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내 감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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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정, 생각 그리고 주장을 솔직하고 직관적으로 표출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나를 되돌아보면, 내 감정이나 생각을 또렷하게 말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처음엔 그저 확신이 없기에 말끝을 흐리는 습관 때문인 줄 알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이러한 말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집단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 문화에서 개인의 눈에 띈 입장은 집단 질서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이러한 표현을 선택하는 것은 사회적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방어기제로부터 시작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의 의견이 다수와 어긋날 경우, 다수로부터“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혹은 “ 네가 예전에 그렇게 말했잖아.”와 같은 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관계적 긴장을 유발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같아요’는 꽤 유용한 말이 된다. 말하는 이의 판단과 방향을 선명하게 고정하는 ‘이다’나 ‘입니다’ 같은 단정형 어미랑 다르게, 인지적 완충 장치를 부여할 수 있는 ‘같아요’를 선택하여, 의견을 제시하되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을 잠정적 상태로 남겨둠으로써 화자는 책임의 강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같아요’는 단지 방어기제에 기반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줏대가 없어서 붙이는 말이 아니라, 중립성을 표출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조화와 순응을 미덕으로 여겨온 우리나라 사회는 명확한 나의 주장을 상대방들 앞에 펼치는 태도보다는 그 순간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이 높게 평가되곤 했으니까.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내 생각은 이렇지만 상대방과의 관계를 존중하는 그런 마음이 말끝에 ‘같아요’라는 단어로 여지를 남겨두는 쪽을 택해왔는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책임을 피하려는 마음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관계를 존중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한 편으로는 과거와 달리 선택해야 할 건수는 많고, 선택의 결과는 더 쉽게 기록되는 사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러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잘 선택해야 한다는 믿음은 더욱 흔들리게 되며, 너무 많은 선택지는 최종적인 선택을 거부하기에까지 이어지게 됐다. 결국 “단정하지 않는 말”은 관계의 안전뿐 아니라, 불확실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으로도 작동한다. 선택의 구조 자체가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보호받기 위해 세운 벽이 어느덧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어 진짜 내 목소리를 밖으로 꺼내는 법을 잊게 만든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같아요’라는 말이 난처한 순간들로부터 나를 지켜준 일들이 있지만, 이와 동시에 그 말 뒤에 숨어 내 마음을 끝내 꺼내지 못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유난히 선명해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금씩이라도, 내 감정을 더 분명히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근거로 말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기대가 아니라, 내 감각을 기준으로 살아보는 연습을. 그래서 오늘만큼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내가 그렇게 느끼는 그대로를 바탕으로 결정해보고 싶어졌다. 작고 보잘것없는 선택이라도, 내 감정과 감각을 기준으로 삼는 연습 말이다. 아마 그 반복이야말로, 언어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로 내가 내 삶의 주체라는 감각을 되찾는 일로 이어질 것 같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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