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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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무라카미 하루키
이규섭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똑같은 것을 보고서도 저마다 다른 것을 느낀다는 게 참 재미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몰랐던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이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한 지적 성취감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의 무의미한 것들임을 돌이켜보면, 모든 대화에 뚜렷한 목적성이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가 오고 가는 것이 그 자체로 조금씩 쌓여나가는 교감의 과정이니까.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그 느낌이 다른 것은 또 무엇 때문일까. 누군가는 깊이의 차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로는 그 깊이라는 게 참 얄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보이는 것이 정말 중요해진 세상이다. 원래 세속적인 삶이란게 그런 법이지만 참으로 없어 보이기를 두려워하고, 있어 보이고자 용쓰는 일상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 때문인가. 대체로 없어 보인다는 것은 빈 수레의 이미지와 겹친다. 그들에게 없는 것이 지식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고, 이른바 교양이라고 불리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자꾸 무언가를 두르고, 손에 잡히는 것은 죄다 가져다 치덕치덕 바르는 것이다. 텅 빈 속을 가릴 정도로만 아주 얄팍하게.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에는 다양한 주제어에 대한 에세이들의 묶음이다. 몇 개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작가가 말하는 방식이 참 다채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첫 수트를 소개할 때에도 그러하다. 굳이 아오야마의 반 van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독자가 아오야마가 어딘지 모르고, 더욱이 반이라는 브랜드를 알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아오야마라는 동네가 작가에게 가지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 고향이든, 당시에 살던 동네든 -, 반이라는 브랜드를 선택한 데에도 나름의 소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정확한 추가 정보는 뚜렷한 내용을 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소박 하고 사사로운 이유들의 ‘존재’를 말해주는 것만으로 독자가 느낄 수 있는 감상의 폭을 넓혀준다. 예를 들면 그가 첫 수트를 구매한 감정이 무엇일지 정도는 추측 해봄직하다는 것 정도가 되려나. 그래서 그는 수십편의 에세이 동안 의도적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하기와 지나칠 정도로 사사로운 정보를 말하기를 적절하게 안배한다. 이탈리아에서 본 차는 ‘자동차’가 아니라 ‘피아트 우노’이고, 그가 좋아하는 야구팀은 ‘한 때의 산케이 아톰스’다. 경수필의 진가가 작가의 진솔함을 느끼는데 있다면, 하루키의 에세이가 가지는 매력은 (분명 그의 이름값이 큰 부분을 차치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글의 기교보다는 이런 표현의 세심함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때로 조금 없어 보일지라도 이것저것 끌어들여 이야기에 살을 붙여보는 연습도 나쁘지나 않은 것 같다. 단순히 대화를 더 즐겁게 만들고 말을 더 생동감 있게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쩌면 그 자체로 삶을 풍성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뻥쟁이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벗어나 있던. 아니 머릿속에 머물기도 전에 시간과 함께 저 뒤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던 정보의 파편들을 살려내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기억은 4K를 지원하는 시절의 것이라도 마치 7, 80년대 유선방송처럼 지직거리는 화면으로 남을 테니 말이다.
사사로운 것들을 곁들이는 것은 대화의 맛을 살리기 위한 조미료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조미료가 언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 법이다. 실력 있는 요리사는 다양한 조미료를 가지고 있지만, 아무 때나 그것을 때려 넣지 않는다. 조미료는 언제까지나 조미료니까. 세밀한 계산이 필요하기도 하고, 연륜이 필요하기도 하다. 결국 모두 각별한 노력 아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글을 쓰는 첫 단계는 관찰이라고 한다. 우리의 눈과 코와 귀를 스쳐 지나가는 것들. 그것을 느꼈다고 착각하지 않고, 제대로 음미하는 것. 밥을 먹었다고 그 음식을 이해한 것은 아니잖나.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의 디테일함을 만끽해보자. 매일 먹는 물에서도, 해져버린 옷가지에서도 그 이름을 벗어난 이야기가 보일지 모른다. 그 결과가 글에 녹아날 수 있다면 그러면 에세이처럼 우리의 일상도 보다 다채롭고 풍성해질 것이다.
무언가 변하고 새로워지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일상 속에도 많은 즐거움이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우리의 무의식 아래. 그저 스쳐지나가 버리고 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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