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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교향곡 - 앙드레 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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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541회 작성일 19-06-0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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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인터넷에서 '나는 귀머거리다'라는 제목의 웹툰 (인터넷으로 연재되는 만화)를 읽은 적이 있다. 귀가 들리지 않는 20대의 여성 작가 라일라는 자신의 웹툰을 통해 청각장애인으로서 자신이 받아온 색다른 경험과 여러 생각들, 그리고 타인에게서 받은 상처와 차별에 대해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가까운 지인 중에 청각장애인이 없는 나에게 만화의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으로 기억된다. 만화를 보면서 하나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라일라 씨와 층간소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귀가 들리지 않기에 라일라 씨는 층간소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고통받는 시간에도 라일라 씨에게는 늘 평안한 잠시간이 주어졌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었다. 어쩌면 라일라 씨에게 소리라는 개념은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이기에 더 순수하고 중립적인 존재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번에 읽은 책 '전원 교향곡'의 여주인공 제르트뤼드는 청각장애인이 아닌 시각장애인이다. 알프스의 존경받는 주인공 목사는 한 노인의 장례 예배에서 노인이 남기고 간 시각장애가 있는 소녀 제르트뤼드를 만나게 된다. 제르트뤼드는 목사의 사랑을 받으며 세상을 배워가기 시작하고, 목사의 철학을 따라 세상의 선하고 아름다운 부분만 교육받게 된다. 제르트뤼드는 목사를 향한 감사의 마음을 사랑의 감정으로 키워가기 시작하고 이미 결혼하여 아내와 자식을 둔 목사는 제르트뤼드와의 관계가 불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성인이 된 제르트뤼드를 집에서 독립시키게 된다. 수술을 통해 기적적으로 눈을 뜬 제르트뤼드는 자신이 사랑하는 목사를 보기위해 목사의 집을 찾아가고, 거기서 자신으로 인해 오랜 기간 고통을 겪어온 목사의 아내 아멜리의 슬픔 어린 얼굴을 보고 큰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채 제르트뤼드는 자살을 선택하며 소설은 마무리짓게 된다.


소설 '전원 교향곡'은 제르트뤼드와 목사의 만남부터 목사가 자신과 제르트뤼드의 감정 깨닿게 되는 첫번째 노트, 제르트뤼드가 독립 후 수술로 눈을 뜨고 자살을 선택하는 두번째 노트, 이렇게 두 파트로 나누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첫번째 노트에서 서술된 목사와 제르트뤼드와의 관계가 완전히 대비된 관점으로 두번째 노트에서 다루어졌다는 점이다. 첫번째 노트에서 목사와 제르트뤼드의 관계는 모든 것이 순수하였다. 제르트뤼드를 향한 목사의 감정이 순수하였고, 그의 가르침과 제르트뤼드의 배움이 순수하였고, 제르트뤼드가 바라보는 목사의 아내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순수하였다. 세상에 모든 것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뿐이었기에 제르트뤼드에게는 목사를 향한 자신의 감정마저 순수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제르트뤼드가 눈을 뜨게 되면서 세상은 달라진다.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귀했지만, 제르트뤼드는 자신의 눈을 통해 그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슬픔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목사가 읽어주던 희망차고 사랑이 넘치는 성경구절만이 아닌, 죄와 벌에 대한 강력한 성경 말씀들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이 아멜리에게 행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이며 자신은 이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된다는 죄책감의 무게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책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작가는 소설을 통해 마치 제르트뤼드는 눈을 뜨는 것을 통해 더 불행해졌고, 슬픔을 알게된 것을 통해 자살을 선택한 것처럼 묘사한다. 만약 제르트뤼드가 눈을 뜨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람들의 얼굴에 슬픔이 드리우는 것을 몰랐다면 그녀는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만약 제르트뤼드가 목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목사의 아내 아멜리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몰랐다면, 또 성경에 적혀있는 죄와 벌에 대한 내용을 몰랐다면 그녀는 죄책감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눈이 보이지 않으면 순수함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소설적인 장치로 여기고 생각하면, 제르트뤼드는 평생을 시각장애인으로 살 때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볼 수 있음에도 보지 않음을 택하는 것이?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음에도 보지 않는 삶을 택한다. 정치적인 이슈와 시사를 알고 배울 수 있음에도 정치를 외면하고 예능만 보는 사람들. 고통 당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못 본척하고 지나가는 행인들.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의 불합리함을 무시한채 자신에게 피해만 없으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 이들 모두가 볼 수 있음에도 보지 않는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다. 진실을 외면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의무와 책임을 무시한채 행복함만을 추구하는 현 시대의 모습이 자신의 삶 속에서 보이는 것은 진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눈 뜨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나에게 주어진 자리와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하자.


"목사님께서 절대로 저에게 읽어주지 않으신 구절들이었지요...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로마서 7장 9절)

- 전원교향곡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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