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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완성 결혼을 다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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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5,536회 작성일 19-06-1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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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완성 결혼을 다시 생각하다

그레고리 팝캑 저





     얼마 전 나는 고등학교 동기들 중 처음으로 결혼을 하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가했다. 결혼식이야 이미 수도 없이 다녀왔었지만 친구가 결혼한다는 느낌은 색달랐다. 이제는 드디어 내 차례가 온 것인가 하는 생각을 저마다 하고 있는지 박수를 치고 있는 친구들 중 특히 여자 친구들은 얼굴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나는 이 결혼식에서 정말 재미있는 경험을 하나 했다. 많은 하객들은 손 따로 눈 따로 그리고 입은 또 따로 였는데 대부분의 입들은 이 결혼이 여자 쪽에 큰 축복이라 말하기 바빴다. 내 친구는 신부였고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일까 싶어 귀를 기울였더니 글쎄 남자 쪽이 그렇게 부자란다. 얼마 만나지도 않고 결혼을 서둘렀던 이유가 그거였냐, 여자가 공대 간호대 그리고 치대로 옮겨갔다던데 꿈이 있었다는 둥 얼마나 행복하면 눈물 한 방울을 안 흘리냐는 둥 낯이 아니라 등이 뜨거웠던 건 처음이었다. 도대체가 결혼식에 축하를 하러 온 건지 논평을 하러 온 건지 내 친구가 들을까 겁이 났다.

 

      나는 여태껏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라 생각했다. 친구가 이 결혼 전 청첩장을 나눠 주는 자리에서 약 4개월 만난 오빠와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아주 장황하지만 즐겁게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했고 즐거웠으며 평생 사랑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낼 자격이 충분했다. 그들은 그들의 사랑을 결혼으로써 완성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하객들이 바라보는 이들의 결혼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내 친구와 신랑이 바랐던 결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러한 시선 차이가 비단 나이가 든 사람과 어린 사람의 관념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결혼을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결혼이야 말로 사랑의 완성이 아닌 끝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의 의미에 대한 생각 차이는 지구상 70억 개인마다 생각이 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이란 일생일대의 과업이다. 요즘은 점차 전통적 가정관이 해체되고 보다 책임을 덜 지면서 상대를 더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만나 가는 관계가 서서히 확산된다고도 하나, 아직은 이런 행태를 보는 사회적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래서 결혼은 상대를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고른 상대와 어떻게 행복하게 관계를 영속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무슨 직장 생활도 아니고 개인이 감정적으로 행복해지는 데 무슨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게 참으로 큰 역설이다만, 논리 구조를 따지기 전에 많은 기혼자들이 냉엄히 맞는 현실이기도 하니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부부의 (상대에 대한) 기대치는 한 없이 높아졌지만, 사랑을 완성시키는 방법과 실천의지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서양이라면 과거에는 종교 윤리가 특히 부부들에게 일일이 생 속에서 실천하고 준수해야 할 사항을 코칭도 하고 있었다만, 이들 중 상당수는 불평등 관계를 전제로 한 것도 있고 시대상이 크게 변한 지금 더 이상 큰 효용을 발휘하기 힘들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전문가들, 인생 선배들 그리고 학자들이 그간 발견하고 축적해 둔 노하우를 참조하는 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자 그레고리 팝캑은 이른바 결혼 상담 치료사이다. 이런 직종의 전문성에 회의의 눈길을 줄 수도 있겠으나 일단 많은 사람(고객)들을 상대하고 사례의 데이터를 축적, 분석해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일단은 그 말을 경청할 가치가 있다. 책을 읽어 보니 차분한 어조 속에 인생의 갖은 굴곡, 고비를 통찰하는 지혜도 충분히 녹아나 있어 그리 얇지만도 않은 책 한 권을 읽어낸 보람이 충분했다.

 

     성적, 재산, 소득 등으로 백분율 상위 하위를 나누는 게 일상이 된 요즘이지만, 저자는 30년 넘게 모범적으로 살아 온 자신 부부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 화기애애 기준 상위 7%에 속하는 모범적인 부부로 살려면 어떤 노하우가 필요할지 자세히 소개한다. 동반자적 결혼을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결혼의 목표가 비교적 가시적이고 뚜렷하게 잡혀 있다. 이런 이들의 공통점은, 예컨대 가사일 분담에서 일을 전혀 상대에게 미루지 않고, 즉각 눈에 보이는 대로 처리하려 든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더 유능해지고 더 자격을 갖춘 배우자가 되어가며 이런 과정에서 성취감마저 느끼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생활이라고 하면 당연히 방어막이 일정 부분 형성되고 그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각자가 목표로 하는 걸 교환하고는 관계를 해소한다. 이 방어막을 침해하고 들면 보기 추한 싸움이 나는 거고, 이른바 2차 집단의 질서가 무너진다. 그런데 부부는 서로 살을 섞는 사이이니만큼 이런 방어막이 빠르면 빨리 해소되는 편이 낫다. 과거 유교주의 풍조 하에서는 남편과 양갓댁 출신 부인 사이에 엄격한 틀을 유지하기도 했겠으나, 이런 종류의 관계가 현대 사회의 욕구 해소, 기능 수행을 제대로 해 낼 리 만무하다. 저자는 특히 이 진정한 친밀감형성이란 덕목을 강조한다.


남편도 아내도 살아가면서 지금보다 더 매력 있는 상대, 사회적으로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상대를 만날 수도 있겠다고 기대는 하지만, 현재의 배우자보다

삶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더 든든한 지원자가 되지는 못하리라 확신한다.


물론 이것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위선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확신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노력이 필요하다. 실패하는 부부는 대개 몇 번 피상적인 시도를 하거나 자기 욕구를 일방적으로 강요한 끝에 원래부터 맞지 않았으며 결합되지 말아야 할 사이였음을 결론내리고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헌데 이는 자신의 인격적 불성실을 호도하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중세식 정혼, 중매 시스템에 의해 만난 것도 아니고 서로 한때는 원해서 끌렸으면서 이제 와서 성격 차이, 출신 성분 탓을 하는 건 자신의 인격과 판단 능력에 결격 선고를 스스로 내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노력 그러나 방법만 잘 따라가면 과정 자체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을, 바른 노력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안나 까레니나의 첫 구절에 나오는 말처럼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 각기 나름대로 불행을 가지고 있다. 아마 결혼식장의 논평가들은 주변의 불행을 이미 한껏 몸소 체험한 분들이기에 조금 더 현실적으로, 조금은 냉정하게 식을 바라보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의 완성을 결혼으로 생각하기보다 또 다른 시작으로 바라보는 것이 옳다. 서로를 책임질 의무를 법적으로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자리라고 바라보는 것이 옳다. 나도 이제 나이가 어느덧 28에 이르러 결혼은 저 멀리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라 생각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그저 나이가 차면, 그리고 부모님이 그래라 하시면 응당 그래야하는 것이라 여태껏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은 아이와 아내를 책임지고 사랑해줄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자리이며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한층 성숙해질 것을 다짐하는 그러한 계기임을 가슴속에 새겨야겠다. 20대 후반의 내 인생을 결혼 자금을 마련하는 시기로만 형편없게 생각지 않고 마음으로 준비하는 값진 기간이라 생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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