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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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
한동안 읽지 않았던 책을 다시 펼치면, 이전과는 다른 감상에 젖게 되는 경우가 많다.『호밀밭의 파수꾼』은 학창 시절 필독도서로 처음 접하였지만, 당시에는 주인공 홀든의 모습이 불쾌하여 읽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던 책이었다. 주변 모든 것에 불평을 하며, 까칠하게 구는 행동과, 문제아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문제는 외부 탓을 하며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 비겁하고 게으르게 느껴졌을 뿐 아니라, 결국 되고자 하는 그의 이상향이 고작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점이 한심하다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덮고 나서도 이 책이 왜 명작이라 칭해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다시 읽은 지금도, 초반의 느낌은 비슷했다. 별 것이 아닌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불만을 쏟아내는 주인공과 적나라하게 적힌 욕설과 외설적인 표현들이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존과 다른 감상이 들게 된 것은 같은 또래의 시야로 주인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성인의 시야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홀든을 교실 안 분위기를 흐리는 불량한 친구로 투영하며 불쾌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민감한 감성과 예민함으로 방황하며 미숙한 표현방식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자신만의 소신과 따듯함이 있는 한 명의 어린 친구로 말이다.
홀든이 추구하는 방향과 행동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 지 판단 하는 것은 차치하고. 이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사회는 무언가 부조리하다. 학교는 본질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정해진 틀 안에서 규칙을 준수하여 의도된 답안을 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어른들의 세계는 위선과 형식, 권위에 가득 차 있다. 모순적인 거짓으로 점철된 세상 속, 홀든의 시야에서, ‘싫지 않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진실되어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어린아이들 뿐이다. 그렇기에 홀든은 그 아이들이 세상에 더럽혀지지 않고 호밀밭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기를 바라며, 자신은 그들이 뛰어놀다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지켜봐줄 수 있는 파수꾼이 되기를 희망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 꿈이 현실을 모르는 유치한 이상처럼 느껴 졌었다. 그러나 다시 읽으며 보니, 홀든이 바랐던 것은 단순히 파수꾼이 되어 해맑은 아이들을 돌보며 행복하게 살겠다는 것이 아닌, 홀든이 바라는 어른의 모습을 파수꾼의 태도에 투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행동을 통제하며 정해진 규범만을 강제하는 것이 아닌, 적정한 안전망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지켜봐주며, 스스로 선택하고 넘어지며 배우는 과정을 지켜봐 줄 수 있는 어른.
이 책은 성장 소설이지만, 주인공인 홀든이 끝내 무언가를 배웠다거나,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홀든이 바라는 파수꾼의 모습을 통해,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파수꾼이 되거나, 혹은 파수꾼을 자처하게 된다. 가정이나, 회사라는 하나의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뛰어노는 아이를 지켜볼 수도, 날아오는 새를 쫓으며 호밀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지켜본다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다. 아이만 지켜보다 가는 날아오는 새에 밭이 엉망이 될 수도, 새만 쫓아내다 가는 아이가 떨어져 다칠 수도 있는 일이다. 둘 사이 균형을 잡기 위해 세운 몇 가지 규칙은 처음의 의도와 달라져 어느새 자유롭게 뛰어놀 수 없는 밭을 만들 수도 있다.
이 복잡하고 아슬한 외줄타기 속에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파수꾼이 될 것인지를 고민해본다. 아마도 책 속의 홀든은 밭이 조금 밟히고 작물이 덜 자라더라도, 아이들이 마음껏 햇볕을 받으며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고 싶어 했을 것이다. 완벽하게 정돈된 밭이 아니라, 약간은 어수선하지만 따뜻한 양지를 지키는 파수꾼.
책을 덮고 나니, 성장의 결과보다도 그런 태도의 방향이 더 오래 남는다. 어떤 가치를 앞세워 밭을 지킬 것인지, 그리고 어디까지 손을 내밀고 어디에서 물러설 것인지.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선택을 반복하며, 매번 다시 고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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