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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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저
철학은 나에겐 머나먼 학문이었지 싶다. 때로는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처럼 다가오지만, 지금까지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 제대로 해본적은 없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말 일 거다. 어려서는 지적 허영심에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 책 저 책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철학하면 생각나는 것은 진부한 얘기 혹은 어려운 얘기, 둘 중의 하나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합리론, 경험론에 이르기까지는 당연한 소리를 어렵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념론에 이어 구조주의나 현상학 등 현대철학에 이르러서는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은 물론 급기야는 내가 꼭 이것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슬슬 기피하기 시작한 것 같다. 간혹 이해하기 쉽게 써진 책을 만나면 다시금 의욕에 솟다 가도 이내 도로 아미타불 격이다. 그나마 동양의 사상이나 철학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이해의 폭이 넓고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철학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나만의 정신 승리 법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기업과 조직은 혁신을 이야기하고 개인에게는 무한한 창의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혁신이나 창의력 혹은 변화라는 것이 그저 말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모두들 상식을 의심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냉철히 분석하라고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리더가 철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말한다. 철학은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갖게 해주며,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울 수 있고, 어젠다의 설정이 가능하게 만들며, 똑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바로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철학이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면, 아니 그보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가 삶의 무기로서 철학적 소양을 갖고 싶지만 대부분이 좌절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그림의 떡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문제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마 저자는 그래서 철학자들이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사고과정과 문제제기과정을 대하는 자세를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삶속에서 부딪치는 문제의 대부분은 저자가 구분한 사람, 조직, 사회, 사고의 범주 안에 들어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들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각자도생을 부추긴다. 우리는 이러한 삶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결국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철학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내 삶의 무기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니체는 철학을 망치로 표현했다. 망치는 단단한 사물을 부수는 도구이다. 단단한 사물은 유연하지 않은 근대적 사고를 의미한다. 니체는 굳어버린 근대의식을 망치로 깨뜨리는 초인을 새로운 사회를 이끄는 주체로 제시했다. 이 책의 저자 야마구치 슈는 철학에서 삶을 변혁하는 무기를 발견한다. 철학을 단순히 지식을 획득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철학을 지식이 아니라 태도로 이해한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낙시만드로스를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철학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물이 대지를 받치고 있다’는 당대의 정론을 철학하는 태도를 통해 바꾸었다. 그는 물을 지지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무언가를 지탱하고 있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에 생각을 이은 결과 그는 물은 허공에 떠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상을 의심함으로써 그는 새로운 진실에 이르는 길을 연 셈이다.
철학이 정말로 삶의 무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철학과 현실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0명이 넘는 다양한 사상가들을 통해 저자는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철학이라는 성채에서 펼쳐지는 한바탕 향연에 그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철학이라는 테두리 바깥으로 우리를 매몰차게 내몬다. 철학 이전에 현실이 있다.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가 삶의 무기가 되려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와 마주할 수 있는 힘을 먼저 길러야 하지 않을까. 철학을 하면 그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기득권자들의 논리일지도 모른다. 기득권의 대열에 낄 수 없는 빈자들은 여전히 철학과 사회에서 소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철학이 우선이기 보다는 지위, 능력이 우선이며 그 이후 갖추어야할 하나의 덕목으로써 제안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을지도 모른다.
자연계의 곳곳에서 발생하는 우발적인 현상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우리는 종종 '우리 회사의 DNA, 우리 그룹의 DNA'라는 말을 쓴다. 돌연변이란 'DNA'를 다음 세대에 정확하게 전해 주려고 의도했지만 모종의 과실로 인해 전달에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자연계에서 생명체의 적응력과 능력은 계획과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우연에 의해 창조되고 발전해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조직이나 사회 운영도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항상 더 좋은 것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오만한 사고를 수정하고, 집단의 의도보다 오히려 '긍정적인 우연'을 만들어 내는 체계를 이루는 데 주력하는 것은 어떨지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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