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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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혐오가 손쉽게 유통되는 사회 속에서 갈등이 증폭되는 이유는 지극히 사사로운 우리 서로가 바라보는 방식인 경우가 허다하다. 타인을 단정 짓고, 낙인을 찍으며, ‘저 사람들은 원래 그래’라는 말로 상대방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순간 관계는 대화가 아니라 전선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익명성과 속도가 결합이 된 가상 세계의 공간에서는 분노가 더 빠르게 번지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때때로 나약함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결국 혐오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 사회의 공기를 탁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우리는 그 공기 속에서 서로를 점점 더 거칠게 대하며 살아가게 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낯부끄럽고 감상적 구호처럼 느껴지지만, 상대방을 헐뜯는 혐오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출발점은 의외로 일상의 언어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메커니즘은 대개 사실이라는 팩트 기반의 언어를 빌려와 그럴듯한 당위성을 확보한 채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이면에는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희생양으로 여기는 심리로부터 생긴다. 누군가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순간, 세상은 단순해진다. 복잡한 문제를 특정 집단의 탓으로 환원하려 하고, 마주하기에 껄끄럽거나 불편한 현실은 누군가를 배제함으로써 정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혐오에서 우리가 간과한 것은 그렇게 얻는 편안함은 상당한 비용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잃은 사회는 위기의 순간에 서로를 지탱할 수 없는 공동체로, 외부의 자극으로 쉽게 무너질 뿐만 아니라 내부의 작은 균열로도 쉽사리 부서질 수 있다.
혐오를 희석할 수 있다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우리는 어찌 보면 가족 혹은 연인 간의 감정으로 국한 지으면서, 거창한 감정으로 생각해 온 것 같았다. 하지만 큰 의미에서의 사랑은 ‘좋아하자’라는 의미를 넘어 ‘인정하고 존경하자’라는 내용을 포괄하는 태도에 근접하지 않나 싶다. 상대를 조롱하기 전에 한 번 더 묻고, 퍼뜨리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고, 갈라치기하는 말 앞에서 침묵 대신 작은 반대를 선택하는 것. 그런 사소한 선택들이 결국 사회의 평균 온도를 바꾼다. 혐오가 관계를 승패의 구도로 만들 때, 사랑은 관계를 다시 사람 대 사람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상적으로만 느껴졌던 사랑이라는 단어는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사회적 기술이었던 것이었다. 즉각적인 쾌감과 단결감을 주는 혐오는 그 끝에서는 더 큰 고립과 불안이 남는 반면에, 사랑은 느리고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삶을 견디게 하는 안전망을 만든다. 결국 서로를 사랑하자는 말은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자는 낭만이 아니라, 무너지는 공동체를 다시 세우기 위한 가장 실천하기 쉬운 초석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거대한 감정이 아니라 말의 선택, 시선의 방향, 그리고 비교와 단정을 멈추는 일상적 훈련에서 시작된다. 오늘 내가 던지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표적화하는 돌이 될지, 누군가를 사람으로 붙잡아 두는 손이 될지 생각해 보았을 때, 그 선택을 더 자주 사랑 쪽으로 기울이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밀어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려 한다. 해와 달이 서로 비교하지 않으며 각자의 시간에 빛나듯, 나도 타인도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 뿐이며 그러함을 인정하는 것, 그 인정이야말로 혐오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첫걸음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한다고 생각할 때 가장 약해지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가장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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