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김정현
페이지 정보

본문
집의 책장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책 이름은 ‘아버지’. 1996년 내지 1997년의 베스트셀러라고 했다. IMF 시기에 나온 책이어서 아마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의 주인공인 정수는 췌장암 말기로 판정받는다.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한 서기관이었으며, 부인과 두 명의 자녀를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다. 췌장암 판정 후에 본인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 그는 술을 마시고 술주정까지 심하게 한다. 이를 안 딸은 아버지를 당신이라고 부르면서 비난하는 편지를 쓰게 되고, 정수는 그로 인해 심한 충격을 받는다. 여기서 정수의 딸 지원이는 서울대학교 학생으로 나오는데, 내가 10년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지원이의 심정에 백프로 공감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도 즐거울 때나 힘들 때 술을 많이 드셨는데, 특히나 괴로워서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실 때만큼 아버지가 싫고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의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온갖 일에 시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이 구겨지고 치욕스러운 일인지, 그런 스트레스를 술로 풀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심정은 얼마나 답답한 것인지가 이해가 된다. 정수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남은 것은 췌장암으로 병든 몸뚱이와 그럼에도 무능하다고 자신을 원망하는 자식만이 남아있으니 그 비참한 심정을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이 책은 정수라는 인물을 통해 이 시대의 아버지상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기의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20년도 전에 나온 책이지만, 그 시기의 아버지와 지금의 아버지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어릴 때 우리는 흔히 “나는 아빠처럼은 안 살거야”, 혹은 “나는 엄마처럼은 살기 싫어”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여 한번쯤은 부모님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철부지 아들이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정수가 술주정을 심하게 한 것을 알고 난 후 작성한 딸 희원의 편지의 내용은 가관이다. 아버지를 당신으로 언급한 것은 고사하며, 왜 인생을 그렇게 사는지, 왜 크게 출세를 못했는지, 그렇다고 재산을 많이 축적한 것도 아니면서 왜 가족을 힘들게 하는지를 주요내용으로 한 그 편지는 평생을 희생해 온 아버지의 노력을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
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내가 정수의 입장이었다면, 자살을 기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드는 생각은 아빠만큼이라도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더 강화되고 있는 시기에 결혼해서 혼자 벌면서 가족을 모두 먹여살린다는 것을 보통 일이 아니다. 싱글이면 언제든지 사표를 던져도 부담이 없지만, 가장이라는 멍에는 사표도 던질 수 없게 한다. 언젠가 술에 취한 아버지의 서글픈 눈망울을 본적이 있다. 아버지의 짐을 함께 질 수는 없더라도, 그 고됨과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자식이 되어야겠다.
- 이전글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장 지글러 19.06.03
- 다음글우는 이들과 함께 울어준다는 것 19.06.0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