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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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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환
댓글 0건 조회 5,531회 작성일 19-06-0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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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책장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책 이름은 ‘아버지’. 1996년 내지 1997년의 베스트셀러라고 했다. IMF 시기에 나온 책이어서 아마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의 주인공인 정수는 췌장암 말기로 판정받는다.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한 서기관이었으며, 부인과 두 명의 자녀를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다. 췌장암 판정 후에 본인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 그는 술을 마시고 술주정까지 심하게 한다. 이를 안 딸은 아버지를 당신이라고 부르면서 비난하는 편지를 쓰게 되고, 정수는 그로 인해 심한 충격을 받는다. 여기서 정수의 딸 지원이는 서울대학교 학생으로 나오는데, 내가 10년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지원이의 심정에 백프로 공감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도 즐거울 때나 힘들 때 술을 많이 드셨는데, 특히나 괴로워서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실 때만큼 아버지가 싫고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의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온갖 일에 시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이 구겨지고 치욕스러운 일인지, 그런 스트레스를 술로 풀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심정은 얼마나 답답한 것인지가 이해가 된다. 정수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남은 것은 췌장암으로 병든 몸뚱이와 그럼에도 무능하다고 자신을 원망하는 자식만이 남아있으니 그 비참한 심정을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정수가 가족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 남박사는 가족에게 정수의 병을 말하게 되고, 그들은 함께 여행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 여행도 정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남은 가족들(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식들)의 추억 만들기를 위한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수는 여행지에서 고통을 참아가며 추억 만들기에 동참할 수 밖에 없었다. 평생 희생을 하고 살아왔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식을 위해 추억을 만들어줘야 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그 일생이 참으로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가족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정수는 남박사에게 안락사를 요청하게 되고, 윤리적인 이유로 반대를 하던 남박사도 결국 친구의 간곡한 청을 수락하여 그를 돕게 된다. 정수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자신이 주고 싶었던 진주목걸이와 편지를 남기는데, 그가 떠나고 나서야 가족들은 그의 소중함을 느끼고 그리워한다.

  이 책은 정수라는 인물을 통해 이 시대의 아버지상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기의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20년도 전에 나온 책이지만, 그 시기의 아버지와 지금의 아버지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어릴 때 우리는 흔히 “나는 아빠처럼은 안 살거야”, 혹은 “나는 엄마처럼은 살기 싫어”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여 한번쯤은 부모님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철부지 아들이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정수가 술주정을 심하게 한 것을 알고 난 후 작성한 딸 희원의 편지의 내용은 가관이다. 아버지를 당신으로 언급한 것은 고사하며, 왜 인생을 그렇게 사는지, 왜 크게 출세를 못했는지, 그렇다고 재산을 많이 축적한 것도 아니면서 왜 가족을 힘들게 하는지를 주요내용으로 한 그 편지는 평생을 희생해 온 아버지의 노력을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

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내가 정수의 입장이었다면, 자살을 기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드는 생각은 아빠만큼이라도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더 강화되고 있는 시기에 결혼해서 혼자 벌면서 가족을 모두 먹여살린다는 것을 보통 일이 아니다. 싱글이면 언제든지 사표를 던져도 부담이 없지만, 가장이라는 멍에는 사표도 던질 수 없게 한다. 언젠가 술에 취한 아버지의 서글픈 눈망울을 본적이 있다. 아버지의 짐을 함께 질 수는 없더라도, 그 고됨과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자식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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