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이들과 함께 울어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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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이들과 함께 울어준다는 것
박경철,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어느 평화로운 주말, 평소 사색에 잠기려 자주 찾는 한 카페의 책장에서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한 시골에서 외과 의사로 일하는 박경철 선생님의 이야기를 병렬식으로 구성한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내 마음 한 켠에는 의사의 꿈이 조금은 남아 있었음을 느꼈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고 느끼는 사람들. 비극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그 가운데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울고 기꺼이 부둥켜안는 사람들.
책을 읽는 내내 매우 고통스러웠다. 외팔이로서 노모와 단둘이 힘겹게 살아가다가 삶을 비관해서 ‘그라목손’이라는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한 어느 중년 남성의 이야기. 30여 군데를 칼에 찔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어느 여성의 시신.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하려고 염산을 복용했다가 구강 조직이 타버리고 식도가 녹아내렸던 어느 20대 여성의 일화. 치매를 앓다가 곰국을 끓인다고 자기의 어린 손자를 가마솥에 넣고 삶아 버린 어느 노인의 이야기.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랬던가. 왜 이렇게 세상에는 비극적인 일이 많은 걸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느꼈던 것은 군 시절이었다. 근무를 서다가 돌연사했다던 어느 선임. 옆 생활관에서 군화 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한 병사. 그리고 사격 훈련을 지원하다가 사격 구령이 끝나고 미처 회수통에 담기지 않은 탄피를 주우려 앞으로 나갔을 때 바로 옆에서 남아 있던 탄환을 발사했던 어느 병사의 돌발 행동까지.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에 나는 태연하지 못했다.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하다. 왜 무서워하기만 했던 것일까. 속으로라도, 울어 줬어야 했는데. 비록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서 울어 줬어야 했어.
한 때, 외과 전문의가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닌, 사람을 살린다는 그 숭고한 행위에 심취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때에 한창 유행하던 의료 드라마 <뉴하트>에서 죽어가던 사람을 기적적으로 살려내는 흉부외과 의사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이후 각종 의료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서 남모르게 의사의 길에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러한 꿈을 접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실수하면 사람의 목숨이 날아가고, 손 하나 잘못 놀리면 불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압박감을 견뎌낼 수 있을까. 자문해 볼 때마다 나오는 답은 ‘아니오’였다. 결국, 나는 다른 길에서 인류에 공헌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포부로 공대의 길을 선택했다. KAIST에 입학할 당시의 나는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과학/공학자가 될 거라는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부디, 그 결심이 내 인생의 황혼기까지 이어지길.)
그리고, 아직까지는 의대를 가지 않고 공대에 진학한 내 결정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외과 의사로서 그 모진 길을 견뎌내기에는 정신력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공학도로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리라. 한 사람이라도 더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책을 덮었다. 문득 혀 끝이 짭쪼름한 것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조금씩 흘렀나 보다. 다행히 보는 사람은 없던 것 같다. 책을 읽는 순간이라도, 책에 소개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보고 뒤늦게나마 그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기회를 준 박경철 선생님께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로마서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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