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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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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5,221회 작성일 19-06-1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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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


- 최경영 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철학, 정치, 수학, 과학과 같은 굵직한 분야들을 한 사람이 통달했던 고대 시대와는 다르게, 지금은 각각의 분야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시대이다. 해마다 전문화된 각각의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 결과와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모든 것들이 진실이라고 믿기는 힘들다. 논문들은 제각각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그 분야에 대해서 깊게 아는 사람이 아니면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과장된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다. 같은 주제에서도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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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은 어느 유명한 저널에서나 어느 유명한 대학교에서 나온 논문이라고 하면 아무런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많은 논문을 읽고 그것을 분석하고 그 연구를 따라 해본 나로서는 모든 논문의 결과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차라리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선별해서 보여주는 것에 가까웠다. 좋은 저널에 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단점들을 감춰야 한다. 훌륭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이야기를 전하더라도 그 언어가 주는 어투나 느낌에 따라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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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난 뒤에는 논문을 볼 때 비판적인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포장지와 내용물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었다. 지구에 자신의 한쪽 면만 보여주는 달의 뒷모습을 보고 싶었다. 한 분야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고민할수록 본질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분야에서 참과 거짓, 본질과 껍데기를 파악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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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분야에 많은 배경 지식이 있는 몇몇의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그 분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그러한 분별력이 부족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논문 몇 개를 인용하면서 펼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큰 의심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화장품 회사의 임상실험 결과에서 피부의 상태가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고 하는 결과들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여기에 논문이나 특허가 있으면 그 광고 효과는 배가 된다. 대중들은 특허 출원이 별거 아니라는 사실과 논문 결과는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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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대중들은 전문가의 이야기를 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한 분야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과 논점이 있다는 사실보다도 TV에서 나오는 전문가나 교수의 말 한마디를 맹목적으로 믿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분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 권위에서 오는 신뢰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의 뉴스가 그렇다. 언론은 이러한 대중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매체에서 주는 메시지를 교묘하게 바꾸어 사람들을 언론이 원하는 틀 안에 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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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성장률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수준'이라는 설명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지난해 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18위로, IMF 외환 위기가 났던 1998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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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물가가 2017년 1.9%에서 2018년 1.5%로 안정세를 보이는 점에 대해서도 경제 성과로 홍보했다. 그러나 월세 등 일부 품목 물가가 낮아진 착시일 뿐 쌀(27.1%)·감자(21.4%)·고춧가루(33.0%) 등 체감 장바구니 물가는 전년 대비 대폭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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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내용은 2019년 5월 9일 조선일보에서 현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발췌한 내용이다. 발췌한 기사의 내용만 보면 경제 성장률은 이번 정권에서 대폭 떨어지고, 생활 물가는 대폭 오른 것처럼 보인다. 당장이라도 경제가 망할 것 같고, 물가가 올라 삶이 팍팍해 진 것만 같다. 내 월급을 빼고는 모든 물가가 오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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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사실은 어떠한가. 실제로 기사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OECD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해보았다. 직접 찾아본 결과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OECD 국가 중에서 18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위에 존재하는 국가들은 칠레, 라트비아, 헝가리, 폴란드, 리투아니아와 같이 경제 신흥국이 대부분이었다. 타당한 비교를 위해서는 우리와 경제 수준(GDP)가 비슷한 이탈리아(0.73%), 일본(0.79%), 프랑스(1.58%), 영국(1.40%) 등과 비교를 해야 한다. 비슷한 경제 규모의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2.69%)은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었다. 생활 물가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생활 물가 품목 140개 중 20% 이상 급등한 것은 위에 언급한 쌀, 감자, 고춧가루 3가지뿐이었고, 10% 이상 증가한 품목도 9가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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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조선일보는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사를 작성하였다. “IMF 외환 위기가 났던 1998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 “체감 장바구니 물가는 전년 대비 대폭 상승”과 같은 자극적이고 눈에 보이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뉴스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짜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다른 많은 언론도 이에 질세라 비슷한 종류의 기사를 양산하였다. 현재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만 보면 당장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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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조정’이라는 단어에는 아픔이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인간적 고통이 없습니다. 해고의 좌절과 절망, 그리고 가장의 실직으로 인한 가족의 고통이 오히려 이 단어에 의해 희석됩니다. ‘구조조정’이 모호하게 만들어버린 구조조정의 본질은 ‘해고’와 ‘가난’입니다. 그것이 구조조정의 진짜 현실(진실)입니다. 그런데 왜 언론은 ‘대량 해고’, 또는 ‘대량 감원’ ‘대규모 실직’이라는 단어 대신 ‘구조조정’을 선호하는 것일까요?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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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은 기사의 단어를 교묘하게 바꾸어 사람의 인식을 바꾼다. 노동자보다 대기업의 편에 선 언론은 ‘대량 해고’라는 단어보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퇴직 강요’라는 단어 대신 ‘명예퇴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단어가 주는 아픈 느낌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 결과 많은 대중들은 나라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대기업의 행태를 비판하고 감시해야 하는 언론인들이 그들이 주는 이익에 현혹되어 대중을 사고의 틀 안에 가둔 것이다. KBS의 시사 보도 프로그램을 맡아왔던 최경영 기자의 저서 <9시의 거짓말>은 이러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이야기하면서 언론이 진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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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의도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범위는 그 사람이 누리는 세계의 넓이를 결정한다. 바꾸어 얘기하면, 언어의 범위를 제한하면 한 사람의 사고의 너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언론이 무서운 이유이다. 언어가 사물과 사람을 규정하는 사회에서 언어에 대한 지배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언론은 사물과 사람을 제멋대로 자신들이 만든 틀 안에 가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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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의 이러한 속성 덕분에 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과 대기업들도 언론을 건드리지 못한다. 실제 일어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일어난 것처럼 이야기하거나, 팩트를 기반으로 이야기하지만 조금만 비틀어서 왜곡된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을 당해낸 세력은 아무도 없었다. 현재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장자연 게이트’만 보아도 그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만약 유명한 정치인의 아들이나 대기업의 자식들이 비슷한 사건에 휘말렸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사건이 미제로 남았을까. 언론은 대통령보다 굳건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입법, 행정, 사법 영역의 위인 제 4의 영역에서 언론은 아직도 그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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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언론 개혁’이다.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다른 정치인과는 다르게 그는 언론과 싸운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지금까지 행해왔던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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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제게 언론사 소유지분 제한의 견해를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해왔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언론을 권력으로서 어떻게 흔들 생각도 없지만, 그러나 언론에게 고개를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정치인은 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맞서 싸울 것입니다.

-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인천경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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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은 우리가 개혁해야 합니다. 언론은 여론을 지배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헌법상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의 많은 사람들이 언론 자유를 얘기하고 있는데 언론 자유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만 말하고 있는데, 사실은 돈으로부터의 자유, 말하자면 금권으로부터의 자유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오늘 언론 사주가 금권화 돼 있는 사회에서는 언론 사주로부터의 자유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언론의 자유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 원광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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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을 좌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언론이 먼저 선진 언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선진국 한 번 해 봅시다. 정치와 언론만 선진국 수준에 미달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정치와 언론이 각성해서 우리도 선진국 한 번 해 봅시다. 갑시다. 부탁합니다. 최소한 있는 정책과 사실만은 제대로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 참여정부 평가포럼 강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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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끊임없이 언론이 바로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언론이 자신의 편에 서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공정하고 독립적이고 수준 있는 언론을 원했다. 권력과 자본에 굴복하는 언론이 되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미 언론은 권력과 돈의 맛을 알아버린 뒤였다. 기득권을 뺏기기 싫은 언론들은 반발했다. 보수 언론, 진보 언론 할 것 없이 언론들은 노무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선동과 왜곡된 기사들을 쏟아내었다. 대중들은 이러한 기사를 보고 대통령을 욕하기 시작했다. 언론들의 공격 때문에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대통령 못 해 먹겠다’와 같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언론의 왜곡과 농간에 의해 형성된 것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한다. 말의 일부분을 잘라 그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신문 기사와 뉴스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세금 폭탄”과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서민 경제 파탄”과 같은 자극적인 말들로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대중들은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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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을 개혁하고자 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패배했다. 스스로를 산맥이 없는 봉화산 같다고 이야기했던 그는 언론의 모든 공격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어떤 세력도 그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았다. 언론을 바꾸려는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우리에게 유산을 남겨 주었다. 언론 개혁 시도의 본보기로 남은 대통령으로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지금에서야 국민들이 깨닫고 있다. 그 시절의 언론이 보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경제는 성장했고 언론에서 ‘대통령의 막말’이라고 이야기한 것들이 왜곡된 기사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들은 언론의 추악함과 바닥을 보았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나서야 그의 신념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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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사회는 다원화된 이익사회이다. 모든 세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 하지만 언론은 이익을 따라가서는 안된다. 공정해야 하며, 어떤 이익 집단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처럼 ‘금권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대중은 분별할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비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무분별한 수용은 지양해야 한다. 많은 대안 미디어들은 언론을 개혁하는데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외부에서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그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올바른 사회와 언론을 위해 항상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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