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 – 무라카미 하루키
페이지 정보

본문
버스데이 걸 – 무라카미 하루키
이규섭
때때로 “나는 벌써 이 나이가 되어버려서 생일이 와도 요만큼도 기쁘지 않아요”라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반론을 한다. “아니,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나이를 먹는다든가 먹지 않는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생일이라는 것은 당신에게 일 년에 딱 한 번밖에 없는 정말로 특별한 날이니까 이건 좀
더 소중하게 여겨야지요. 그리고 유례를 찾기 힘든 그 공평함을 축복해야지요.”라고.
- 작가 후기 중에서 -
스무 살의 생일을 기억하는가? 아쉽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떤 특정한 생일이 기억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고작 수년 지났을 뿐인데, 어째서일까?
소설의 여주인공 ‘그녀’는 ‘나’의 앞에서 스무 살 생일의 하루를 이야기한다. ‘평소와 똑같이 웨이트리스 일을 했던’ 그날의 일을. 그냥 생일도 아니고 ‘스무 살’의 생일을 그런 식으로 보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일을 바꾸어 주었어야 할 친구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평소와 같이 레스토랑 일을 보아야 했던 그녀는, 하필 매니저의 부상으로 그를 대신해 사장의 방으로 음식을 나르게 된다. 그날이 그녀의 스무 번째 생일 이었음을 알게 된 사장은 선물로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기묘한 제의를 하는데, 그녀는 사장도 꽤나 놀랄만한 색다른 소원을 말한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말이다.
생일은 일 년에 하루뿐인 특별한 날인데, 하물며 갓 성인이 된 스무 살의 생일은 얼마나 특별할 것인가? 그렇다면 자칫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리고 말, 그 하루를 특별하게 지내고 싶다는 기대는 당연할 지도 모른다. 그 기대감과 함께 그날 하루가 인생의 예고편처럼 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몰려온다. 그 하루가 남은 인생 전체를 암시하는 것 같이 느껴져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베일에 싸인 것은 언제나 두렵기 마련이니까.
성인이 되고 타지에서
따로 살면서 슬슬 생일을 챙기는 게 귀찮아질 때가 있다. 그건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생일은 그냥 축하 인사 몇 마디로 대충 넘기고 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생일 파티를 벌이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생일을 굳이 챙기는 것을 마치 ‘애 같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나도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그냥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인 듯 어물쩍 넘기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귀찮음이 몰려와 세워진 <생일 대충 넘기기 계획안>은 안타깝게도 생일 두 주쯤 전에 진즉 반려된다. 이번 생일엔
며칠쯤 올라올 거냐는 동생과 엄마의 연락을 받으면, 특별한 업무가 없는 이상 그 주 주말에는 서울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슬쩍 친구들 약속도 끼워 넣어서.
올해 생일은 유독 대충 넘기고 싶은 날이었다. 일년 내 건강하던 몸뚱어리가 당시 유행하던 A형 간염에라도 걸린 건지 오한에, 두통에. 도저히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몸은 무겁고 침대 위에서 ‘이거 진짜 꼭 가야 하나’, ‘생일이 뭐 대수인가’ 따위의 생각이 드는데, 식당 예약은 했다 하지, 일요일에는 또 할머니 댁에 갈거라는 둥 다들 기대하는 것 같아 결국 한숨자고 어찌어찌 올라갔다. 물론 완전히 낫지 않아 올라가는 동안에도 생고생이었지만.
서울에 도착하면 예약해둔 식당에서 만나, 간만의 재회에 반가워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입맛은 없었지만, 뭐 막상 올라오면 또 즐겁다. 늘 이런 식이다. 때로는 엄마가 직접 만든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차리기도 하고, 하지만 서로가 바쁠 때면 집에 있던 음식들이랑 배달음식을 모아서 상을 차리기도 한다. 이번처럼 외식을 할 수도 있고, 뭐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준비하는 편이다. 밤이되면 거실에 모여서 작은 파티를 연다. 간식거리와 작은 케이크를 두고 옹기종기 모인다. 우리 가족은 케이크를 좋아하진 않아서 가장 작은 사이즈의 케이크가 오른다.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뭐가 되었던 케이크는 올라온다. 구색 맞추기다. 초를 붙이고, 거실에 불을 끄고는 어색한 분위기를 날리려는 듯 억지스러운 경쾌한 톤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셋의 합창은 한 사람만 어긋나도 툭툭 삐져나온다. 후~ 하고 초를 끈 뒤엔 언제나 교훈적인 그러나 대체로 상투적인 아버지의 덕담이 있고, 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짧은 투닥거림이 있은 뒤에 이것저것 차려 둔 음식을 먹으며 TV를 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금새 시계 바늘은 열 두번째 눈금을 지난다.
이리저리 빙빙 돌려 말했지만, 아마 스무 살의 생일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어느 딱 한 해의 생일을 묻는다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생일은 분명 내게 뚜렷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조금씩 쌓여서 하나의 구색이 갖추어 져서. 나를 위한 날. 일 년에 단 하루 아주 특별한 날의 풍경이 정겹게 나를 기다릴 수 있도록 그렇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닐까 조금은 억지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러니 새삼 감사하게 된다.
생일은 기념일이다. 자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고, 곧 자신을 기념하는 날이다. 모든 기념일이 그러하듯이 그저 365일 중의 하루로 여기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온갖 것들이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하나 뿐인 나만의 날이다. 그러니 소설이 말하듯 생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묻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인생의 의미를 묻는 것과 같다. 누군가 스무 살의 생일에 당신에게 특별한 생일 선물을 주겠다고 말한다면, 어떠한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말한다면, 그때 당신이 무엇을 말할 것인가?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어려운 이야기다. 허나 한 가지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있다. 내게 있어 생일의 의미는 늘 주변 사람들과 이어져 있다. 대충 넘기고 싶어도 그 날을 나의 기념일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 내가 어떤 사람이던 간에 적어도 하루는 삶의 주인공이 나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사람들. 내게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만의 기념일이 결국 다른 이와 이어졌을 때 의미를 발하는 만큼. 나의 인생도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드러낼 것이다. 그러니 매년 생일에는 서울로 향한다. 그러니 이 날 만큼은 친구에게 “야, 내 생일이니까. 밥이나 한 끼 사라.” 라고 뻔뻔스럽게 말하고는 구색을 갖춘다. 주말에 집에 가면 놓여있는 가장 작은 사이즈의 케이크처럼.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는 그 날에 이정표를 세우고 넘어간다.
- 이전글정해진 미래 19.06.04
- 다음글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장 지글러 19.06.0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