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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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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수
댓글 0건 조회 5,566회 작성일 19-04-0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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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 아멜리 노통브지음 · 성귀수옮김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혹은 자신이 방어기작으로 지워버리거나 왜곡한 기억이 있지는 않은가?

 2001년 프랑스 베스트 셀러작인 아멜리 노통브작의 <적의 화장법>은 기술적 문제로 출발이 지연된 어느 공항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인 제롬 앙귀스트는 비즈니스차 공항에 왔으나, 비행기는 기약없이 출발이 연기되고 있었고, 이러한 확정되지 않는 상황의 기다림은 제롬 앙퀴스트에게는 매우 짜증스러웠고, 또 그만큼 불쾌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불쾌함속에서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찰나, 아무런 일면식이 없는 낯선 남자의 일방적이고 무례한, 반강제적인 대화가 시작된다. 그 남자는 자신이 텍스토르 텍셀이라는 다소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가졌고, 자신이 네덜란드 사람임을 마치 주문을 외우듯 반복적으로 되뇌이며 제롬 앙퀴스트의 단호한 거절에도 무작정 그를 따라다니며 대화를 이어간다. 여기서 재미난 이야기는 텍스토르의 어원은 '텍스트'에서 왔으며, '텍스트'는 라틴어 '턱세레르 - '짜다' 라는 동사'를 어원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 것은 이후에 꽤나 의미심장한, 반전의 복선을 제공한다. '짜다' 라는 어원으로 직조공이라는 의미와 함께 문서작성자, 작가라는 중의적의미로 이 낯선 남자의 정체에 대한 모호하지만, 분명한 복선을 깔아두게 된다.
 이 낯선 남자는 매우 무례했으며, '제롬'이 완곡한, 이후에는 완강한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일방적으로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고, 심지어 자신이 '살인자'!! 라는 믿기 힘든 이야기의 시작을 꺼내든다. 어떤 의미의 살인인가? 그(텍스토르 텍셀!!)는 일생에 두번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처음의 살인은 다소 의아하다. 재학시절에 자신의 반 에 모두에게 인기가 많고,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한 친구가 있었고, 보잘것 없고 인기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며, 밤새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그를 죽여달라' 고. 놀랍게도 그 다음 그 친구는 정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것은 진짜 살인인가?) 그는 그 친구의 죽음이 자신의 강렬한 기도에 의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의 죽음에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친구가 죽었다고 해서, 반 친구들의 관심과 인기가 텍스토르 텍셀! 에게 넘어 올 리는 만무했으며, 그 시점에서 그는 죄의식? 후회의 감정을 느낀다. 그를 죽음에 대한 후회가 아닌, 아무 것도 변한게 없는 부분에 대한 후회를.
 그리고 그는 고백한다. 자신이 신앙심을 잃은 계기에 대하여. 친척집에서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는 역할을 맡았지만, 그 일은 텍스토르 텍셀! 에게 너무가 역겨운 일이었다. 비린내나는 생선통조림을 까서 밥과 함께 섞기위에 손으로 그걸 주무르는 일은그에게는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그런데 어느날 그는 그 고양이 밥을 만들다가 갑자기 그 고양이밥을 먹게 되었고, 그 맛에 심취하여 그것을 너무나도 맛있게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 순간은 그가 신앙심을 잃은 순간이라는 궤변을 제롬에게 강요한다. 내 안의 어떤 존재가 그 상황을, 그 욕망을 강요했음을. 자신은 여전히 신의 존재를 믿지만, 신보다 더 강대한 내면의 어떤 존재가 있기에 자신은 신앙을 잃었다고.
 그럼 그의 두번째 살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제롬'에게 두번째 살인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제롬'은 이 대화에 진절머리가 났으며, 서슴없는 인심공격도 하지만, 텍스토르 텍셀은 여전히 개의치 없는다. 두번째 살인의 시작은 맹목적인 사랑의 '강간'에서 시작된다. 몽마르뜨 언덕의 공동묘지에서 참배하는 어떤 여자를 보고, 그, 텍스토르 텍셀!은 번개같은 사랑의 감정과 욕망에 사로 잡혔고, 그 여자를 납치하여 밤이 되도록 무덤옆 회랑에 숨어 있다가 결국 그 여자를 '강간'한다. 그것이 강간이 아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여자'를 강간했기에 매우 만족함을 보이는 텍스토르 텍셀!의 모습에 '제롬'은 역겨움과 분노를 느낀다. 그 여자는 해가뜨고 인파속의 지나가는 틈을 타서 텍스토르 텍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는 이후 10년간을 그 여자를 찾기위해 파리의 여러곳을 계속 헤매었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제롬'에게 텍스토르 텍셀은 너무나 혐오스런 사람이었다.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싶지 않았지만, 어쨋든 반강제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드디어 그의 두번째 살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10년후 다른 공동묘지에서 그녀를 발견한 텍스토르 텍셀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놀랍게도 그녀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남편의 지인으로 착각했고, 그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대화 중 그의 웃음소리에서 10년전 자신을 간강한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10년간 잊기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그를.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묻는 그녀에게 텍스토르 텍셀!은 이야기한다. 온전한 사랑의 완성을 위해 그녀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자신은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녀 이외의 어떤 여자도 갈망하거나 집적댄 적이 없었고, 평생에 단 한번의 사랑을 나누었으며, 마지막으로 당신이 복수를 함으로써 이 사랑을 완성하고 싶다고. 물론 그녀는 거절했다. 그를 죽임으로써 그에게 만족감을 주기도 싫었고, 자신이 감옥에 가서 인생을 다시 망치는 상황은 더더군다가 싫었을 테니까, 숱한 궤변의 설득이 이어젔으나 결국 텍스토르 텍셀은 원한 바를 이루지 못하였고, 결국 칼로 그녀를 살해하게 된다.
 여기서 하나의 반전이 시작된다. 그 여자. 는 바로 '제롬'의 아내였던 것이다. 자신의 죽인 여자의 이름을 신문을 통해 알게되었음을 고백하는 텍스토르 텍셀!이 죽인 여자는 다름아닌 10년전 죽은 자신의 아내였던 것이다. 텍스토르 텍셀!은 이번에느 '그 여자'가 아닌 '그 여자의 남편'에게 자신에 대한 복수를 강요하기 시작한다. 제롬은 분노하면서도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으며, 고백이 아닌 물증을 제시하길 요구한다. 하지만 텍스토르 텍셀!은 아무런 물증은 없으며, 자신을 경찰에게 넘기려는 얕은 수작은 그만 두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하기를 강요한다. 여기서 두번째 반전이 시작된다. 마침 지나가는 경찰을 큰소리로 불러 텍스토르 텍셀!을 구속하길 요구하지만, 경찰은 그를 정신병자 취급한 것이다. 텍스토르 텍셀!은 10년간 숨겨 놓은 자신의 내면속 자신이었던 것이다. 아내를 강간한 것도 제롬이었고, 그녀를 죽인 것도 다름아닌 남편이었던 본인, '제롬' 이었던 것이다.
 텍스토르 텍셀!과 제롬 앙귀스트는 존재의 물증에 대하여 치열하게 언쟁한다. 그리고 결론에 도달한다. 제롬이 텍셀을 죽였을 때 텍셀이 죽을 것인가? 제롬이 죽을것인가? 1999년 3월 24일 바르셀로나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던 승객들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관경을 목격한다. 비행기를 기다리던 승객중 한명이 로비의 한쪽 구석에 가서 벽에대가 머리를 들이받은 것이다. 그 행위는 그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는 그 행위가 끝날때 까지 '자유! 자유! 자유!'를 끝없이 외쳤다.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은 상당히 기교적이다. 끊임없는 두 인물의 대화와 독설을 통하여 서사을 이끌어 가며, 그 속에서의 복선과 모호한 선악의 경계속에서 충격적인 결말을 이끌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깊이 있는 통찰보다는 감각적이고 탐미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꽤나 어두울 것이 자명하나, 그 속에서 몇 가지의 의문점, 혹은 화두를 생각하게 된다. 우선은 우리의 기억은 객관적인 사실과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부분이다. 물론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자신만의 필터를 통하여 기억되기 마련이지만, 전체적인 어떠한 사실은 기저에 깔리게 되기 마련이다. 봄의 벚꽃이 누구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아픈 기억이 될 수도 있지만, 벚꽃이 있었다. 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이라면. 최근들어 아내와 혹은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과거의 내 기억이 상당히 조작되어 있음에 당황한 경험을 종종하게 된다. 신혼여행가서 내가 길을 찾아서 갔다. 라는 기억이 실제로는 조작되었고, 방향치인 내가 길을 찾았을 리 없는, 당연히 아내가 길을 찾았다던가, 어떤 물건에 소중한 추억이 있다고 생가했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준 물건이 아니었다는 이상한 기억의 조작도 있었다. '이과생들느 다 죽었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끌어낼 수 있는, 나이가 들어 뉴런의 시냅시스와 뇌 세포의 신호전달 문질의 왜곡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부정확하고 자의적이라는 의구심이 들게 된다. 마치 제롬 앙퀴스트의 '텍스토트 텍셀' 처럼. 심지어 텍스토르 텍셀은 이름의 어원이 '작가'이다. 자신의 기억을 삭제하고 왜곡 시켜서 만들어 놓느 또 하나의 자신인 것이다. 숨겨 놓은 자신의 기억의 파편을 가진 '텍스토르 텍셀'이 아무 기약없이 할일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공항에서 불연듯 표면위로 올라온 것도 우연느 아니었으리라. 우리가 아무런 생각없이 여유로운 순간에 문득 심연속의 과거의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오듯이.
 '사랑'이란 또 어떤 것인가? 현대의 인간의 사회는 의도적인 것이 아닌가 매우 의심스럽지만 '사랑' 이라는 감정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사랑'이 라는 감정이 보잘 것 없다는 의미는 아니나, 정말 영화속처럼 인류를 구원할 만큼 대단한, (혹은 외계인이 감탄할만한?) 감정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구심이 드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적의 화장법>에서는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상처와 감정은 아랑곳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텍스토르 텍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그녀를 가지고 싶었고, 그녀의 육체를 강제로 취하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을 알고, 그녀의 손에 죽음으로써 사랑을 완성하고 싶어한다. 우리의 사랑은 다른가?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극단의 사랑의 방식은 아닐 지언정, 우리의 사랑도 꽤나 일방적이진 않나? 그리 많지 않은 나이라고 위안하고 있지만, 사람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점과,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으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은 너무나 부질없고 헛된 행동이 아닌가 하는 부분은 짧은 인생에서 숱하게 보고 겪고 깨달은 바이다. 이를 일반적인 언어로 '콩깍지' 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가아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자신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텍스토르 텍셀!'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신보다 거대한 존재가 자신을 끌어갔다는 묘한 핑계을 대기는 했지만. (사랑은 이기적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책의 내용을 너무 비약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사람의 본성에 관한 의구심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은연중에 성선설의 대한 주류의 이념을 내포하고 있고 생각된다. 우리가 접하는 각종 미디어, 정책, 여론들, 사실 대부분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라는 부분에 바탕을 두고 있기 마련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우리는 뱀의 유혹에 빠져 사과를 따먹은 원죄를 가진 죄인이나, 같은 뿌리를 가지는 이슬람에서도 기본적으로는 인간은 선하다는 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럼, 인간은 정말 선한 것인가? 물론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이 상당히 자의적이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는 없으나, 경험을 토대로 다시 판단해본다면, 사회와 같은 무리의 관며이 아닌 개개인의 본성은 꽤나 악하지 않나. 라는 의심이 든다. 물론 그러한 부분을 사회의 도덕적 관념과 법이라는 테두리로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가 되버리긴 했지만, 자신의 내면 속 깊숙이 텍스토르 텍셀!이 살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 아닐까? 그러한 욕망과 이기심, 궤변적 논리를 '인간' 이라는 테두리를 통해 스스로가 통제하고 있을 뿐, 내면 깊숙히는 '텍스토르 텍셀!' 이 끊임없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다. '너가 하고 싶은데로 해' 라고.
 <적의 화장법>은 매일매일 data와 graph만 바라보며, 소위 말하는 '썰'을 풀어대는 상황을을 반복하고 있는 나에게 오랜만에 접해 보는 관능적인(표현이 이상하지만) 소설이었다. 이과의 감성이 아닌 문과의 감성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랄까? 내면의 '텍스토르 텍셀!'이 이야기한다. '신혼여행에서 길을 찾은 건 내가 맞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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