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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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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5,328회 작성일 19-04-0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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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따스한 자연의 온기가 느껴지는 제목이다. 들판에 누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꽃들을 바라볼 때의 행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태평양의 파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팔로스버디스 반도, 단독주택이 즐비한 부촌에 유달리 정원이 예쁜 집이 하나 있다. 성공한 미국인 사업가와 결혼한 ‘기쿠에 올컷’은 이곳에서 자신의 정원을 평생 가꾸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작년, 남편 ‘이언 올컷’에 이은 그녀의 죽음에 더 이상 이 아름다운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풀 내음이 가득한 정원은 고용된 정원사들에 의해 가꿔진다. 한 사람을 위해서.

 

 겐야의 고모이기도 한 기쿠에 올컷은 오랜만의 일본 여행에서 협심증 증세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27년 전, 6살배기 딸 '레일라'를 백혈병으로 잃었던 터라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지는 조카 겐야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끔찍이 아껴준 고모의 장례 절차를 도맡는다. 그런데 기쿠에의 변호사는 겐야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고모가 겐야에게 400억에 가까운 유산을 남겼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딸의 죽음은 사실이 아니라 유괴를 당해 행방불명되었으며, 딸이 살아있는 게 확인된다면 유산의 70%를 주라는 것이다. 고모가 27년간 딸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지옥 속에서 쓸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미치자, 겐야는 그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계속되는 딸의 행방을 추적하던 끝에 그는 진실에 도달하는데, 이 진실이라는 것이 참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기쿠에의 남편은 다정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소아성애 증상이 의심되기 전까진. 그녀는 남편의 행동에 의심을 품은 순간부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소아성애 증상을 확신하기까지 그녀는 살을 깎는 정신적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미국 안에서 소송을 하자니 레일라에게 평생 상처를 주는 것이, 양육권을 포기해야하는 것이 두려웠다. 무너질 듯한 비극에 직면한 그녀는 의연하게, 힘차게 비극에 맞선다. 레일라가 평소에 잘 따르던 이웃 부부에게 그녀를 유괴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녀의 숭고한 결정을 하늘이 도와준다. 당시 유괴를 담당했던 형사가 매우 무능력했다던가, 초기대응이 늦었다던가, 결국 기쿠에와 이언이 소아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수면 밖으로 꺼내지 않고 평생을 함께했다던가, 레일라가 유년 시절을 잊고 이웃 부부를 부모로 받아들였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기쿠에씨는 이언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나서 레일라가 좀처럼 잠을 자지 않는 밤에는 정원의 꽃밭으로 안고 나갔어요. 그리고 반드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아무리 무서운 일이나 슬픈 일이 일어나도 엄마가 반드시 도와줄테니까, 레일라는 그냥 안심하고 있으면 된다고 말이에요. 그러고 나서 기쿠에씨는 레일라가 얼마나 영리하고, 마음씨가 얼마나 고우며, 모두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아이인지를 몇 번이고 말해주었대요. ...(후략)

 

 어느덧 레일라는 자신이 레일라였는지 모른 채 새로운 이름 ‘멜리나’로 살아가고 있다. 멜리나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이젠 대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기쿠에는 딸의 대학교 졸업식을 멀찍이 망원경으로 바라만 봐야 했다. 기쿠에는 딸의 안녕을 바라며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올 레일라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정원을 가꿨다. 이제 레일라의 새로운 부모와 겐야는 레일라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사실을 전달할 방법을 궁리 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때론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평화로워 보이던 호화저택의 비극은 모두 드러났다. 그 안에는 유괴가 있고, 성적 학대가 있고, 의문의 죽음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 책이 따뜻하게 읽히는 이유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레일라를 향한 여러 사람의 선한 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곁에는 비극이 늘 존재한다. 대부분은 비극이 닥칠 때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비극은 해결하고 말고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이겨내느냐의 문제다. 추악한 사실들을 마주하더라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때론 비극조차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확인했다.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도 이 따뜻한 모성애에 대한 경의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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