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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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내 성격이나 취향이, 또는 인생의 방향이 조금씩 변화되는 계기가 있었다면 단연코 여행이었고 앞으로도 여행일 것이다. 특히 대학생이 끝나갈 무렵 머물러 있던 유럽에서 내 안에서 많은 것들이 정리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보기엔 놀고먹고, 관광지나 쏘다니며 사진을 찍는 여행이 뭐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행의 힘을 아직까지 느끼면서 살아간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여행에 대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김영하씨의 글은 매우 반가웠다. 김영하씨는 굴곡진 그의 삶 안에서 그가 여행을 놓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여러 유형의 여행에서 느낀 감정을 전달했다.
여행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힘이기도 하며, 인류의 속성이기도 하다. 이 글귀가 여행의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행위에서 비로소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마치 내 인생의 타임라인이 있다면 잠시 로그아웃을 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타임라인에 로그인 되어있을 때는 양쪽에서 나를 잡아당긴다. 과거에 남은 미련이 나를 잡아당기며, 미래의 불안감이 날 잡아당긴다. 하지만 로그아웃을 하면 더이상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는다. 여행에서의 모든 행동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현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낯선 분위기의 해외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곳, 낯선 언어와 낯선 시선을 받는 곳으로 말이다. 그렇게 완벽하게 일상에 로그아웃을 선언하고 나면, 그때서야 내 타임라인을 볼 수 있다. 2차원의 세계에선 3차원의 모습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있는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보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 차원을 넘어서는 행위가 바로 여행이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여행하는 동물로 정의했다. 그만큼 여행은 우리의 근본과 함께한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지구에 여행을 왔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신기하게도 인간은 동물 중 가장 불완전한채로 태어난다고 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여행을 와서 정착하고 있는 타인의 도움을 받고 성장한다. 김영하씨는 소설가답게 여행은 곧 세계와 우리 사이의 매개체, 즉 언어의 속성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태어나 언어를 배우듯, 여행을 배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또한 여행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대학원생은 일의 on/off 가 되지 않는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연구에 대한 걱정에 마음이 불안하다. 흐르는 시간을 인지하면서 살기가 쉽지 않다. 한마디로 대학원생은 일상에 잠식되기가 매우 쉽다. 여행을 보편적으로 확장해보면 일상의 반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은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에 다녀왔던 연구실 워크샵도 일상이 아닌 여행에 가깝다. 워크샵에 가서 연구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순간에 여행의 속성이 잘 나타났다. 나의 여행이 아닌 연구실이라는 공동체의 여행 말이다. 이번 워크샵은 흐르는 시간에 점점 둔감해지려는 찰나에 연구실의 현재, 그 안에서 나의 현재를 바라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여름에도 기회가 된다면 짧게나마 여행을 떠나보고자 한다. 한번도 본적 없는 풍경에서 흐르는 시간을 느끼며 나를 바라볼 것이다. 여행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존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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