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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빅터 -호아킴 데 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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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수
댓글 0건 조회 5,805회 작성일 19-07-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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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빅터> 호아킴 데 포사다, 레이먼즈 조 지음


 호아킴 데 포사다라는 작가는 '마시멜로 이야기' 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유명한 대중연설가이기도 한 호아킴 데 포사다는, 주로 '희망'과 '긍정'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사람들에게 성공을 위한 삶의 방식에 대하여 설파한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마시멜로 이야기'는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러한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으로 대중에게 어필하였다.

(비록 책의 표지만 봤고, 내용만 들었지만..)

 

 바보 빅터는 이러한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 속에서 궤를 같이 한다. 성공에 대한 지침서 같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그러한 종류의 책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다. 잭웰치의 책이라던 지, 성곡한 사람이 성공하지 못 한 사람에게 훈계하는 뻔한 이야기를 감명 깊게 보는건 취향에 맞지 않아서리라), 어쨋든 그 속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용은 인생의 절반가량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상당한 울림과 공감을 가져다 주었다.  

 

 책의 내용과 구성은 그리 복잡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오히려 하나의 우화와 같이 가볍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17년의 시간을 '바보'라는 족쇄를 달고 산 '빅터'라는 남자주인공과, 역시 동일한 시간을 '못난이'로 살아간 '로라'의 이야기가 병렬구조로 교차진행되다가, 마지막에 하나로 이어져 결말에 이르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효과적인 책의 주제를 전달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 읽기 쉽게, 흡입력 있게 풀어나가는 책의 내용이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빅터'는 편부가정에서 경제적인 어려운 환경에서 약한 자폐증상과 함께 사회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라게 된다. 특히 어렸을 적 상담과정에서 일반사람과 다른 '저능아'에 가까운 평가를 받게 되면서 부모조차도 '빅터'가 일반인과 다르다고 인식하고 항상 보살펴줘야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서 항상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는 성격이 형성되었고, 결정적으로 학교에서 실시한 IQ검사에서 73이라는 매우 낮은 IQ지수가 선생의 실수로 친구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그들의 괴롭힘과 놀림을 감당하지 못한 '빅터'는 결국 자퇴를 하고 정비소에서 허드렛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중간에 그의 천재성이 번뜩이면서 뛰어난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기도 하나, 거기에서 일반인의 잣대로 판단하는 (과거 괴롭히던 학교의 친구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천재성을 알고 취직시켜준 회장이 물러나는 환경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원래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로라'역시 '빅터'와 비슷하다. 다른 부분이라면 '빅터'는 공인된(?) 바보라면, '로라'는 자신의 부족함과 심약함을 애써 감추며, 태연한 척 살아가고 있다는 부분만 다를 뿐이다. 항상 집에서 '못난이' 라고 불려서 꿈이 뉴욕에가서 성형에서 이뻐지는게 것일 정도로 콤플렉스에 쌓여 있으며, 항상 부정적으로 자신에게 말하는 아빠에게서 상처 받으면서도 결국에는 '난 안돼. 잘 될리가 없어' 라는 부정적인 생각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빅터'와 마찬가지로 중간에 '할 수 있다' 라는 믿음의 힘을 믿었던 레이첼 선생님의 도움으로 '작가'의 꿈을 키워가기도 하지만 결국엔 여러 환경적인 문제와 자신의 부정적 생각의 말미로 결국 작가의 꿈을 접고, 자동차딜러였던 한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으나, 항상 부정적이고 자기비하적인 '로라'에게 지쳐가고 결국 이혼까지 이르러 '로라'는 아이와 고향의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으며, 더욱 놀라운 건 자신을 그렇게 괴롭게 했던 아빠와 똑같은 부정적인 언어를 자신의 아이에게 내뱉으며 살게 된다.


 이 둘의 험난한 삶은 작은 계기를 맞이한다. '빅터'는 자신의 IQ를 73이라고 소문나게 했던 선생님이  실제로는 '173'이라는 숫자를 잘 못 봤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를 계기로 자신이 얼마나 그런 부질 없는 숫자에 얽매여 자신을 비하하며 삻았는 지를 깨닫게 되며, '로라'는 한 토크쇼에 참여하게 되면서 자신을 '못난이'라고 부르고 상처주던 말만 하던 아빠가 자신을 너무나도 이뻐하고 사랑했으며, 자신을 '못난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자신이 너무 이뻐서 유괴를 당할뻔한 일때문에 부모들이 일부러 '못난이'라고 부르며 허름하게 키웠음을 알게 되면서, 자신은 '못난이'도 아니고, 아빠도 자신을 못난 딸이 아닌 너무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계기로 '빅터'와  '로라'는 초대 멘사의 회장과 아주 유명한 동화작가가 되면서 자신을 믿는 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되면 소설을 마무리된다.

 

 이 소설에 대해 크게 공감한다고 표현 했던 이유는 몇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을 믿는다.'라는 '자존감'이라는 부분때문이다. '빅터'와 '로라'는 누구보다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비하하면서 자신들을 실패자의 삶속에 떨어뜨려갔다. (그 과정에 다른 사람의 역할도  있었지만) 그리고, 자신을 믿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성공적인 자신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었다. 이러한 실례를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게 된다. 특히 회사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선배, 동기, 후배들에서 이러한 '자존감' 의 유무가 각자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관찰 할 수가 있다보니, 더욱 이 책에 나오는 내용에 많은 공감이 가게 되었다. 항상 입버릇처럼 자신을 낮추고, 자신감 없는 표현을 쓰며, 자신의 DATA를 믿지 못하다 보니 언제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 더군다나 사회생활에서 '표현'이 필요한 자리에서 자신감 없는  자세로 일관하다 보니, 타인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여 실제 인정 받아야 할 부분까지 저평가를 받게 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바로 '자존감'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존감'이 왜 부족한 지는 정확하게  알 지 못한다. 일반적으로는 살아온 환경에서 나오는 이유일 것이라 막연히 추측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로라'의 아버지와 같이  항상 자신을 비하하는, 혹은 부정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어떤 남들이 알지 못하는 특정한 이유도 있으리라. 그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더한 것은 개인적인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으로 판단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불명의 이유 - 선천적? 후천적?' 으로 말을 꽤나 심하게 더듬었다. 일반적으로 말을 더듬는 사람들이 그렇듯 긴장을 하게되면 개인적으로는 '처참한' 상황이 될 정도로 말을 더듬었으며, 그러한 성향은 어렸을 적 성격 형성에 매우매우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감히 앞에 나서는 행동은 절대 할 수가 없었으며, 새로운 환경을 무서워하고, 편하지 않는 새로운 사람, 혹은 윗 사람을 만나는 상황이 너무 괴로웠고 힘들었다. 그 중에는 말더듬을 놀리는 사람도 있었을 테니, 어린 마음에 상처는 더욱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방학때 가는 새로운 학원이나, 학년이 바뀌어서 만나는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이 내게는 너무가 괴로운 순간들로 기억에 남는다. (말더듬이 심한 장애는 아니나,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인격형성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런 말더듬에 의한 후천적 '자존감' 부족은 어떻게 극복을 했을까? 재미난 부분은 실제 성격의 절반(혹은 그 이상)을 차지하는 선천적 성격이 자존감이 매우 강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라고 생각된다. 말더듬때문에 항상 숨어 조용히지내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상황을 주도하고 싶어하고, 부딪혀 넘어가려는 성향이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도 어려운 여러 상황을 피해가는 것보다는 그냥 부딪히는 쪽을 많이 선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상처들이 나를 단련시켜 줄 것이라는 어째보면 다소 오글거리는 생각으로 나를 무장하면서.


 그런데 실제로는 이러한 내재적인 부분 속에서 '빅터'나 '로라'와 같은 특정한 계기가 찾아왔었다. 바로 '군대'라는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기존에는 말을 더듬는 상황에서 피할 수 있는 상황들을 최대한 회피하거나, 혹은 이음동의어들을 고려하여 순간 발음이 좀 더 편한 단어들을 찾아갔었지만, 이 놈의 군대라는 시스템은 아무 곳도 피할 수 없고, 단어까지 선택권없이 항상 그 단어만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말더듬이  극한의 상황에 올라가게 되었고, 당연히 이를 놀리는 사람도 꽤나 있었으며, 이 때문에 암구어를 제때 발음하지 못하여 군장을 메고 연병장을 돌아야 하기도 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은 말더듬은 늘 따라왔고, 극한의 상황이 날 괴롭혔다. (물론 그렇다고 내재적인 성격때문인 지 그렇게 상처받거나 좌절하 지는 않았다. 그러려니 했을 뿐.) 계기는 그 다음이 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까, 심리적 위축의 원인이 가장 컸던 말더듬증상이었기에, 밖에서 마주치는 모든 상황이 크게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 그리 심각해 보이지도 않았고, 긴장할 일도 아니었으며, 여러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니게 되다보니, 말더듬 증상이 급격히 개선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 트리거가 작동하게 되니, 더더욱 말더듬의 심리적 상황이 개선이 되었고, 비록 지금도 중간중간 말더듬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상생활에 대단하게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까지 개선되었다.

 

 내용이 중간에 좀 빠져버린 느낌이 없지않아 있지만,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 라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에게 자신을 사랑하라라고 단편적인 충고를 한다고 개선되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자신은 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가에 대한  좌절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어떤 계기를 찾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면 한다. 사람의 마음과 삶은 방향성이 있어서, 방향을 틀기가 힘든 것이지 한번 방향이 틀어지면 그 방향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냥 긍정적이라는 의미보다는, 어떤 순간에서도 '자신을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으면 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 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 순간에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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