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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보다 연애 - 황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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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5,740회 작성일 19-07-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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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살아간다. 2011년 경향신문의 기획시리즈인 <복지국가를 말한다>에서 처음 사용된 ‘3포 세대’라는 말은 취업난과 불안정한 일자리, 쉴 새 없이 오르는 집값 등의 이유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 세대를 의미한다. ‘3포 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후로 많은 언론에서는 ‘5포 세대’와 ‘7포 세대’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였고, 심지어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셀 수 없다는 ‘N포 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하였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인간은 가장 먼저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했다. 청년들은 먹고살기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제일 불필요한 것을 연애와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기 자신도 온전히 간수할 수 없는 사회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과 비참한 경험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기저에서 출산율은 꾸준히 감소하였고, 현재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연애와 결혼을 기피하면 기피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개인주의의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 사이의 정(情)은 좀처럼 찾기 힘들어졌다. 청년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두 눈에 불을 켜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경쟁이 가속화될수록 사람 사이의 관계에 피로를 느끼게 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누군가와 같이 있기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혼자 동굴에 들어가서 지내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사람이 싫어 고립을 택했던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만연해진 지금의 시대에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은 없었다. 응어리진 속마음을 타인에게 내비치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과 같기에 선뜻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은 모순적인 마음’을 이 시대의 많은 청년이 가지고 살아간다.

 

 대중 미디어의 확산으로 인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악화되었다.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의 외모가 대중들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연예인의 외모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사회에서 일반적인 사람의 외모는 수준 이하의 것이 되어버렸다. 능력이 좋고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한정되어 있지만, 대중들의 눈은 높아져 버렸기 때문에 연애하기가 더욱 힘들어진 것이다. 또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냉소적이다’라는 말처럼 인터넷을 통해 결혼과 육아의 힘든 점들을 누구나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게 전부였다면, 지금은 결혼하고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대부분의 사람이 알게 되었다. ‘희생’이라는 가치는 이 시대에 걸맞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개개인의 안위와 평화가 중요한 시대이다.

 

 사랑을 하지 않는 삶은 참으로 거칠고 메마르다.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내가 마음 둘 곳, 내 고민을 가감 없이 이야기할 곳만 있다면 그 삶은 그리 고달프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랑은 많은 것을 바꾼다.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지속해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잉태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좋은 인식을 주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제주도 난민 사건만 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나라 사람과 문화에 대해서, 특히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폐쇄적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큰 적대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슬람 종교를 믿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착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교 2학년이었던 2012년 여름이었다. 운이 좋게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터키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20년 넘게 교회를 다녔었기에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서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았을 때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은 외부인들에게 굉장히 친절했다. 길을 걸어가고 있으면 나에게 다가와 차 한잔하고 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차를 한 잔 사주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프로그램 일정에 터키 친구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하나하나 신경 써주었던 그들의 모습에서 종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요소였다. 이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까지도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터키의 현지인들이 환대해 주었던 경험들이 내 머릿속에 남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애를 해야 한다고, 사랑을 해야 한다고 <철학보다 연애>의 저자 황진규는 말한다. 플라톤은 ‘사랑에서 시작하지 않는 자는 철학이 무엇인지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철학은 사전적인 정의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플라톤의 이야기를 해석하자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심은 사랑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랑에 대한 감수성이 없으면 철학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터키를 가지 않았으면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편견만 가지고 본질을 잘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온전히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고 교류할 때, 그들을 넘어서 그들이 속한 사회와 문화까지 사랑할 수 있다.

 

‘잠시 철학이 무엇인지 질문해보지요. 철학에 관한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저는 감히 철학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나’, ‘너’, 그리고 ‘우리’라는 주제까지 모두 다루는 삶의 이야기. 예를 들면, 자기계발은 주로 ‘나’에 대해 다루고 사회학은 주로 ‘우리’라는 주제를 다루지요. 하지만 철학은 ‘나’, ‘너’, 그리고 ‘우리’라는 주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플라톤의 이야기가 이해될 것도 같습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에 대한 감수성이 있어야 합니다. p. 366

 

 저자는 이야기한다. 철학은 ‘나’, ‘너’, 그리고 ‘우리’라는 주제를 모두 다루는 삶이 이야기라고. ‘나’와 ‘너’의 사랑만 있으면 철학은 아득히 멀리 있을 것이라고. 사랑이야말로 공동체적 의식이 메말라버린 시대에 ‘우리’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와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 이외에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마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또한, 그것이 철학보다 연애가 중요한 이유라고 말이다.

 

‘우리’의 사랑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사랑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이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어찌해야 할까요? 방법을 찾았습니다. 연애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나’와 ‘너’의 사랑을 통해서 확장될 겁니다. 세월호 분향소를 찾은 그 많은 부모는 자식과 부모라는 ‘나’와 ‘너’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으로 확장된 결과일 겁니다. 저는 사랑이 확장되길 원합니다. ‘나’와 ‘너’의 사랑을 통해 ‘우리’의 사랑으로 확장되길 원합니다. 그렇게 연인을 사랑했던 절절한 마음으로, 이 사회에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분들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367

 

 나 역시 내 한 몸 간수하기 힘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N포 세대’의 고충을 겪고 있다. 실제로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쉽게 마음을 내어주었다가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것을 멈추게 된다면 사회는 점점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우리가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는 주관적이지만 모든 타인들에 대해서는 객관적,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객관적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자신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모든 타인에 대해서는 주관적일 수 있는 것이다.” - 쇠렌 키에르케고르 <사랑의 역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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