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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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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원
댓글 0건 조회 5,402회 작성일 19-04-0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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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사랑해야 한다.” 이 소설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모모’는 갓난아기일 때부터 그의 부모님이 아닌 ‘로자’의 손에 자란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프랑스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지만, 누군가와 사랑하며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랍인 아이인 모모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인 로자는 인종과 나이, 성별 등을 초월하여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비록 본인을 낳아준 친모는 아니지만, 모모를 아끼는 로자의 모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그녀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고, 믿을 수 없어 하는 모모로부터 부모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었다.

 

 요즘 내 주변에도 모성애를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내 친형의 아내인, 형수님이 나에게 모성애의 대단함을 다시금 떠오르게 해주고 있다. 올해로 결혼 6년 차이지만 아직은 29살인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형님과의 연애 시절에는 마냥 즐겁고 싶은 형의 여자친구로만 보였다. 본인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꽃다운 나이에 엄마가 될 생각을 했고, 지금은 어엿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며, 현명한 여성으로 보인다.

 

 모성애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생활력이 불충분하고 발달 미약한 유아에 대해서 어머니가 가진 애정을 말한다. 특히 보호, 염려, 돌봄, 접근, 접촉, 생리적ㆍ심리적 욕구를 만족하는 행동 등에 의해서 표현된다.’

 

 형수님의 말에 따르면 처음부터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모성애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머니는 언제부터, 어떻게 모성애가 생기는지 궁금해졌다. 이제 막 뱃속에서 나와 울고 있는 아이만큼이나 엄마의 모성애도 이제 막 태어나 자라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여서 조금씩 모성애를 만들어 나간다. 형수도 막상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없던 힘도 생기고, 그 많던 잠을 줄일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이가 이렇듯 모성애를 만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한 기사에서는 2017년 4월경 출산한 본인의 생후 8개월 된 아이를 숨지게 하고 사체를 유기한 여자가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물론 특이한 경우이고, 믿을 수 없는 사건이지만 이게 현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모성애를 가지기 전,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않아 아이를 키울 수 없거나 더욱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아이를 포기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경우이든 본인이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품고 있다가 세상 밖에 내놓은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우리 어머니, 형수 그리고 소설에서의 로자는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어머니임이 분명하다.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 집의 형편은 운동선수인 형을 돌보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힘든 시기를 잘 넘기실만하신 모성애를 가지고 계셨고,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자라서 우리나라의 최고 대학에 오게 해주셨다. 매번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효도를 실천하려고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나도 이제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젊은 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의 젊은 시절도 문제지만 부모님의 건강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나빠지시고, 얼굴이며 손에 생기는 주름 역시 점점 늘어가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모성애와 아버지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자 더욱 노력하면서 나의 20대를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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