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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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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611회 작성일 19-05-0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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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 _ 스기모토 다카시

 

  예전서부터 윌리엄 클라크를 비롯한 유명인들은 야망에 관련된 좋은 표현을 이용하여 청춘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줬다. 무언가를 크게 이루겠다는 희망. 젊은 시절에는 뜨겁게 와닿을 수 있을 만한 단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단어는 누군가에게 불편하고 아쉬울 수 있는 단어가 될 수도 있다.

 

  학생 때부터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역사 자체보다는 역사 속 주인공들에게 매료가 됐다고 보는 게 맞다. 그 호걸들의 용기나 지혜, 야망, 의지 등이 반영된 이야기는 나를 몰입하게 했고, 나 또한 현실에서 그들과 같은 모습을 내 인생에 반영하고 싶었다. ‘삼국지’, ‘서유기’라는 이름만 보이면 죄다 읽어보기도 했고, 이해가 잘 되진 않았지만 군주론과 같이 시대의 전략이 반영된 책을 보기도 했다. 나는 당연히 내가 과거 동경했던 그들과 같은 호걸이 될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어릴 때까지는.

 

  하지만 소위 ‘현실’을 마주하며 내 모습은 어릴 적 꿈꾸던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학교에서 학교로 넘어갈수록, 제대 후 직장에 이르러 점점 내가 사회화될수록 과거의 호걸들에 대한 동경조차 희미해져 갔다. 10대에는 수능을 비롯한 수차례의 시험. 20대에는 인생을 평가내리는 듯한 취업 준비.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과 고민을 겪으면서 나도 모르는 새에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을 낮춰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런 과정에서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나는 그럴 재목이 아니라며 굳이 호걸이 될 필요 없다며 발버둥 치기를 포기한 걸까. 모든 사람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그래서인지 지금은 굳이 호걸을 동경하는 맘에 책을 열진 않는다. 혹여나 그런 내용을 접하더라도 어릴 적 우상에 대한 아련함, 혹은 신화 속 이야기에 대한 추억은 없다. 매료된다거나 동경했던 과거의 감정은 쉽게 일지 않는다. 한편 그 안에서 이 캐릭터들이 보여줬던 포부나 야망을 접하면 좀 씁쓸해진다. 지금 내 모습이 만족스럽게 보이지 않고, 뭔가 채우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해왔어야 할 어떤 과제를 잊고 살아온 게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야기 속 호걸들 자체는 지금의 나에게 그저 뻔한 사례 중 하나로 여겨질진 몰라도, 그들이 가진 ‘야망’은 내 마음속에 아직 남아있나 보다.

 

  야망이란 단어에 떠오르는 사람 중 한 명이 현 소프트뱅크 회장인 손정의였다. 포브스 선정 일본 최고 자산가인 그는 중국 기업 ‘알리바바’가 뉴욕 증권거래 사상 최대 기업공개를 달성했을 때, 좋은 안목을 갖고 미리 알리바바에 투자한 점으로 다시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사실 많은 잡지나 칼럼 등의 매체를 통해 그의 일화를 수차례 접할 수 있었지만, 잠시 읽어본 것만으로도 나를 다시 한번 아쉽게 만드는 ‘야망’을 느낄 수 있었기에 접했다. 물론 애당초 그는 내가 눈앞의 나무만 보고 있을 때 숲을 본 사람이다. 내가 대학만을 보고 있을 때 그는 인생 장기 계획을 세웠다. 그는 50대까지의 계획을 차질없이 전부 이뤄냈고, 지금은 60대 계획을 진행 중이다.

 

  어릴 적엔 누구나 큰 야망을 품는다. 큰 뜻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 야망은 점차 변해간다. 변화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사회적 기준에 의하여 일관적으로 변한다는 게 문제다. 명문대, 대기업, 안정적인 미래, 더 나아가서는 보장성 연금, 현금흐름, 노후준비 등 나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래서인지 야망을 잃지 않고 계속 정진하여 현실화한 손정의가 계속 떠오르는 게 아닌가 싶다.

 

  굳이 야망을 품어서 스스로 힘들게 할 필요는 없으나, 가끔은 다시 한번 야망을 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와서인지 한 번씩은 내 인생에서 무언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꼭 야망을 갖고 무언가 도전하는 게 불안정하다고만은 보기 힘들다. 오히려 안정을 추구하는 게 가장 불안정할 때도 있다.

 

  나에게 야망이란 말이 불편하고 아쉬운 이유는 지금의 내가 현실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에게 좀 더 높은 뜻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알고 있다. 지금 글을 쓰며 느낀 이 감정이 그저 헛된 허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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