인구 감소 속도를 정원 감축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교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저출산이 시작되는 90년대에 이런 미래를 예측하고 대학 설립 허가를 보다 까다롭게 했으면 이런 사회적 충격이 보다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첨언으로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한 교육 관련 직업의 불안정성은 교수라는 자리도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본다. 특히 연구개발에 주력하는 교수의 안정성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본인이 생각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일단 첫 번째, 학령인구의 절대적인 감소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우수한 학생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감소한다고 보면 된다. 이럴 경우 현재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지역의 기술원과 몇몇 명문대학교를 제외하고는 우수한 학생을 유치할 수 없게 되어 프로젝트 수행에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대학간 연구 역량 차이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 프로젝트 수주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 될 것이다. 이미 대학기관의 연구는 서울의 몇몇 대학과 과학기술원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두 번째, 한국은 외국인에게 학위나 연구를 수행하기에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다. 정부 과제 수주로 대부분의 연구 및 인건비를 충당하는 한국 연구 풍토상, 교수와 학생간의 의사소통 측면에서 보면 내국인 학생을 원하기 마련이다.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하여 외국인 학생이나 해외에서 학위를 받은 연구원을 뽑으려고 해도, 한국에서 연구를 수행하기에 매력을 느끼고 들어오는 우수한 인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사회 정서상 아직 외국인에게 개방적이지 않고, 미국이라는 매력적인 국가가 있기 때문이다.

- 세 번째, 국방부의 지속적인 전문연구요원제도 폐지시도이다. 병역 의무를 수행할 성인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고, 국방부에서는 한반도 지정학적 특성상 종심방어체계 이론을 내세우면서 병력을 최소 45만명 유지하는 것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병역 의무 이행의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적 시선에 맞추어서 가장 말이 많았던 산업기능 및 예술체육요원들을 폐지해 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시점에서 대학원에서 최소 6년간 연구를 수행할 학생들이 학위 중간에 군대를 다녀와서 수행할 할까? 아니면 일찍 병역을 마치고 해외로 갈까?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최소한 국내 대학에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인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육만 그럴까? 인구 감소와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부동산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서울의 부동산 공급률은 100%가 되지 못하고 있고, 비수도권의 공급률은 100%를 넘겨 공급 과잉 상태이다. 청년층은 직장과 주거의 편의성 때문에 수도권으로 모이려고 하고, 정부에서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 각종 지역 신도시와 재정비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신통치 않다. 부산광역시마저 청년층 인구 구조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이니, 다른 지역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자치단체 소멸을 바라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수명한 다한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남은 집은 폐가가 되어 지역사회의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재산권 문제 때문에 지자체에서도 손을 섣불리 대지 못하고 방치만 되어 있어서, 투자의 중단이나 범죄의 거점이 되는 등 지역을 쇠퇴시키고 있다. 여기에 열악한 지방 재정 자립도가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일련의 여파는 지역 사회에 항상 있으면서 경제활동을 하던 지방직 공무원조차 미래에는 불안정한 직업이 되어 지역 경제까지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모두들 수도권이나 광역시만 바라보고 있으니 공무원도 갈수록 경쟁이 심해져서 신의 직장이 아니게 될 상황이 곧 오지 않을 까 싶다.

 

이런 문제를 인지한 정치권의 해결책은 아주 심플하다.

 

“저출산률이 문제가 된다고? 그러면 아이를 더 낳게 해야겠네. 아이를 낳으면 얼마씩 더 주자. 그래도 안낳는다고? 그럼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안낳는 청년들이 문제야.”

 

“청년 인구가 줄어들어 문제가 되면 이민을 받고 조선족을 들이면 되겠네.”

 

“신혼 부부가 살 주택이 모자라다고? 그런 소득이 없고 자기 명의로 된 주택이 없는 부부를 우선으로 공급을 시행하자.”

 

“청년 임대 주택을 건립하자. 뭐 지역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그럼 표 떨어져서 안되지 포기하자.”

 

이건 뭐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는 소리보다도 못한 망언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이거 이외에도 망언들은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위의 망언들에 대하여 하나하나씩 근거를 들어가며 반박해보자.

 

첫 번째, 돈을 줘도 청년들이 결혼과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다? 돈도 넉넉하게 주지도 않으면서 돈을 준다고 생색을 내는 것이 웃기는 것이다. 아이를 키워서 대학까지 보내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2억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고작 태어난 아이의 부모에게 3년간 매월 몇십만원씩 밖에 주지 않으면서 최소 20년동안 평균 2억을 들여가며 키우라고 한다면 청년층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본인 같아도 그냥 혼자 산다고 할 것이다. 혼자서 벌어서 잘먹고 잘사는데 굳이 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힘들게 살아야 되냐고 반문하는 것이 현재 청년세대의 흐름이고 공감대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이기적인 생각이다? 개인의 자아 실현을 중시하는 90년대 생들에게는 아이 낳으라고 푼돈 쥐어주면서 강요하는 기성세대야 말로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의 과실은 전부 누리면서 후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꼰대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이민을 받고 조선족을 들이자고? 노룩패스를 할 때처럼 정말 아무것도 안보고 그냥 해본 말이었으면 좋겠다. 이민을 통하여 젊은 층을 받고 잠재적 경제성장률을 높여서 성장동력을 끌고 간다는 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선진국에서 개발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는 은퇴해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거나, 사업의 확장을 위해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단순 노동을 위해서 이민을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이민에 의한 인구구조 개편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대규모 유입이 주류인데, 문제는 이민에 의한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중에 어떤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긍정적인 효과로는 인구구조의 인위적 개편으로 연금 같은 사회 안전망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늦출 수 있다는 점이 있고, 내수 시장을 유지 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며, 이질적인 문화의 융합으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인물 보다는 흐르는 물이 낫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민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부정적인 영향으로는 문화적 충돌에 의한 사회적 대혼란과 갈등이 첫 번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랍권 이민자와 기존 주민들 사이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이 있다. 두 번째, 대부분의 이민을 차지하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선진국의 국민들 보다 임금이 낮게 책정되어 있고 대부분이 3D 업종에 종사하는 것이 사실이다.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유입된다면 노동 시장에 혼란은 불가피 하고 내국인들이 체감하는 노동 시장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전세계적인 반이민-반난민 정서가 일상화 된 상황에서 이민이라는 카드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최악의 수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내집을 장만하기 어려운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을 특별 청약으로 공급하는 것은 의도는 좋다고 본다. 하지만, 좋은 제도를 운용하는 세부적인 방식이 아직 세련되지 못하고,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채 대상자를 선정하게 되어 정작 필요한 신혼부부가 집을 장만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집을 소유했던 적이 있는 신혼부부는 특별공급에서 제외되는 경우다. 금수저 집안의 부부가 집을 소유했다가 청약 전에 집을 처분하는 경우에도 특별공급 대상자가 된다는 허점이 있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개정한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금수저 집안의 부부는 부모님의 명의로 구한 전셋집에서 살다가 청약을 신청하면 무주택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청약 우선 순위가 더 상승하였고, 소액이나마 집을 구해서 살던 평범한 집안의 부부들은 청약 경쟁에서 밀려서 자기만의 집을 장만하기 어렵게 되었다. 제도가 바뀌어도 집안의 자금력으로 손쉽게 집을 장만하는 금수저들을 보면서 다수의 청년들이 과연 이 제도가 서민들을 위한 제도라고 생각 할 수 있을까? 의도는 좋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이나 대책이 세밀하고 세련되지 못해서 비판을 받는 정책이다.

 

마지막, 이 현상이야 말로 현재 30대 이하가 가지는 정치적인 입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국민 1인 1표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에서 표를 많이 모으는 것이 정치인의 목적이다. 문제는 인구구조가 이미 40-50대가 많은 항아리 분포를 띄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나이를 먹지만 늘어난 평균 수명으로 40년 뒤에도 인구 구성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정치인의 입장에서 보면 젊은층을 공략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중장년층을 공략하는 것이 좋을까? 당연히 표가 더 많은 중장년층을 노리는 정책을 공약으로 걸어버리는 것이 당선에 유리하다. 더군다나 40-50대는 이미 경제적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세대이고 20-30대는 이제 막 경제 활동을 시작해서 사회에서 제목소리 내기 힘든 세대이다. 머릿수로도 사회적인 힘으로도 기성세대에게 눌려 살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다 대고 정치인들은 청년들을 위한다는 정책을 펼치고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독려한다. 그야 말로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하면 뭘 하나? 어차피 제공하는 표에 있어서 20-30대는 40-50대 보다 열세에 놓여 있기 때문에,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책은 정작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를 위한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더 가관인 점은 이런 40-50대들은 청년층보고 니가 참고 열심히 하라는 조언밖에 할 줄 모른다. 30년 전에나 통했을 조언과 정책을 변해버린 시대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하고 있으니 기성세대 혐오와 정치적 무관심이 늘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과거의 시각을 가지고 성평등이라는 이름하에 여성정책을 펼치니 이대남들이 정치를 더더욱 혐오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을 뿐이다.

 

가뜩이나 노동 가능한 젊은층이 없어지는데, 여기에 인공지능의 발달에 의한 일자리 감소의 여파로 노인의 경제활동마저 위축된다면? 경제 활동을 해서 세금을 내는 계층은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사람의 숫자는 늘어난다. 누진세를 강화하려고 해도 언론과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기득권은 놓지 않으려고 방해 할 것이 분명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고령화를 겪어서 연착륙에 성공한 나라는 일본 하나 밖에 없다. 그나마도, 일본은 고령화되고 있을 때, 주변국이 풍부한 청년층과 더불어서 경제 성장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하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한국은 이조차도 어려운 것이 내수시장은 작고, 중국도 같이 고령화되면서 성장률이 감소하고 있다. 이는 어떤 국가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며 오로지 우리 힘으로 극복해야할 문제이다. 어떠한 방법이 정답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인지하고 대비하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맞이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과연 2022년 대학학령인구 절벽이 시작되는 해에 교육지면에서 우리는 어떠한 뉴스를 보게 될까?

 

“학생 감소로 다수 지방대학 동시 다발적 폐교 결정, 지역사회 경제에 충격.”

“동시다발적인 정원 감축으로 신입생 미달은 피해. 지속적인 학령 인구 감소에 대비해야.”

“수도권 및 지거국 대학 경쟁률 심해. 기타 지역 대학들 폐교 위기.”

“3년간의 대학교 통폐합으로 구조조정 실행으로 미달은 막아. 하지만 지역 주민의 반발과 지속적인 대학 통폐합은 문제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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