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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들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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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주
댓글 0건 조회 5,154회 작성일 19-04-3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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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들의 정치학

 

해가 뜨는 새벽녘, 저 멀리서 달려오는 털복숭이가 있다.

저 털복숭이는 나에게 충성스럽고 소중한 반려견인가

나를 노리고 다가오는 사납고 굶주린 늑대인가?

다가오기 전에는 알 수 없다.

- 개와 늑대의 시간 (프랑스 관용어)

 

그해 겨울에 우리에게 달려온 털복숭이가 늑대인 줄은 몰랐었다. 처음에는 친근하기 굴었기에 우수한 혈통을 가진 반려견인줄 알았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본능과 이빨을 드러내면서 대장 행세를 하려고 했었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가 화를 내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주면 꼬리를 말고 순한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는 듯 했으나, 본능은 저버릴 수 없는지 사나운 눈빛으로 우리들을 보고는 했었다. 그러다가 한번 큰 잘못을 저질러서 호되게 혼나고 내쫓기면서 사라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 가식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이빨과 발톱을 세우면서 쫓겨난 늑대들을 모아서 돌아올 궁리를 하고 있다. 누구 이야기냐고? 우리 국민들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는 한가지였다. 박정희의 딸. 한강의 기적과 유신 헌법 독재라는 명암을 가지는 암살된 대통령의 딸. 최초의 여성대통령, 최초의 과반 득표. 박정희의 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강력한 지도자’를 원한 시대에 맞춰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국정농단이 발각되면서 탄핵되어 최초로 파면되었다. 그럼에도 그 잔재들은 국회에 남아있어 여전히 몽니를 부리고 있다. 한 순간의 잘못 된 선택이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여소야대를 만들어낸 2016년 총선이 잘못 된 선택을 바로 잡은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회가 제대로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려 120석에 육박하는 야당이 몽니를 부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패스트트랙 저지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2016년에 우리가 올바른 선택과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때 좀 더 정권을 심판했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거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사실 민주주의란 시민 모두가 평등하게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시민들이 국정에 참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선거를 통하여 대표를 선출하고 국정을 맡기는 대의민주주의를 모든 국가가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선거의 맹점을 발견하였다. 선거랑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보다 나은 사람’을 선출하고 합의하는 선택일 뿐 민주주의가 될 수 없는 과두정이라고 말하였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평범한 노예들이 뛰어난 지도자를 고르는 방식이라고 까지 말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런 평범한 노예들이 지도자를 고르는데 실패하면 결국 배신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를 선택하는데 성공한 소수와, 늑대를 부르기만 했던 다수의 사례를 보면 선거는 민주주의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선거를 할 수 밖에 없느냐? 선거는 최악이 아닌 차악이라도 선택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도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지난 인류의 역사 동안 선거제도는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선거가 가지는 대표적인 속성은, 선출된 지도자에게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선출된 지도자가 독재자로 변질 될 수 있는 점도 존재하는데, 이때는 시민들이 독재자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열성적인 지지자가 있어서 선거를 통해 민의를 왜곡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민주주의는 합의된 결과가 아니라 합의하는 과정에서 의의를 찾는다. 선거에 의하여 합의된 결과라고 결정을 미루고 이를 강제하면 히틀러 같은 괴물이 선택되기도 한다. 여기에 영웅적 배경까지 더해지는 조미료가 첨가된다? 여기에 매료된 국민들 스스로가 독재자를 간택하는 결과는 낳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선거를 왜하는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선거 이외의 방법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담아내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선거의 본질은 소수의 정치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데 있지만, 우수한 소수에게 다수를 대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 임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책임감을 가지고 권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선거라는 권리를 포기하는 순간, 차악의 선택이 아닌 최악의 선택을 맞이하게 되며 그 부메랑은 늑대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왜 국민은 자기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가지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 앞으로 1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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