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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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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5,361회 작성일 19-05-11 23:35

본문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

 

김도훈

 

 낭만의 사전적 정의는 현실에 매이지않고 감상적으로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그런 심리, 상태다. 사전적 의미를 되새기며 주변을 둘러본다. 내 주변에 낭만이 있는가? 나는 나름대로 낭만을 추구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면서 살고있는 듯 하다. 이 책에는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으로 잡지계 에서 평생 일해온 '글쟁이' 40대 아저씨의 기록이 담겨있다. 모르는 동네 아저씨에 불과하지만 그의 삶에는 어떤 낭만이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그를 이끌어 왔는지 적혀 있었다.

 

 그는 결코 완벽하지도, 성숙하지도 않은 평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삭막한 독신남의 공간에 초록의 싱그러움 같은걸 한 번 끼얹어보고 싶은 얄팍한 마음에 관심없이도 잘 자라는 화초를 알아본다. 하지만 이내 지나친 관심을 줘 식물을 썩이곤 했다. 한번은 홍대를 거닐다 패션매거진에 촬영제의를 받았다. 단호하게 거절하면서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언뜻 보면 평범한 일들이지만 그는 사유를 조금씩 첨가했다.

 

 1년을 견디지 못하고 알로카시아가 죽은것은 무름병이라 부르는 지나친 사랑 때문이었다. 겨우내 보일러에 바싹 마를까 걱정이 된 나머지 지나치게 물을 준게 결정적 실수였다. 나는 빵 자르는 칼로 알로카시아의 시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오래전 연인이 헤어지며 했던 말이 들려왔다. "넌 나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 그게 부담스러워."

 

 일요일 저녁, 의기소침한 기분을 안고 막창구이 집으로 향하는 남자의 스타일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구나. 씨익 웃었다. (중략) 이십대 시절의 피부 세포가 땀구멍 밑 어딘가에서 솟아나길 기대하며 인터넷을 켜고 오랜만에 대학친구의 SNS 에 들어갔다. 낼모레면 유치원에 들어갈 아들을 안고 입이 찢어지게 웃고있는 아저씨의 얼굴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평소의 나라면 이렇게 생각했을게다. '저렇게 볼품없는 오버사이즈 셔츠를 저렇게나 밑위가 긴 바지 속에 넣어입다니 정말 아저씨가 다된거야?' 하지만 그날 새벽은 달랐다. 환하게 웃고있는 친구 얼굴이 아저씨의 얼굴이 아니라 어른의 얼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입가에 새로생긴 주름을 없애줄 영양크림이나 여섯살 쯤 어려보이게 만들어 줄 슬림한 더블버튼 재킷이 아닐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건 자신의 젊음이 아니라 아들의 젊음일 것이다. 아들의 젊음을 위해 넣어둔 펀드 통장의 안정적인 숫자들 일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대학 친구의 사진을 보며 삐딱하게 비웃지 않았다. 그리고 노화 방지용 액체가 질펀하게 발린 내 얼굴을 보았다. 자기애라는 버릇에 도취한 아저씨가 보였다. 어른은 아니었다.

 

 일상을 솔직하게 공유하면서도 적절한 사유까지 첨가하는 그의 글에는 낭만이 있다. 실제로 그는 내내 낭만을 추구했던 것 같다. 집안 곳곳에 쓸데없는 물건을 사들이는 것은 낭만이었다. 알로카시아 화초를 떠나보내며 지난 연인을 떠올리는 것도 낭만이었고, 어릴 적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라는 책에 매료되어 다 커서도 문득문득 펼쳐보는 것도 낭만이었다.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세상을 떠난 강아지를 떠올리는 것도 말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그를 시시한 아저씨가 아닌 멋진 중년으로 만들어주었다. 

 

 요즘 서점에는 위로의 에세이가 항상 베스트셀러 칸을 차지하고 있다. 그 책들은 빠르게 살지말고 천천히 살라고, 성공의 의미를 사회적인 시선이 아닌 자신에게 부여 하라고, 잘하려고 애쓰지 말라는식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위악적이게도 이런 문구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위로가 많이 필요한 세상임에는 동의한다. 우리 대부분은 어차피 꾸역꾸역 살아가기 바쁘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걱정이 늘어난 것 뿐이다. 내 한 몸 뉘일 집 한채를 사기도 힘들다. 직장은 불안정 해졌다. 우리가 생계에 대한 걱정없이 보장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애초에 그런 시대가 있긴 했을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막막한 현실을 위로받고 싶어한다. 특히 이제 막 사회의 맛을 보는 20대의 청춘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 위로들이 정말 새로운 동력을 줄수 있을까? 일시적인 심리적 안정만을 주는것은 아닐까? 각자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는 맹목적인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위로를 받아야 하는걸까.

 

 신기하게도, 지쳤을 때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괜찮다는 위로가 아닌 세상에 대한 낭만적 시선 때문이다. 감정이 죽어있을 때 향긋한 봄바람에 갑자기 행복해지곤 한다. 날이 좋은 날 공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가족과 커플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극복할 수 없을것만 같던 위기에 잠식되어갈 때 무작정 잡아 놓은 해외여행을 떠올리면 이런 문제들이 썩 만만해 보이기도한다. 세상이 우리에게 건네는 진정한 위로는 우리가 낭만을 간직할 때 찾아오고, 비로소 우리는 고리타분한 일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것에서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 큰 동력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끝끝내 낭만이라는 단어를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김도훈의 낭만 중 하나인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에 대한 시로 글을 마친다.

 

내 친구 연이는 꿈 많던 계집애

그녀는 시집갈 때 이불보따리 속에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한 질 넣고 갔었다.

 

남편은 실업자 문학 청년

그래서 쌀독은 늘 허공으로 가득했다.

 

밤에만 나가는 재주 좋은 시동생이

가끔 쌀을 들고 와 먹고 지냈다.

 

연이는 밤마다

세계일주 떠났다.

아테네 항구에서 바다가제를 먹고

그 다음엔 로마의 카타꼼베로!

 

검은 신부가 흔드는

촛불을 따라 들어가서

천년 전에 묻힌 뼈를 보고

으스스 떨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또 떠나리.

 

아! 피사, 아시시, 니스, 깔레...

 

구석구석 돌아다니느라

그녀는 혀가 꼬부라지고

발이 부르텄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그만

뉴욕의 할렘 부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밤에만 눈을 뜨는

재주끈 시동생이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몽땅 들고 나가

라면 한 상자와 바꿔온 날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울었다.

 

결혼반지를 팔던 날도 울지 않던

내 친구 연이는

그날 뉴욕의 할렘 부근에 쓰러져서 꺽꺽 울었다.

 

문정희,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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