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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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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원
댓글 0건 조회 5,400회 작성일 19-07-0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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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 김애란

 

“올해는 여름 기간이 길어지면서 낮 최고기온 33도가 넘는 폭염과 야간 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 등도 덩달아 길어질 것으로 기상 당국은 예측하고 있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은 역대 최고로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며 폭염의 장기화로 시민들의 피로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짧은 거리도 차로 이동하고, 한창 더운 시간에는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실내에서 일하며, 실험하는 곳 역시 항온, 항습이 유지되는 클린룸이다 보니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이 소설에서는 ‘안과 밖’의 온도 차를 절실하게 느끼면서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상황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서 우리에게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어린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슬픔, 아버지를 잃고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 오래된 연인과의 이별 등 당장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다. 항상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왜 이런 일이 나한테만 일어나는지, 나는 이렇게 슬픈데 주변 사람들은 유독 예전보다 즐거워 보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감정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안과 밖’의 온도 차라고 느껴졌다. 미진과 그의 남편은 어린아이를 잃고, 통장에 입금된 보험금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주변인의 시선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그 돈을 헐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돈을 아이의 ‘목숨값’이라고 생각하여 별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삶이 평화롭고 안정적이라고 다른 사람의 아픔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7편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와닿은 부분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키우게 된 강아지의 죽음을 맞는 아이의 이야기였다. 할머니와 둘이서 살아가는 ‘찬성’은 아버지와의 이별로 인한 외로움을 채우고자 강아지 ‘에반’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종양이 생긴 에반은 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었고, 찬성은 에반의 안락사를 위해 필요한 금액인 10만 원을 모으기 위해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은다. 하지만 평생 만져보지 못했던 큰 액수의 돈이었기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결국 에반을 편하게 보내지 못하게 된다. 에반은 고통 속에서 연명하다가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글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1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던 우리 집의 반려견이 계속 그려져서 에반의 비극이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더 즐겁게 해주지 못했고, 사랑을 더 주지 못했던 것이 더욱 미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 더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밖’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나 역시 ‘밖’에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야기들도 읽으면서 마찬가지로 슬펐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겪었던 일과 비슷한 아픔에 대해서 더욱 격한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이 슬프게 와닿았다. 내가 비극적인 상황을 맞았을 때는 타인의 공감과 위로를 바라면서, 다른 이들의 비극에 대해서는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위로에 그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들을 배려했다면 진심으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슬픔을 공유했어야 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공간에서 편하게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더운 날씨에 밖에서 땀을 흘리는 분들의 고충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그분들이 느끼는 ‘안과 밖’의 온도 차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고, 나 대신 땀 흘리고 있는 분들에게 감사하며, 타인의 비극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심을 다해 위로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 혼자만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좀 더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타인들도 내게 일어난 비극에 대해서 더욱 공감해주고 진심으로 위로해주리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은 그들이 ‘안과 밖’의 온도 차를 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도 생각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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