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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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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수
댓글 0건 조회 5,527회 작성일 19-05-07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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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지음 / 강명순옮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좀머씨이야기>, <향수> 라는 책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사실 <향수>라는 책을 꽤나 심취해서 읽은 기억이 있어서, <사랑을...생각하다>라는 책을 읽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향수>의 강렬하고도 편집증적인 묘한 사랑의 이야기는 비록 10년의 시간이 흘러 줄거리가 가물가물해졌지만, 그 책의 느낌은 여전히 머리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오랜만에 접하게 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인가? 아쉽지만 기대와 달리 이 책은 허구의 내용을 담은 소설은 아니고,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담론?에 가까운 책이었다.

 책의 초반에서 작가는 사랑에 대한 대담한 화두를 던진다. 세가지 유형의 사랑, 교차로에 정차된 상황에서 육체적 사랑을 하는 커플(남자는 질이 나쁘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70대 여성 예술애호가와 50대 무용가이자 남성 안무가의 사랑-저녁식사자리에서 타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둘만의 사랑에만 집중하는, 그리고 일흔다섯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가족과 떠난 휴양지의 호텔 종업원에게서 느낀 사랑의 감정 (두 사람은 모두 남성이다), 이 각각의 유형의 사랑중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내민다.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첫번째는 동물적 사랑일 것이고, 두번째는 착각속에 고갈되어 가는 에로스의 사례, 마지막은 에로스의 본직에 다가간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도취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성스러움, 그리고 그를 통해 사랑의 불멸성을 성취한다 (종업원에게서 받은 사랑의 영감을 으로 뛰어난 소설을 완성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단순히 부분을 떼어 보면 세번째의 사랑이 매우 숭고해보이나, 뭔가 찝찝함이 남는 결론이다. 그것이 동성애라는 부분보다도, 그 작가는 정말 종업원에 대한 사랑의 감정인가? 혹은 도취의 감정인가?

 어쨋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분명한 사실은 사랑하면 멍청해진다는 부분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의견이기도 하고,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동의 하는 부분이다.) 맹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정작 더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좀더 근원적인 부분에 심취하여, 혼탁한 생각속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혹시 가지고 있다면, 20년, 30년전의 연애편지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주위에서도 흔히 보는 광경들이지 않을까? 아무리봐도 괜찮은 사람이 아니거나, 혹은 연애(결혼)을 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게 명약관화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혹은 그녀를) 사랑해요!' 라는 결론에 도달 하는 숱한 사람을 보지 않는가. 심지어 이러한 사람의 소용돌이는 인류사에도 심각한 사태를 (대재앙을!) 일으킨 경우도 왕왕있다. 단적으로 클레오파트라를 얻기위해 벌어진 전쟁과 같은. (사랑은 병이 아닐까?)

 라트리크 쥐스킨트는 이러한 사랑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사랑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부분으로 이끌어간다.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괴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사렛 예수와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여기서 작가는 재미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하면 매우 뛰어난 음유시인이며, 아내가 뱀에 물려 죽게되자 아내를 찾기위해 온갖 고초를 겪으며 저승까지 내려가 하데스에게서 아내를 돌려받는다. 여기서 하데스는 지상에 갈때 까지 절대로 뒤에 있는 아내를 돌아보지 말도록 요구 했으나, 먼길을 걸어오는 동안 자신의 노래에 답하지 않는 (청중이 없는!) 아내에 대한, 그리고 신에 대한 의심으로 지상의 빛을 몇걸음 앞두고 뒤를 도아보게 되고, 아내를 '안녕, 잘가요' 라는 작은 목소리의 인사만을 남기고 다시 저승으로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는 라자로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다. 오빠 라자르의 여동생이 오빠의 병이 깊어지자 예수에게 집에 방문해주길 요청했고, 예수는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며, 그 병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것이다' 라는 말로 거절한다. 결국 오빠는 죽음을 맞이하고 예수는 나흘뒤에 그 집을 방문하여, 자신을 비난하는 자매를 오히려 비난(!) 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결국 예수는 하나님에게 기도하여 나사렛을 살려내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됨을 극적인 효과와 함께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작가의 이야기이다. 실제 성경에서는 좀더 성스러우리라)

 작가는 이 두 사례를 들어,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고, 결코 에로스의 도취에도 빠지지 않는 나사렛 예수보다는(그는 신이다) 기뻐하다가 변덕을 부리고, 현명하나 치밀하지는 못한, 그리고 결국에는 좌절을 겪게되는 오르페우스가 훨씬 인간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예수의 성스러운 종교적 사랑보다는, 욕망과 충동에 좌우되는 에로스는 좀더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서두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불안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도취되어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의 모습. 그리고 후반부에와서는 사람의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욕망과 충동에 좌우되는 것이 도 인간적인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숱한 헐리우드식 영화들은 뜬금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제5원소도 그렇고, 매트릭스도 그렇고, 늘 인간이 가진(기계까 흉내낼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차별점이자 무기는 사랑이라는 이야기이다. 가끔씩은 너무 정형화되고 신파적이라 실소를 지어내기도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이 가장 쉽게 공감하기 때문에 헐리우드는 늘 그런 '사랑놀음'을 결론으로 가져갔을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이야기하는 사랑에 대한 담론에 과한 <사랑을...생각하다> 라는 책은 사실 어디 대학가 구석의 술자리에서 인문학을 하는 친구(혹은 선배)가 술한잔 하고 이야기하는 사랑에 대한 구구절절한, 그러나 꽤나 있어보이는 이야기이다. 책을 읽은 동안 주변 사람들의 사랑의 방식을 생각했고, 나의 사랑을 생각했으며, 흐름에 따라 인간의 근원적 '사랑'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해주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숭고한 사랑보다는 찌질찌질하고 구질구질한 사랑이 더 인간적인 사랑이라고 생각되긴한다. 그게 더 인간의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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