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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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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윤
댓글 0건 조회 5,695회 작성일 19-05-3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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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17년 2월 국내 발매 된 이 책은 약 12만부 정도 팔린 후, 18년 중순 즈음 한 SNS 사이트의 마케팅으로 수개월 만에 10만부가 추가 판매되었다. 그 마케팅의 걸려든 카이스트 학생들의 숫자가 꽤 많은가보다. 학교 도서관에 이 책을 예약하고 받기까지 약 두 달, 그리고 계속되는 예약으로 대출 연장도 불가능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더니 책 읽는 재미를 새삼 느꼈다. 독서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은 나도 서울을 오가는 기차에서 몇 번 만에 완독을 할 수 있었다. 무려 졸지도 않고 말이다. 이 책은 추리 소설이다. 물론 이런 것도 알지 못하고 읽었다. 내용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을 수 있어 내용은 적지 않겠다. 반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생각했던 것을 나누기에 필요한 수준 정도의 내용만을 설명하려한다.

 

죄를 짓고 도망 다니던 주인공은 자살을 하려다 한 노파를 만난다. 노파는 사정을 듣고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의 딸을 죽인 두 범인이 15년 후에 출소하니, 15년 후에 범인들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 죽여 달라고 한다. 약속한다면 새 삶을 살 수 있는 돈을 준다고 한다. 노파는 병에 걸려 몇 개월 후면 죽을 운명이다. 노파가 15년 후에 주인공이 범인을 죽였는지를 알 수는 없다.

 

‘만약 나에게 같은 제의가 들어온다면?’ 이란 질문을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소설의 개연성이 높다고 평가를 해야 하나? 작가가 그린 주인공의 생각의 흐름을 읽기도 전에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책에 쓰여 있었다. 내가 죄를 저질러 야쿠자에게 쫒기는 상황이다. 붙잡히면 온갖 고통을 겪고 죽임을 당할 것이 뻔하다. 멀리 떠나 성형을 하고 새로운 신상을 통해 안팎으로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기에 필요한 돈만 있다면 지금까지의 인생을 청산하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 희망은 한 번의 결정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두 명을 살인해야한다. 어려운 결정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물론 아는 사람이라고 마음의 고통이 달라질 것은 없다. 그리고 죽여야 되는 사람은 여학생을 성적으로 능욕하고 살인을 했던 사람들이다.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을 죽여야 하는 입장에서 바라볼 때 나 스스로가 걱정된다. 그런 사람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내가 죽일 수 있을까? 그래도 의뢰를 한 사람이 곧 죽는다고 하니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지극히 이기적으로, 개인적으로 생각해서 당장 내가 사는 것이 우선이다.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감정이입을 하며 생각을 하다 슬픔과 감사가 동시에 느껴졌다.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죄를 한번 지으면,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선 사회에서도 자주 다뤄진다. 죄를 지은 범죄자는 낙인을 찍어 영원히 일반인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하나? 말이 좋아 구별된 것이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삶이다. 거친 삶을 살며 잘못을 저질러 야쿠자에게 몰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제안 받는 주인공이나 살인을 해서 15년 후에 사회로 돌아와 죽임을 당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 모두 큰 죄를 지은 범죄자들이다. 이들이 만약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진심으로 새 사람으로 재탄생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받아줘야 하는가? 이에 대해 사회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이 질문은 인간의 본성과도 관계있으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신에게 받친 종교인이 보기에도 쉽게 답할 수 없으리라 본다. 과연 나는 내 가족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이 용서를 빌었을 때 용서할 수 있을까?

 

정말로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용서를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아주 조금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는다. 그런데 완벽히 새 사람이 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허점이다. 물론 완벽히 사람이 바뀌었더라도 내 속의 분노로 인해 그 사람이 완벽히 바뀌었다고 판단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관용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긴 참으로 어렵다. 삶은 참 어렵다. 그래서 철학이란 학문이 존재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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